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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23]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5월 29일(수) 10:0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집을 떠메고 갈 것처럼 광풍(狂風)이 불었다. 소리와 소리가 뒤엉켜 휘몰아치며 달려드는 바람은 몹시도 거세차서 방안에 꼼짝없이 갇혀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다가 오후에 들어 인제군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 문자 메시지로 왔다. 문밖으로 나갔다가 미처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다시 돌아섰다. 구옥(舊屋)인 우리집 지붕은 슬레이트인데, 말 그대로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들썩들썩했다.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어서 소설책『종이 동물원』부록으로 딸려온 코끼리 모양의 종이를 오렸다.
바람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여겼지만, 2019년 4월 4일에 몰아친 바람은 바람 그 이상이었다. 지인들에게 이따금 ‘미친바람’이라고 일컫는 바람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바람이 드세면 정신도 사나워지는 터라 그날도 도시에 사는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불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으나 도시에 사는 지인은 설마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통에 그만 짜증이 났지만 우리집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서 내가 과민했다고 여겼다.
매년 사월에 부는 바람 속에는 불이 숨겨져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고 해서 불의 수난이 끝난 것은 아닌 듯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축복과 재앙을 동시에 지닌 불은 그날만큼은 재앙이었다. 저녁 7시 50분 고성군청에서 보낸 ‘토성군 원암리, 성천리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문자가 왔다. 마치 문밖에서 틈을 엿보다 들이닥친 악마가 그런 모습일까, 순간 정신이 아마득해졌다.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바람은 밀도 높게 불고 있었다.
그때부터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여 산불 소식을 접하는 가운데 고성군청과 속초시청에서 보낸 ‘대피하라’는 문자가 잇달아 들어왔다. 우리 마을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지만, 1986년 발생한 대형 산불이 마을 숲정이를 휩쓴 적이 있었으므로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군(郡)에서 나와 마을 재난대피소에서 비상물품을 싣고 가는 걸 보게 되었다. 내가 피난해야 할 상황이라면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은 어찌할 수 없으니 컴퓨터 외장하드와 손전등이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재난이 된 산불 현장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생방송을 보다가 울화통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첫 대피하라는 문자 이후 채 삼십 분도 안 되어 그러니까, 속초시청에서 보낸 두 번째 문자는 대피소를 지정해서 대피하라고 하는 안내 문자였다. 그만큼 바람은 거세찼고, 불길은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과 불길을 보았으면서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보낸 대피 장소조차 왜 안내하지 않는 것인지, 어쩌면 그조차 벌써 늦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집과 집들, 숲과 숲을 아무렇게나 건너뛰면서 내달리는 이른바 도깨비불이었으므로 재난 방송은 지자체와 연결해서 머뭇거리지 말고 냉큼냉큼 대피 장소를 전달했어야 했다.
자정에 가까울 무렵 휴대전화마저 불통이었는데, 그때 바람소리 속에 문밖이 불빛으로 번쩍거렸다. 가까스로 문밖엘 나가보니 전기공사 차량이 밖에 서 있었고, 사람이 한 명 집 앞 전봇대에 올라가 있었다. 한밤중 미친바람 속에 전봇대에 오른 사람도 사람이려니와 바람 때문에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마을 동남쪽 산마루에도 붉은 기운이 비쳐 불길이 번지는 속도와 방향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시시때때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근심은 더해갔다. 한밤중 우리집 전기는 무사한데, 개울 건너 뜸은 캄캄했다.
새벽부터 바람이 조금씩 잠잠해지는 기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다. 자는 둥 마는 둥 꼭두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한결 숙지근해졌으나 여진처럼 목이 칼칼할 정도로 흙먼지가 섞인 모래바람은 여전했고, 지난밤 사람이 올라갔던 전봇대에 또다시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전날 밤 사고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서너 시간 불통이었던 휴대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개울 건너 뜸에도 전기가 들어왔으나 마을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밤사이 바람의 속도는 초속 20m가 넘었다. 우리집은 별탈이 없었으나 앞에 집은 벼 건조기 지붕이 날아서 마당에 세워둔 기름통을 쳤고, 개울 건너에선 축사 지붕이 날아갔으며 위쪽 뜸에서도 헛간 지붕이 날아가면서 전봇대를 쳐서 이웃집 전화가 불통이었다. 양철 지붕과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뜯어지고 비닐하우스 비닐이 찢어졌으며 폐비닐과 같은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아올라 바람아래 다리 밑에 답쌓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꽃잎들은 주눅이 잡혔다.
버스를 탔다. 새삼스레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 집이 침수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재민이 된다는 것은 말로는 다할 수 없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속초 영랑호까지 가려던 생각을 접고 봉포호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멀리 전남과 가까운 경기에서 온 소방차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소방차와 소방관들, 언론사 승용차와 승용차들, 사람과 사람들로 봉포, 천진 인근은 북새통이었다. 봉포 리조트 근처 길섶,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늘엔 여전히 소방헬기가 떠서 잔불을 끄고 있었으며 불탄 집을 둘러보는 사람들, 잔불을 정리하는 사람들, 나는 큰길에서 벗어나 봉포호 가장자리에 서서 새까맣게 탄 갈대밭을 바라다봤다. 얼마만큼 사람 없는 불탄 자리를 둘러보다 그대로 돌아섰다. 우리집이 물에 잠겨 한 달 가까이 청소와 뒷정리를 하는 가운데 전도하러 나온 교인들을 만난 뒤 재난 현장에 다가가는 일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재민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일도, 취재하여 널리 알리는 일도 상대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봉포 이웃에선 여전히 뭉게뭉게 연기를 피어올랐고, 소방헬기들은 쉴 사이 없이 물을 퍼 날랐다. 목이 따갑고 눈이 아팠다. 물을 마셨으면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길바닥에 생수 한 병이 눈에 띄었다. 겉면이 먼지로 뒤발하기는 했지만 새것이었다. 누군가 급하게 이동하면서 떨어뜨렸을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간밤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겪었을 이들을 생각했다. 미친바람 속에 헝겁지겁 피난했을 이들과 미처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가축들과 나무와 그리고 꽃들까지.
걸어 걸어 대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화재진압을 하고 온 검댕과 먼지로 뒤덮인 소방관들이 아무데나 앉거나 누워 쉬고 있었다. 어디 시원한 그늘막이라도 만들어주었으면 바랐다. 화재 현장 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이들의 휴식 시간마저 아무런 휴게 시설 없이 방치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들 일상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일 것이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께더께 엉겨붙었다. 천진리 매자나무로 이름이 잘못 알려진 팽나무 신목이 있는 서낭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숫서낭당은 바닷가 군부대 초소에 있어 출입이 여의치 않았지만, 팽나무 서낭이 있는 암서낭당은 마을 한가운데 있어 출입이 비교적 수월했지만 찾을 때마다 자리가 비좁고 옹색해서 안타까웠다. 주민들 무사안녕을 빌었을 신목에는 실타래가 묶여 있었다. 고성군 서면에서 월남하여 천진리로 시집 와 육십 여년을 사신 이옥자 어르신에 따르면 매해 음력 시월 초하루에 돼지를 잡아 마을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매캐한 탄내와 시커먼 불티, 붉은 화염 속에서도 팽나무 신목은 곧 흐트러질 것 같은 여리고 어리며 몽글거리는 꽃봉오리를 틔웠으며 불을 품은 바람 속에서도 아느작거렸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산불로 가족과 집, 그리고 생활터전과 일상을 잃고 고통 속에 있을 이들을 위해 조속한 복구와 가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잠시 서성거렸다. 슬픔과 아픔, 낙담 그리고 분노가 곧 지나가지는 않더라도 먼저 평안하시기를.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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