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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만해정신 전국 확산하는 계기

금강칼럼 / 권성준 칼럼위원(강원고성갈래길본부 대표이사)

2020년 12월 23일(수) 09:2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필자는 2020년 12월 7일자 강원고성신문을 통해 ‘건봉사, 한용운을 만나다’의 문화공연이 개최됨을 알게 되었다. 고성군이 주관하여 지난 11월 28일 건봉사 대웅전에서 위 주제로 문학과 음악, 연극, 무용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공연으로 관객들에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어려운 상황인 이 시기에 만해 한용운을 그리는 행사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만해를 연구하고 사랑하는 필자로서는 너무나 기쁘고, 가슴 벅차고 환영할 일이다. 단지 몰라서 참석을 못했음에 큰 서운함이 앞선다.

고성에 묻혀있는 만해의 흔적

나는 대학 시절과 교직에 몸담으며 만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며 내 고향 고성에서 만해의 흔적이 늘 묻혀있음을 애석하게 생각했다. 결국 2017년 강원고성신문에 <문화제안>으로 2회 연재논단을 실은 적이 있다. ‘만해사상 건봉사에서 잉태’라는 제목으로 ①「건봉사서 한용운의 법호 만해(萬海)와 법명 용운(龍雲)을 받아」와 ②「고성군이 만해 선양사업 앞장서서 추진해야」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에 다시 만해를 소재로 칼럼을 쓰는 것은 11월 28일 문화공연 행사의 큰 기쁨과 함께 과연 만해가 건봉사에 남긴 업적과 그곳에 심어놓은 정신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분에 업적과 정신을 전국에 확산하기 위해서 우리 지역에서 할 일은 무엇인지를 살피기 위한 것이다.
타 지역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만해를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 깊은 연구와 사업을 펼쳐왔으며, 2016년 2월부터는 3개 자치단체가 행정협의체를 만들어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홍성군은 만해 한용운이 출생한 생가가 있으며, 인제군은 만해가 출가해 승려로서 수행했던 백담사와 만해마을, 성북구는 만해가 입적할 때까지 거주했던 심우장이 있어 각각 만해 한용운의 초기, 중기, 말기의 삶과 사상적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세 자치단체는 만해 한용운의 선양사업을 위해, 홍성군에서는 매년 9월 역사인물축제와 만해추모제 등을 개최하고 인제군에서는 매년 8월 만해축전을 열어 만해시를 낭독하고 만해대상을 뽑아 시상하고 있다. 또 성북구에서는 매년 만해 한용운 선사가 입적한 6월 29일 선사를 추모하는 다례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듯 적극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는 3개 자치단체에 비해 우리 고성군에 만해가 남긴 흔적은 무엇이며, 진정 건봉사에는 그 분이 남긴 정신세계는 어떤 것이며, 있을까. 무엇이 부족하여 타 시군이 하는 선양사업에 낄 수도 없는가. 라는 안타까운 질문을 던지며, 건봉사에 스며있는 만해의 업적과 정신을 찾아 과거를 잠시 뒤돌아보려 한다.

?만해 사상은 건봉사의 요람에서 잉태되다= 만해가 18세에 서당 훈장이 되었을 무렵, 일본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우리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고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는가 하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나라의 모습은 마치 바람 앞 등불 같았다. 만해는 마침내 더 이상 고향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하지만 서울로 가던 도중 어느 주막에서 밤을 보내다가 문득 중국 고전에서 읽었던 ‘인간의 삶이란 덧없는 것’이라는 내용이 떠올랐고, 이때 ‘먼저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그길로 발길을 돌려 속리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속리산에서 설악산에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백담사로 옮겼다. 이때가 1905년. 드디어 만해는 삭발 염의한 출가자가 됐다.
백담사에서 출가해 불교공부를 하던 만해는 당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던 고성 건봉사로 한 번 더 자리를 옮겼다. 건봉사는 사세가 커서 재산도 많았고 소장 도서도 많았다. 또 그곳에는 일본유학생들도 적지 않아서 나라 밖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만해는 건봉사에서 수없이 많은 책을 탐독하며 세계는 무한히 넓고 이제껏 알지 못했던 미지의 나라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만해는 건봉사와의 인연을 맺은 각별한 곳이였다.
1906(28세)년 만해는 명진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명진학교는 각 본산에서 청년승려 2명씩만 선발될 수 있었다. 명진학원은 현 동국대의 전신이다. 명진학교는 구한말 승려들이 불교의 근대화를 이끌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그 당시 정식 학교를 수료하지도 않았던 만해가 건봉사 추천으로 명진학교에 입학한 것은 파격이었다. 김광석의 <만해 한용운 평전>에 보면 건봉사 출신으로 백담사에서 만해에게 경학을 가르친 이학암(李鶴菴)의 적극적 소개에 따라 이루어진 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다.
신학문을 수학한 만해는 다시 건봉사로 돌아와 무불선원에 입방하여 선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였다. 1907년(29세) 만해는 최초의 선 수업으로 하안거를 건봉사에서 보냈다. 이때 정만화 선사의 법을 전수받고 큰 깨달음을 얻어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만해(萬海)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를 통해 만해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78세손으로 대선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용운(龍雲)’ 이라는 이름은 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만화선사(萬化禪師)의 제자가 되었을 때 얻은 법명이다.
특히 만해는 1908년(30세) 5월 근대문명이 발달한 중심부를 직접 보려는 마음에서 일본유학을 감행했다. 조동종대학에서 공부하는 한편 각처의 사찰, 공장, 은행 등을 견학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해 10월 건봉사로 귀국한 만해는 일본에서 보고 들은 문명을 민족운동에 활용하기로 결심할 뿐만 아니라 이학암에게 《반야경》과 《화엄경》을 배움으로써 건봉사와는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또한 1928년 다시 건봉사와의 인연을 이어가 건봉사 본말사지인《건봉사본말사적》을 편찬하여 발간하게 되었다.
?만해정신의 씨앗으로 세워진 민족의식과 근대 개화문명에 선각지 건봉사= 만해 한용운은 일본 조동종대학에서 공부하고 넓혀진 견문을 건봉사로 귀국하자 민족운동에 활용하기로 결심하였고, 만해를 시작으로 건봉사에 있는 다수의 승려들을 서울 및 일본에 유학을 보냈고, 특히 건봉사 출신 재일 유학생들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건봉사에서 불교의 근대화에 매진하였다. 이에 따라 건봉사는 여타 본사보다도 비교적 많은 재일 유학생을 배출하였는데, 이는 건봉사가 근대화에 앞장선 사찰임을 말해 주는 단서이다.
건봉사가 비교적 다수의 유학생을 배출한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지만 첫째로, 건봉사의 사세 및 경제력을 지적할 수 있다. 현전하는 유학생이 대부분 공비 유학생이라면, 유학을 후원하고 뒷받침할 수 있었던 사찰의 경제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는 건봉사만이 갖고 있었던 신문명과 신식 교육에 대한 정서, 분위기를 들 수 있다. 금강산의 외진 공간에서 설악산 일대의 사찰을 관리하면서 관동불교를 대변하였던 건봉사가, 그처럼 신문명과 신교육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음은 특이한 일이다.
또한 1906년에 건립된 신식 보통학교인 봉명학교의 존재를 주목한다. 즉 건봉사 출신의 재일 유학생은 대부분이 건봉사에서 개설한 봉명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현실인식, 신문명과 신학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민족불교의 구현을 이루겠다는 것이 봉명학교의 설립 이념이었다.
이 이념을 바탕으로 봉명학교에서는 토론회, 강연회, 독서반 운영 등을 특별 활동을 운영했는데 재일 유학생이였던 강사를 통해 진보적 흐름을 유입하는 교육과 만해 한용운에 의해 민족주의 흐름을 전파하는 교육을 운영하였다.
?만해와 문하생에 나타난 건봉사의 교육활동과 항일운동= 건봉사는 만해 한용운이 승려생활을 했으며 봉명학교를 세워 민족사상 계몽교육의 구심체가 된 곳이다. 또한 다른 사찰에 비하여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주로 맡겨져 건봉사의 부속학교인 봉명학교에서 소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또한 1921년에는 봉림학교를 설립했으며, 1926년에는 불교전문강원을 설립해 공비생(公費生) 30명을 선발하는 등 꾸준히 근대적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건봉사는 많은 근대적 학승들과 민족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또한 만해의 문하생들은 봉명학교를 중심으로 건봉사의 근대적 교육 환경에서 성장하며, 건봉사의 항일 전통을 이어 나갔다. 건봉사는 일찍이 사명대사가 승군을 길러 내고, 조선 말 의병활동에 건봉사 승려들이 참가한 것은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행정 중심으로 선양사업 추진해야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다.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는, 출생 생가가 있는 홍성군보다, 출가하여 승려로 잠시 수행했던 인제군보다, 입적할 때까지 거주했던 심우장이 있는 성북구보다, 더 깊은 만해만의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고성군은 만해 한용운이 건봉사에서 책을 탐독하며 꿈을 꾸고 뜻을 품은 곳이며, 법호와 법명을 얻어 선의 세계에 몰입한 곳이고, 만해의 씨앗으로 돋아난 민족의식과 근대 개화문명의 선각지며, 민족사상 계몽교육을 통한 항일 전통의 맥을 이어온 곳이다.
진정, 이러한데도 건봉사에는 만해 정신이 없는 것인가. 백담사가 만해가 출가한 불교 입문 고향이요, 문학과 사상의 요람이라면, 건봉사는 안거를 통해 심오한 불교 정신을 터득하여 큰 뜻을 품고 불교의 근대화운동과 개혁·민족사상으로 항일 전통 맥을 이어온 선각지다. 이 얼마나 큰 족적을 남긴 곳인가.
그런데 참 다행이다. 2020년 민선 7기 재선거 취임한 현 군수가 짧은 8개월 다양한 군정을 살펴오면서도 특히 문화·예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 뭔가 문화·예술에 싹이 트고, 잎이 돋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2020년을 「고성 문화융성 원년의 해」를 선포하고 「문화중심 도시 고성 건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얼마 전에는 ‘2020 문화경영 대상’ 수상을 했고, ‘고성문화재단 설립’를 목전에 두며, 정말 차별화 된 문화사업을 추진하려는 모습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좋다.
이제 우리 고성군은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만해 선양사업에 다른 자치단체 보다 더 앞장서서 몇 가지 중요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는 만해 한용운이 건봉사에 남긴 정신세계를 전국에 확산할만한 프로젝트를 구안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확인하도록 만해 정신의 본산인 건봉사에서 펼쳐야 한다. 이런 행위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고성에 위상을 찾는 것이며 만해가 남긴 업적을 기리는 길이라고 본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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