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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⑬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12월 10일(월) 09:3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여름내 지켜보던 새삼은 이제 거뭇거뭇한 씨앗, 열매로 남았다. 처음엔 냇둑 수풀 사이에 숨어 눈에 뜨일 듯 말 듯했던 것이 주변 식물을 감아올리면서 갑작스레 눈에 띄었다. 주로 ‘토사자’라는 씨앗 이름으로 옛 약초문헌에 등장하는 새삼은 발아한 뒤 다른 식물을 숙주로 삼아 자라는 기생식물이었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새삼이 숙주로 삼은 것이 칡덩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싹을 틔운 뒤엔 땅에 내렸던 뿌리를 거두고 허공에 뜬 채 줄기는 숙주를 감으면서 성장했다. 덩굴식물인 칡덩굴을 뒤덮으며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새삼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했다.
칡과 등나무는 갈등(葛藤)이라는 낱말로 굳어져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면서 서로 뒤얽혀 이해가 충돌하고 적대하는 것을 이르는데, 김종원 교수가 쓴 『한국 식물 생태 보감1』에 따르면, 이 두 식물은 한곳에서 만나는 게 어려웠다. 냉온대 식생지역에서 자라는 칡은 북쪽 만주로부터 한반도 지역을 거쳐 일본 열도까지 넓게 분포하는 반면, 등은 난온대 식생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갈등이라는 한자어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의 자등(紫藤)은 칡처럼 왼쪽으로 감는 식물이므로 서로 얽힐 수 없다고. 아무려나 우리는 이 낱말이 중국어에서 왔든 일본어에서 왔든 이미 입에 익었고, 북한어처럼 ‘마음다툼’이라고 쓰기도 어딘가 미심했다.
언제부턴가 칡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어느 한 철 나는 어른들과 함께 품삯을 받고 칡덩굴을 제거하는 일을 했다. 등에 약통을 짊어지고 칡덩굴 밑동에 농약을 주사하는 일이었는데, 농약은 칡덩굴을 고사(枯死) 시키는 역할을 했다. 월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죽이기 위해 정글 위로 뿌려댔던 고엽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을 살리고자 해서 무엇을 죽이는, 인위적인 행위는 뒤에 후유증이 없을 수 없었다. 칡덩굴 제거 작업을 했다고 해서 지금 산과 들에 칡덩굴이 사라졌나. 가령 오염이 심한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많은 솔방울을 생산하는 것과 닮았다.
나일론과 같은 인조 섬유가 등장하면서 그 쓸모가 사라졌지만, 칡줄은 말 그대로 줄, 밧줄로 사용했다. 나뭇단, 깻단, 명태도 묶었으며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맬 때도 썼다. 이파리는 음식으로, 뿌리는 약초로, 음료로 사용했으니 사람도 먹었고 소와 토끼도 먹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으나 지금은 기껏 술꾼들 쓰린 속을 달래주는 칡즙 정도로 쓰임새가 좁혀졌다. 이렇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산비탈 도롯가 절개지며, 숲 기스락엔 어른 팔뚝만큼 줄기가 굵은 칡들이 꼬지꼬지 덩굴을 이루면서 기세등등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칡덩굴에 여리고 약해 보이는 새삼이 뒤덮기 시작했으니 관심을 갖지 않으려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냇둑 근처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는 칡덩굴이 우듬지를 뒤덮으면서 고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근처에 잇달아 있는 소나무들을 칡덩굴이 솜이불처럼 뒤덮고 있었다. 이따금 주머니칼을 꺼내 칡 밑동을 자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내처 두고 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작은 생태계라도 인간이 개입해서 좋아질 확률이 적다는 뿌리 깊은 의심도 한몫했다.
남극에 살도록 진화하면서 최적화된 펭귄을 북극에 옮겨 놓는 게 인간이었으며, 인간에 의해 이 땅에서 사라진 동. 식물을 애써 되살려내는 게 또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남한에서 멸종한 한국 호랑이를 이 땅에서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과연 호랑이가 살 수 있는 터전일까 하는 회의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지리산 국립공원에 살도록 풀어놓은 반달가슴곰 KM53은 왜 애써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그것도 같은 종이라고는 한 마리도 없는 김천시와 거창군에 걸쳐 있는 수도산으로 갔는지 톺아보아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말을 모르는 동물에게 한 지역에서만 살라고 하면 네 발 가진 짐승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 숲을 깔아뭉개고 그 위에 집을 지었더라도, 최소한 인간과 자연, 동식물과 함께 살 궁리는 해야 했다. 농사철이면 멧돼지와 고라니를 비롯한 날짐승들, 농번기에는 또 너구리와 오소리 같은 산짐승들 때문에 농촌에 사는 이들은 아우성이었다. 멧돼지가 옥수수 밭, 고구마 밭에 들이닥치는 것도, 고라니가 벼가 한창 자라는 논배미를 헤집는 것도, 한밤중에 너구리가 개와 싸움을 벌이는 것도 설 땅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들이 사는 숲이 넓고 풍요로우면 애써서 인간들이 사는 마을까지 올 리가 없을 것이었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직접 보고 들은 호랑이, 여우와 늑대에 대한 이야기를 이따금 들려주었다. 쥐와 같은 설치류를 즐겨 잡아먹는 여우는 70년대 쥐잡기 운동으로 인해 농약 중독과 모피를 얻기 위한 사냥으로 남한에서는 멸종했으며 지금은 복원 중이었고, 죽어서는 가죽을 남긴다는 호랑이 또한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되었으며 늑대 또한 멸종했다. 어디 그뿐인가. 초가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구렁이 또한 멸종 위기 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랬으므로 우리는 이제 동물원과 책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이들과 만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숲속에서 뛰어노는 호랑이와 늑대는 이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들 호랑이, 늑대가 사라진 숲에서는 이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 즉 ‘우산종’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마을 숲정이에서도 어쩌다 눈에 띄는 담비는 털 빛깔이 몹시도 고왔으므로 이들 털가죽 또한 예외 없이 사냥꾼들 표적이 되었으나 지금은 모피 사냥꾼들도 사라져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던 담비는 지금 호랑이 없는 숲속에서 멧돼지를 사냥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 동네 개울엔 수달이, 숲정이엔 담비와 삵이 살았다. 어쩌면 이곳이 민통선이고, 최전방이었으므로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개울가 냇둑을 걷다 보면 짐승들 똥자리를 볼 수 있었다. 오래되어 비바람에 흩어진 무덤 위에 지난밤 누웠을 새 똥이 바람에 말라갔다. 수달 똥인지, 너구리 똥인지 미처 구분을 하기도 전에 새까만 고라니 똥 무더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수달은 족제비과, 너구리는 개과로 이들 똥자리도 그 모양과 색깔도 서로 달랐다. 너구리는 특히 아무 곳에나 똥을 싸지 않았으므로 똥자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오래 전 누었던 똥은 말라서 하얗게 색이 바랬고, 나중에 눈 똥은 새까맣고 반질거렸으므로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처럼 이 똥자리는 또 다른 식물들 거름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새삼의 잎은 퇴화하여 비늘잎으로 남았고, 꽃은 깨알만큼 작은 숭어리로 피었다. 새삼이 꽃을 피울 즈음 이미 칡덩굴 이파리들은 까맣게 질식한 뒤였다. 청학정 금강소나무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엿한 한 그루 소나무가 칡덩굴 때문에 질식사하는 것을 보았던 터라, 그 칡덩굴이 이번에는 칡덩굴보다는 줄기도 작고 이파리도 거의 없는 새삼에게 온 덩굴이 저당잡힌 채 말라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여러 가지로 착잡했다. 키 큰 소나무를 고사시킨 칡덩굴을 또 말려 죽이는 새삼은 그러면 천적, 목숨앗이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천적이 없는, 누구도 누구에게 임의로 목숨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먼저여야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럽고, 엉터리없는 세상이 조금은 견딜 수 있을 터였다. 언젠가 새까맣게 영근 새삼 씨앗, 토사자로 술을 담가 놓았고 아직 개봉 전이었다. 약초로 술을 담그는 것은 술맛이 궁금해서 그리하였으나 술을 담근 뒤로는 또 까맣게 잊었다. 그러고 보면 힘이 세다고 의기양양할 일도, 힘이 약하다고 주눅 잡힐 일도 아니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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