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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고성산불에도 온전하게 제 모습 지켜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22] 오봉산 아래 왕곡마을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 북방식 가옥 국가중요민속자료로 관리

2018년 12월 10일(월) 09:45 [강원고성신문]

 

↑↑ 오봉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민속마을, 왕곡마을. 책 108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왕곡마을은 오봉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민속마을이다. 마을 전체를 감 싸는 산세의 보호로 전쟁통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오봉산은 오음 산을 비롯해 두백산(두뱃재), 제공산(받도산, 순방산), 골무산, 호근산(갯가 산, 두모산) 등 모두 5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주봉인 오음산(해발285m)은 옛날 신선이 이 산에 올라 주변에 있는 장현리, 왕곡리, 적동리, 서성리, 탑동리 등 다섯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소리와 개 짓는 소리 등 오음을 즐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각에서는 궁상각치우 5음이기도 하고, 새소리, 파도소리, 물소리, 사람소리,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라고도 한다. 가뭄이 심할 때는 오음산 산정에서 개를 제물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기우제 영험이 있는 곳이라는 것에서 유래한 듯하다.
오음산 중턱에 선유담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마을 북쪽에서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두백산을 오르는 길은 풍광이 뛰어나 전망 좋은 등산로로 알려져 있고 이곳 산길 야생화가 만발해 찾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동쪽으로 에메랄드빛 동해, 공현진과 가진으로 이어지는 해안단애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 청정 석호 송지호, 서쪽으로 대꼬깔봉(죽변산)과 백두대간이 마주하고 서 있다.

↑↑ 19세기 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왕곡마을은 50여 가구가 마을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책 107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 왕곡마을

왕곡마을은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전국 6대 민속마을 중 한 곳이다. 전통건조물보존지구 제1호였으나 지금은 국가중요민속자료로 관리되고 있다. 병화불입지 또는 배산임수 지형의 대표적인 마을로 한국전쟁의 참화에도, 1996년 고성 땅을 집어삼킨 대형 산불에도 온전하게 제 모습을 지킨 신기한 마을이다.
강릉 최씨, 강릉 함씨의 집성촌으로 관북지방 전통 한옥과 초가 등 50여 동의 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은 북방식 ‘ㄱ’자형 겹집이 온전히 보존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외양간과 부엌, 마루가 같은 공간에 있는 문화재로서의 마을 가치 또한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마을을 감싸는 포근함과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옛 모습은, 마을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전통가옥의 앞뜰엔 대문이 없지만 뒤뜰엔 낮은 토담이 둘려져 있다. 앞뜰은 소통의 공간이고 뒤뜰의 공간은 아낙네의 전용 공간으로 사생활 보호를 위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대부분의 가옥은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고, 가옥 뒤에만 돌담이 높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개방 형태의 가옥구조로 보아 옛부터 이웃과의 친화성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책 109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 왕곡마을에는 굴뚝에 항아리를 엎어서 얹어놓는 풍습이 있다. 자칫 굴뚝에서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 붙지 않도록 하고 열기를 다기 집내부로 들여보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책 110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함씨와 최씨 그리고 마을배치

마을은 고려말엽 충신 함부열 선생의 둘째 아들 영건 선생이 세웠다고 한다. 이후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150여년간 살아오며 가옥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해 왔다. 양근 함씨가 마을에 정주한 것은 600년 정도 되었다. 조선왕조 이태조가 등극하는 것에 반대한 함부열이 아들과 함께 간성에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이후 차손 함영근은 오봉리로 건너와 자리 잡으면서 양근 함씨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한편 강릉 최씨는 희경공파 후손들로 21세손 응복 이하가 오봉리에 머물면서 강릉 최씨 집성촌이 이루어졌고 이들의 정주기간은 약 500년 정도 되었다.
마을 공간의 배치는 마을 가운데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안길을 중심으 로 가옥들이 자리잡았다. 대부분의 동족 마을이 그러하듯 왕곡마을 역시 집 촌集村을 이루고 있으나 평야 지대의 집촌과는 달리 가옥과 가옥 사이에 비 교적 넓은 텃밭을 조성하여 분리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마을에는 약 50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옥은 담장이나 울 타리가 없고, 가옥 뒤에만 돌담이 높이 둘러싸고 있다. 담장 안에는 과실수 가 심어져 있다. 가옥 앞을 담장으로 가로막지 않고 마당을 개방한 것은 다 른 가옥과의 친화성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가옥에서의 ‘마당’이 집안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생활의 중심지였던 기능성과 동네사 람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놀이터’가 되었던 공간성을 가졌던 점을 이 마을 에서도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독대는 후원에 두었다. 역시 아낙네의 공간에 두어 동선을 줄인 것을 알 수 있다.

↑↑ 가옥의 구조는 부엌에 외양간이 붙어있어 겨울철 온기를 보존하고 밖으로 나가야하는 동선을 줄이는 등 생활의 편의를 도모한 지혜가 엿보인다. 책 110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마을의 민속 풍습과 축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간성의 오음산은 기우제의 효험이 있는 산이라고 적고 있어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 동물의 피를 뿌리면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마을을 형제처럼 둘러싼 오음산, 순방산, 골무산, 두백산, 제공산 등 다섯 봉우리의 기운과 마을 풍습을 통해 전통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체취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제사를 둘째 아들이 모시는 풍습, 음력 1월 14일 오곡밥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묶음을 하는 풍습 등 그 유래를 마을 어른들의 구수한 입담으로 전해 듣는 재미도 있다. 매년 10월 체험탐방객이 북적거리는 왕곡마을전통축제도 놓치기 아까운 즐길거리다. 또 이 마을은 여름철에 한해 한옥 민박체험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오는 폭풍을 왕곡마을이 슬기롭게 막아낸 비결은 남다른 경제력에 있다. 우선 왕곡마을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거주자들은 주거지 안, 가옥과 가옥 사이에 텃밭에서 생산되는 물산만으로도 충분히 식량을 충족할 수 있었다.
특히 ‘제공산’과 ‘호근산’ 너머 넓은 평야의 대부분도 왕곡마을 사람들의 소유였는데, 강원도의 산간지방에서 이 정도의 농토를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자력갱생모범부락’으로 선정돼 도백(도지사)이 자주 다녀갔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렇듯 넓은 농토 외에도 왕곡마을은 재첩이 생산되는 호수(송지호)를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강원도에서도 남다른 부촌에 속했다. 그 덕분에 이 마을은 한국전쟁 때도 외부와 단절하고 온전히 지켜낼 수 있어 지금의 전통가옥 마을이 유지된 것이다.

↑↑ 마을 입구에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머물렀던 것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다. 은거하며 포교(1990년)를 했다고 한다. 책112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동학 교주가 머무른 곳

마을 입구에는 ‘동학의 빛 왕곡마을’이라 새겨진 탑이 있다. 『조선왕조실 록』에 동학교주 최시형이 고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듯이,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이 김함도와 함일순의 가옥에서 은거하며 포교(1990년)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이다.
그 외 마을에는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단지하여 살리는 등 효행이 뛰어난 함씨 사세5효자각과 함희석 효자각 등 후세 효행 에 귀감이 되는 비각들이 있고, 전통민속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또는 드 라마가 이곳 왕곡마을에서 다수 촬영되고 있어 깊은 산골마을로만 회자되던 것이 옛말이 되었다.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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