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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17]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2월 11일(월) 17:48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을 회억하고 애도하는 일은 쉽고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할 터였다. 어쩌면 그래서라도 죽음은 영영 말해질 수 없는 것일 테지만 그러므로 또한 애써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자드락길을 올라가면 큰 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새에 고묵은 금강소나무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치성을 드리는 장소였을 것이었고, 또 누군가에는 그저 쉼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었으나 아무려나 소나무는 그곳에서 백년 또는 그 이상을 노박혀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해 부지런한 어떤 이가 소나무 둘레를 북돋으면서 물이 고일 수 있는 웅덩이를 팠고, 그리하여 여름이면 마치 공원 쉼터 같아 보였으나 내겐 영 불길해 보였다. 그렇더라도 산책에 나서면 일부러 들러 한 번씩 올려다보곤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솔숲에서 들리는 소리는 차라리 아마득했다. 때때로 웅숭깊다 또는 수메깊다고 표현했지만 적절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면 소리는 볼 수 있었지만 들을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소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듣는 바람소리는 우물 속 어둠처럼 깊으면서도 폭풍이 휘몰아칠 때 바닷가 파도처럼 드넓었으나 이것만으로 솔바람소리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송뢰(松籟), 또는 송풍(松風)으로도 쓰는 솔바람은 그래서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스쳐가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끝끝내 다다를 수 없는 타인의 몸과도 닮은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소나무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있던 나무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 앞 대문에 왼새끼로 금줄을 치는데 여기에 솔가지를 끼어 넣는 것을 시작으로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솔가리를 불쏘시개로 소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난방을 했으며 생을 마치면 소나무 관에 누워 세상과 작별했다. 죽어서도 묘지 주변에는 도래솔이라고 소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았다. 어릴 때는 소캐, 즉 관솔로 횃불을 만들어서 정월 대보름 망월, 쥐불놀이를 했다. 우리 할머니 말씀으로는 석유도 귀하고, 전기도 없던 시절엔 불을 밝히기 위해 벽에 구멍을 낸 고콜에도 이 소깨로 불을 밝혔다고 했다.
이를테면 소나무는 궁중에서부터 일반 서민들까지 애용하는 나무였으며 심지어 궁중에서는 자신들만이 쓸 수 있는 소나무를 위해 금산(禁山)은 만들어 일반 백성들 출입을 막았다. 죽은 소나무 뿌리에서는 약재인 복령이 자라고 산 소나무에서는 송이가 돋았다. 그러나 이런 소나무도 병충해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에 걸려 병이 들거나 말라죽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특히 그 전염 속도가 빨라서 한동안 방제에 애를 먹기도 했다.
끝은 시작이라는 수사는 어쩌면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곤혹을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이었다.
낙엽처럼 흩어졌던 물까치 떼는 어느새 대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까만 머리에 흰색과 파란색 깃을 가진 물까치 떼는 그야말로 떼로 몰려다녔는데, 이들은 바닷속 돌고래만큼 가족애를 대표하는 새들이라고 전해졌다. 논들과 숲정이를 오가는 새떼는 떼를 지어 오고갈 때가 많았으며 오고갈 때, 그러니까 하늘을 날 때도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마치 짚불에 콩 튀듯 화락화락 하늘을 휘저어 놓는 듯해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다 얼얼했다.
까치와 물까치는 까마귀과, 때까치는 때까치과였다. 까치는 아침저녁 집 앞에서도 볼 수 있었고,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물까치를 보려면 들로 나가야 했고, 때까치는 흔히 볼 수 없어서 숲정이를 한참 살펴야 했다. 그런데 까마귀과는 있는데, 까치과는 없었다. 까치는 길조이고, 까마귀는 흉조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어느 스님은 절간에서는 아침 까마귀가 울면 손님이 올 징조로 여긴다고 했다. 마치 민가에서 아침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이웃에 사는 어떤 이가 까마귀 새끼를 길렀다. 그런데 그이 동무가 우리 집과 이웃해서 살고 있었는데, 이 까마귀가 자라면서 심심찮게 우리 집 앞 전봇대에서 울곤 했다. 어느 때는 감을 따먹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옥수수를 파먹기도 했는데, 연구에 의하면 까마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할 뿐만 아니라 도구를 사용할 줄도 알았다. 사람을 인식하기도 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보복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는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웃이 기르는 까마귀가 그이 동무 집 앞에서 우는 까닭은 그이가 이따금 먹이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쩌면 우리는 여태껏 달의 앞면만 보아왔던 것처럼 끝내 달의 이면에는 이르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죽음을 이르는 수많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이 깊은 어둠이었건, 회색빛 검붉은 어둠이었건 아니면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이었든, 또 아니면 바닷속 어느 심해에 이른 것이었든 말할 수 없으므로 자꾸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그러나 일가 피붙이 느닷없는 죽음을 말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대로 말해질 수 있는지도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사후에 로켓에 태워져 우주를 유영하고자 했던 한 사람이 새해 벽두 한밤중에 이승을 떠났다. 교통사고도 약을 먹은 것도 아닌 한밤중에 산속에서 산길를 걷다가 그만 숨이 꺼졌다. 그날은 바람이 간간이 불었고, 특별한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으나 해 질 무렵 산으로 약초를 또는 사냥을 하러 갔던 노인이 귀가를 하지 않아 실종신고가 접수되었고, 군과 경찰 그리고 소방대원들 심지어 산악수색대원들까지 출동하여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그 장소가 우리 동네 큰 산이어서 그는 그때 산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로 나서게 되었다. 저녁밥까지 잘 먹고 나서.
산을 좋아한다고 해서 산을 잘 알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달의 일면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타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타자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봄이면 고로쇠나무에서 물을 받았고, 가을이면 버섯을 땄다. 새해 첫날엔 앞산 산마루에 올라 해돋이로 신년을 축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산천에 대한 예의를 역설했다. 이를테면 옛사람들이 멧돼지를 잡았을 때 어떻게 천지신명께 감사인사를 드렸는지, 또는 바위벼랑에 사는 구렁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불어 산양과 오소리, 노루와 멧토끼와 같은 산짐승들 습성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물며 딸을 낳으면 송화(松花)라고 이름 지을 것이라고 해서 비웃음을 샀다.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든다고 했으면 얼마든지 그러려니 했으련만. 봄날 온 산천을 뿌옇게 물들이는 노란 빛깔의 꽃가루를 굳이 딸내미 이름으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기꺼이 비식거렸다. 또한 소나무는 암수한그루로 수꽃과 암꽃이 한 나무에서 피고 졌다. 어릴 때는 소나무 가지로 목총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했으며 한겨울엔 또 그 소나무 가지로 팽이를 깎아서 얼음강판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팽이를 쳤다. 그러면서도 화목보일러 땔감으로 소나무는 쓰지 않았다. 송진으로 인해 그을음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송진이 말하자면 소깨도 만들고 호박(琥珀)도 만들었던 것인데.
그는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태어나 새로운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매사 꼼꼼하고 깔끔했으며 때때로 섬세했다. 트랙터가 낡고 오래되어 잔고장이 잦아지자 그는 부품을 일일이 주문해서 스스로 고쳐서 썼다. 기계라면 어느 것이라도 입김이 어려 있을 정도로 애지중지, 아꼈다.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트랙터 부품이 집으로 배달 중이었다.
어느 날 문득 복권이 당첨되면 아주 좋은 고급 자동차를 사고자 했던 꿈도, 어릴 적 우주비행사가 되고자 했던 꿈도 이제 모두 꿈으로 남겨 놓은 채 그는 숲으로 돌아갔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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