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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보통학교 전교생 150여명 ‘대한독립만세’ 외쳐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27] 만세운동 진원지 간성보통학교와 와우산 비석거리
간성 장날 교문 나서다 제지·주동자 헌병대에 갇혀…와우산 일대 반공의거순국비·비석거리 조성

2019년 04월 11일(목) 09:16 [강원고성신문]

 

↑↑ 간성읍 와우산 중턱에 모아져 있는 18기의 영세선정불망비. 이곳의 비는 금강산 건봉사 부근이나 마을 길가에 흩어져 있었으나, 함병철(咸炳哲) 초대 고성문화원장이 1986년 이후 여러 차례 경운기와 인력으로 현재의 위치에 모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 강원고성신문


3·1운동만세 시위지 간성보통학교

고성도 다른 지역 못지않게 활발한 항일운동이 전개된 곳이다. 1919년 당시 개성의 한영서원에 다니던 이동진 학생은 간성에 귀향하여 지방청년 함기석과 함께 현재 군청 부근에 위치했던 간성보통학교 4학년 교실입구에 학생들의 각성과 만세 시위를 독려하는 독립운동에 관한 선전문을 부착하였다.
이 선언문을 읽고 자극받은 학생들이 앞장서서 같은 해 3월 17일 전교생 150여명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이 고성지방 최초의 만세운동이다. 이는 영동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기도 하다. 간성 장날인 이날, 장터의 군중들과 합세하여 만세시위를 펼치려고 학교 교문을 나섰으나 일제 관헌들에게 제지를 당하였다. 그리고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헌병 간성분견대에서 일주일간 갇혀 있었다고 한다.
이후 3월 27일 간성, 거진, 현내면 등 각지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벌였고, 마을단위로 남녀가 모여 밤마다 산에 올라가 불을 놓고 만세를 불렀다.

고성의 항일운동 인사들

3.1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만해 한용운 스님과 건봉사와의 인연은 간성까지 이어진다. 당시 만해 한용운스님은 백담사로 출가하여 연곡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연곡스님은 만해스님을 본사 건봉사에서 수행토록 하였다. 하지만 만해스님은 강원의 수행보다는 간성장터를 오가며 일제강점기 관헌들과 시비를 걸고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간성은 항일운동의 정신과 역사가 살아있는 고을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여럿 있다.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의 고성군 주요 인사로 손꼽는 간성출신의 권기수 열사는 강원도 영월과 평창, 정선지역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간성출신 이동진 열사는 간성지역에서, 고성 신북면출신 김동원 열사는 고성지역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운봉출신 김연수 열사와 이근옥 열사, 문명섭 열사, 백촌출신 이석규 열사, 아야진출신 김형석 열사는 애국단 활동, 현내출신 이재호 열사와 정남용 열사, 간성출신 정훈 열사는 독립 운동, 고성출신 김운봉 열사와 온정출신 김종화 열사는 항일운동, 고성출신 천성환 열사는 교사로서 독서회 활동, 외금강출신 홍태식 열사는 신아동동지회 활동, 고성출신 박용덕 열사는 민족문학잡지사 설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또 간성출신 권종해 의병장과 고성출신 김백룡 의병장, 율암출신 주광석 의병장, 간성출신 권인규 의병, 고성출신 이덕근 의병과 권석근 의병, 북고성 서면출신 권형원 의병, 외금강면 출신 김갑성 의병는 의병 활동으로 항일운동과 구국항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고성출신 권원호 열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각 분야에서 조국 광복과 항일운동에 헌신했다.
애국지사의 치열한 항일 독립운동과 헌신적인 의병활 동이 지금의 번영된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 후손들은 애국지사의 숭고한 뜻 을 기리고 이어가야 할 것이다.

↑↑ 반공의거순국비. 책 133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반공의거순국비와 비석거리

간성읍 상리에 위치한 간성읍성의 일부로 추정되는 와우산(고성군청 뒷산)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와우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에는 수령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굴밤나무가 있는데, 그 앞에 충혼탑과 반공의거순국비가 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고성지역은 북한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해방되어 기뻐한 것은 잠시일뿐 북한 정권이 들어서자 혼란스러웠다. 1947년 9월 간성향교 추계 석존대제에서 우익계 인사들이 애국회를 비밀리에 결성하고 반탁운동과 무장궐기를 결의했다. 1947년 12월 남한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애국회 결사대원이 북한 수사기관에 적발되었고, 애국회원들은 체포되어 북한 법정에서 5년에서 20년의 장기형을 언도 받고 옥사 또는 학살되었다.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66년 8월, 이곳에 반공의거순국비를 세우고 매년 위령제를 지낸다.
충혼탑과 반공의거순국비 앞은 지역에 선정을 베풀던 역대 군수의 영세불 망비와 송덕비가 즐비하게 세워져 있어 일명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1871년 2월에 세워진 군수 이인정 영세불망비를 비롯해 군수 이면익 영세불망비, 군수 정재용 영세불망비, 관찰사 정공태호 영세불망비, 군수 서유여 선정비, 군수 이용학 거사비, 군수 구음청백거사비, 군수 김시보 영세불망비, 군수 송재의 영세불망비, 군수 육군참령 이준구 영세불망비 등 주변에 흩어진 송덕비와 영세불망비를 모아 한 곳에 정비해 놓은 것이다.
군수 이인정은 재임 동안 제단과 제물보관소, 제관방을 지었다. 1870년 객사를 다시 짓고 담장과 더불어 동쪽 대청 앞으로 작은 문을 내고 허물어진 청사를 헐어내는 등 4년간 많은 공적을 남겼다. 군수 정재용은 1842년 청간 관을 다시 고쳐지었고 1846년 건봉사 북쪽 요사채가 화재가 나자 강원도관 찰사 박종길에게 서면 보고하여 임금의 은총을 받도록 하였다. 비는 건봉사 에 있었으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군수 서유여는 각 마을에 170량을 세 번에 나누어 주고 원금은 유예하고 15좌에 대한 이자만 받게 했다. 그리고 마을이나 종중에게 돈을 변통해 주고 원금은 존치시키되 증식 된 이자만 내도록 했다. 읍내에 있던 비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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