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19-12-11 오후 02:07:1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교육일반문화.스포츠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19-12-11 오후 02:07:14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숲에서 숲으로 [21]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4월 17일(수) 09:3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메마르고 까칠까칠하며 뜨뜻미지근하던 겨울이 여전히 뭉그적거리고 있었지만 어느 것은 싹부터 틔웠고, 또 어느 것은 꽃부터 피웠으니 아무 데나 걸어도 온몸에 생기가 돌 것 같은 날, 먼저 나온 날짐승, 들짐승과 산짐승들이 산들을 누비며 온통 분주탕이었다. 그 가운데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울음소리가 단연 드높았다. 냇물의 높이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으나 작벼리 버들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버들개지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숨탄것들은 하나같이 기지개를 켜며 발돋움을 시작했다.
자신이 심은 나무를 십수 년이 지나 만나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오며가며 멀리서 운봉산을 바라다보기는 했지만 까맣게 잊은 날들이 더 많았다. 나무를 심은 뒤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은 그 나무들 안부가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찾을 까닭이 없었고, 더구나 일반에게 등산로가 개방된 것은 불과 수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사람이 변하듯 숲도 변할 뿐만 아니라 나무를 심은 사람이 나였다고 해서 그 나무의 주인이 곧 나인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나무를 심게 된 것은 2000년 4월 7일, 토성면 학야리에서 시작된 산불로 1210ha에 이르는 산이 불탔기 때문이었다. 불이 난 뒤 관내 산림조합에서 일꾼을 모아 품삯을 주고 나무를 심었고, 나는 이웃 동네 전 아무개 어르신 팀에 합류하여 팀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어르신들과 함께 나무를 심으러 이 골짝 저 골짝 다람쥐처럼 옮겨 다녔다.
운봉산 일대에 심은 나무는 튤립나무와 자작나무가 주종을 이뤘다. 그때도 뜨악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북아메리카 원산인 튤립나무, 즉 백합나무를 심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속성수, 다시 말하면 빨리 자라는 나무라고는 하지만 굳이 북미 원산인 나무를 산중턱에 심는 까닭을 몰라서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서너 아름이 넘는 튤립나무들이 있었다. 그 학교는 일제강점기에 농업학교로 출발했는데, 교정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이 튤립나무도 있었으나 무심했다. 도서관 앞에 자귀나무가 있었고 그때는 나무 이름을 몰라서 우리끼리 ‘천사 꽃’이라고 꽃 이름을 짓기는 했지만. 튤립나무는 192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7번 국도에서 운봉산을 바라다보면 거대한 학교 종처럼 보였다. 멧부리로 오르는 등산로는 세 곳인데, 먼저 운봉리 용천사 쪽에서 시작했다. 용천사 쪽과 학야리 쪽은 산의 물매가 가파르나 용천사 쪽에서 오르면 식재한 튤립나무 떼판을 볼 수 있고, 학야리 쪽에서 오르면 그 유명한 현무암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으며 운봉리 미륵암 쪽에서 오르면 구불구불 휘돌며 거북바위와 같은 거대한 바윗돌과 산중턱에서 샘을 볼 수 있으나 아무래도 내 관심은 내가 심은 나무들 안부가 먼저였으므로 용천사 쪽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맸다. 그날은 마침 삼일절이었고, 인근 부대에서 나온 장병들이 삼일절 100주년 기념을 위해 산에 오르기 위해 앞장을 섰다. 내 걸음으로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니 멀찌감치 뒤섰다.
줄 맞춰 늘어선 튤립나무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속성으로 자라서 바람을 덜 탄 나무들은 벌써 아름드리로 미추룸했고, 바람 부리에 선 나무들은 기름하기는 했으나 몸피를 늘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반가웠다. 가만가만 나무의 겉껍질을 쓸어보았다. 봄이 오고 있었으니 나무에 물 흐르는 소리라도 힘차게 들렸으면 좋으련만 내겐 그저 나무들 거친 껍질만 느껴질 뿐, 미세먼지로 인한 답답함이 쉽게 가시지 않아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리쉼을 했다. 앞선 장병들 걸음으로 오르면 채 이십 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를 해찰하면서 놀민놀민 마냥 늘어질 듯하던 걸음을 재촉했던 것은 나무 계단 때문이었다. 물매가 가파르고 낡삭아 푸실푸실해진 화강토 때문에 계단을 놓았겠으나 거인의 걸음걸이가 아니라면 봉충걸음이 되기 일쑤였다.
튤립나무들 사이로 길이 났고, 안내판도 하나 서 있으나 튤립나무에 대한 소개만 있을 뿐 왜 운봉산 중턱에 튤립나무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풍경은 기원을 은폐하기 마련이라지만 기왕 안내판을 세운 것이니 튤립나무를 식재하게 된 배경까지 설명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남아서 못내 아쉬웠다. 우리 집 마당에도 그때 얻어 온 튤립나무 한 그루가 이제는 지붕을 넘어서 키 큰 전봇대만큼 자랐다. 덩치와는 다르게 연노랑 빛깔의 꽃은 찔레꽃머리에 튤립 꽃 모양으로 소주잔만 하게 피었으며 늦가을에 맺는 열매는 흔히 구과(毬果)라고 불리는 길둥그런 모양으로 여러 겹의 비늘 조각이 포개졌다. 씨앗은 아무데서고 싹을 잘 틔워서 봄이면 어린 싹을 없애는 데 손품을 보태야 했다.
다리쉼을 하면서 먼 데도 잠깐씩 둘러보았으나 먼지로 가로막힌 세상은 더 이상 시야 확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원리 쪽에서 발원한 문암천은 뚜렷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문암천이 다다른 동해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능파대가 있으며 이곳에 있는 바위들은 바닷바람에 씻기고 닳아서 벌집 같기도 하고, 해골 같기도 하며 또 너른 안반 같기도 하고 높이 치솟은 봉홧불 같기도 해서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벌집 모양의 타포니(taffoni)와 접시 모양의 나마(gnamma)로 이루어진 능파대는 그야말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돌섬이었지만 이 또한 세월이 흘러 육지와 맞닿으면서 이제는 해안선이 되었다.
능파대엔 필적의 주인에 대한 논란이 있는 바위 글씨도 있으나 나무 계단으로는 갈 수 없고, 바윗돌을 타고 넘어야 하며 바닷바람에 씻기고 깎여 글자는 희미한데 거기에 낙서까지 생겼으며 최근엔 능파대 바위들과 잇대어 삼발이 즉 테트라포드를 설치했다. 오호 서낭바위처럼 능파대에도 실타래를 놓고 촛불도 켜고 그리고 잔을 붓고 정성을 들이는, 그러니까 서낭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장소로서 흔적은 여전했지만, 주변은 이런저런 쓰레기들로 에넘느레했다. 쓰레기는 운봉산 멧부리, 오호 서낭바위도 마찬가지였다. 발품을 들여 찾는 장소를 푸대접하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운봉산은 고성군에 있는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가운데 하나로 신생대 제3기 현무암 분포 지역이다. 신생대 제3기는 약 6,500만 년 전부터 200만 년 전까지의 시기라고 하는데 인간의 시간으로 지구의 역사를 헤아리는 일은 늘 아마득하다. 그러나 용천사 쪽에서 산 정수리로 오르면 흔히 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부르는 현무암 지대, 즉 돌이 흘러내리는 듯한 돌강은 보기 힘들었으므로 학야리 군부대 쪽에서 올라야 한다. 운봉산은 화강암 기반 위에 현무암을 올려놓은 듯한 형국인지라 학야리 쪽에서 오르다 옆길로 가로새면 말 그대로 장대한 돌강과 마주할 수 있다.
육각형의 돌기둥이 있는가 하면 깨지고 부서진 돌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제각각인 돌들이 서로 뒤엉켜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면서 골짜기와 마루가 생겼으며 마치 물길이 난 듯 높고 낮았으며 가장자리에는 또 소나무와 참나무류 그리고 생강나무와 노박덩굴들이 돌들 사이에서 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돌강, 그 돌들 사이에 서 있으면 마치 수백만 년의 시간이 내 앞으로 돌진하는 듯하여 섣부르게 발을 내디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기세만으로도 넉넉히 시간 앞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올려도 자연의 시간에 댈 수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시간이 하찮은 것은 또 아닐 것이었다. 자연의 시간 속에 인간의 시간이 스며들었고, 인간의 시간 속에는 또 자연의 시간이 섞여들어 서로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었다.
길은 여러 갈래였지만 여러 갈랫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으므로 어느 한 곳을 택해야 했다. 잘못 찾아든 길에서는 노루를 만났으나 정강이엔 생채기가 났다. 길을 되짚어 올라 등산로를 찾았고, 미륵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놀라운 것은 산 정상 아랫부분에 빙 둘러가며 토치카, 그러니까 참호가 있는데 이 참호와 참호를 잇는 교통호가 등산로로 사용되고 있었다.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신평에 ‘한옥리조트&현대식호텔’ ..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절 트..

선배들의 3.1만세운동 기려

시니어클럽 마을환경개선 활동 호응

토성면 도원~원터 군도 6호선 준공

“새로운 설악권 만들기 혼신 다할 ..

광역 해양관광복합지구 조성사업 본..

어수선한 연말, 끝이 아름다워야

고성군의회 2020년 새해 예산안 심..

농한기 건강백세 운동교실 호응

최신뉴스

고성군선관위 중학교 선거체험 행..  

내년 예산안 3,542억원 편성  

간성읍 주민자치회 17일까지 위원 ..  

‘한반도 환경복원 지속가능성’ ..  

고성군 제17회 강원도 에너지 대상..  

고성군 장기 압류물건 일제정리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비용제한..  

고성군의회 2020년 새해 예산안 심..  

간성읍 흘1리 ‘화재없는 안전마을..  

‘희망 2020 나눔 캠페인’ 성금모..  

불조심 포스터 공모 우수작 12점 ..  

고성서 교통사망사고 감소율 도내 ..  

고성지역자활센터 신문지봉투 제작..  

고성지역 자살률 해마다 감소  

농한기 건강백세 운동교실 호응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hanmail.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