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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⑨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8년 10월 10일(수) 12:3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에어컨을 놓자는 어머니 말씀에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에어컨이라니요? 여태껏 방마다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났고, 우리 집엔 그 흔한 전자레인지도 없는데, 에어컨이라니.
지난 8월 1일, 현대식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섭씨 41도(강원 홍천)를 기록하며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각종 매체에서는 가장 뜨거웠다던 1994년을 언급하며 매일매일 위로만 치닫는 기온을 전하기에 바빴다. 인간의 체온은 약 37도이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은 이미 재앙이었다. 밤이 되면 기온이 낮아질 것이란 기대도 판판이 깨지면서 밤과 낮 구별 없이 그저 숨 막히게 무더웠다. 찬물에 씻고 돌아서는 순간 땀으로 뒤발했으며 찬 것도 입에 넣는 그 순간뿐 어느 것도 더위 앞에서는 쓸데없었다. 구옥(舊屋)인 우리 집은 말 그대로 김이 펄펄 나는 가마솥이었다. 문마다 방충망을 달고 문을 죄다 열어놓았으나 안팎의 공기가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어컨(air conditioner)은 냉장고보다 9년 먼저 1902년 미국 뉴욕에서 윌리스 캐리어라는 이가 발명했다. 발명 당시는 인쇄공장에서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해서였고, 초기엔 기계를 냉각시키기 위한 용도였다. 가정에 보급된 것은 1920년부터였다. 그러니까 에어컨이 인류에 등장한 지는 이제 백 년쯤 되었지만, 그 이전 이미 기원전부터 인간은 더위를 식히는 방법을 찾는데 골몰해 왔다. 이를테면 로마에서는 수로를 벽으로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1600대는 천장에 추를 매달아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 등으로.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 옛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파초선을 들고 춤추는 그림이 있고, 옛 그림에도 파초선과 쥘부채 등 다양한 부채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부채는 오랜 옛날부터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여름 필수품일 것이었겠으나 오늘날 내가 손에 든 부채는 더위를 식히는데 찰나도 기여하지 못했다. 밤낮없이 선풍기를 틀었다. 나중에는 선풍기(扇風機) 바람이 사막의 열풍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는 사계절, 봄여름가을겨울이 뚜렷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지난겨울엔 한파가 혹독하더니 올 여름엔 극염으로 어떤 수고도 부질없게 만들었다. 개와 고양이도 그늘을 찾아 스며들었다. 집 앞 마당에 호스로 물을 뿌려도 한순간에 휘발되고 말았다. 냇가에도, 바닷가에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찌물쿠고 끈적거렸으며 뜨겁고 어지러웠다. 땀구멍마다 곰팡이가 자라는 듯했다.

마을에도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들이 하나둘 늘었다. 선풍기와 부채로 한여름을 나던 어르신들이었다. 대개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놓아주었다. 전기요금이 무섭다고 에어컨을 꺼리던 이들이었다. 논밭일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고, 어른들은 올 같은 해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입맛을 잃었으며 온열환자가 생겼고, 남새와 과일들이 아등그러졌다. 비마저 내리지 않는 강더위였다.
폭염 앞에 에너지 절약이라는 구호는 공허했다. 하물며 누진제(累進制)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1974년 처음 실시한 ‘전기요금 누진제’는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되었고, 산업용 전기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았으며 싼값에 제공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지속되었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된 ‘기후변화협약(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은 1997년 교토의정서를 통해 ‘선진국으로 하여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기준으로 5.2% 줄이기’로 했고, 우리나라는 2005년 비준했으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경제적 이유와 자국법상 문제를 이유로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으며, 다시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해서 2015년 파리에서 195개국이 ‘신(新)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다 함께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였으나 미국은 2017년 탈퇴했다.
‘1톤의 석탄을 태우면 2.5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제프리 힐 지음, 『자연자본』, 여문책, 2018)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 주범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물질이다. <2018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발전량 중 핵발전은 26%, 석탄발전은 46,2%로 70%가 넘는데 반해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8%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여전히 핵과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우리는 전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재생에너지라고 문제가 없는 것일까.
‘지구온난화와 농업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을 통해 섭씨 32도 이상의 기온이 단 며칠만 이어져도 주요 작물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앞의 책) 그렇지 않아도 텔레비전에서는 고온으로 인해 과일들이 열상을 입었고, 채 익지도 못하고 떨어진 도사리와 시뻘겋게 탄 고랭지 배추를 보여주었다. 과일과 채소 가격이 폭등하고, 한편에서는 추석 차례상을 걱정했다. ‘북극곰의 눈물’은 이제 우리들 일상이 되었다.
우리 동네엔 수 만평에 이르는 솔수펑이를 밀어내고 태양광발전소를 지었다. 심지어 큰길 옆에도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섰다. 도롯가 전봇대가 한층 더 높아졌으며, 한낮이면 태양광 모듈로 눈이 부셨다. 한여름 느티나무 그늘을 떠올렸다. 솔숲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태양광 모듈로 둘러싸인 마을, 어느 것이 우리 삶에 이로운지 곰곰 따져 볼 일이었다. 그리고 자연은 사유재산이기 이전에 공공재였다. 누구나 함께 그 혜택을 누려야 하는.
어린 시절 동네 샘터 물길에는 돌멩이로 지질러 놓은 알항아리들을 줄느런했다. 그 속에는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등이 들어 있었다. 물을 길러 또는 세수를 하러 나왔다 슬그머니 뚜껑을 열고 열무 한 가닥, 오이소박이 하나 꺼내 먹고 시치미를 뗐다. 어른들이 아이들 과일 서리를 눈감아 주었듯 샘터 알항아리 속 김치를 꺼내 먹어도 짐짓 모른 척 했다. 또한, 알항아리 주인들도 어느 정도 서리 맞을 것을 각오하고 집밖에 김치항아리를 내놓았을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한겨울에 두껍게 언 얼음을 잘라서 보관하는 방법으로 한여름 무더위를 식혔다. 그러니까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빙고(氷庫)가 이제 냉장고(冷藏庫)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되었다. 냉장고는 1911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사에서 최초로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었고, 우리나라는 1965년 지금의 엘지 전신인 금성사에서 만들었다. 처음 냉장고가 등장했을 때는 물론 서민들이 이용하기엔 무척 비쌌지만, 지금은 에어컨 보급률이 80%에 이르렀고, 냉장고는 또 어떤가.
양문냉장고, 김치냉장고, 냉동고, 저온저장고 등은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모두 ‘냉매(冷媒)’라고 하는 물질을 사용한다. 열을 낮추려고 사용하는 이 냉매라는 물질이 바로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면서 기후.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점점 더 용량이 큰 냉장고와 냉동고, 그리고 에어컨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냉방은 기본권이라고 하는 시대가 되었고, 폭염을 견디는 데 에어컨만한 것이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한파엔 난방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폭염엔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동안, 지구는 사막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자연 속에 인간이 터를 잡은 이상, 인간과 자연은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숲을 떠나온 인간에겐 자연은 여전히 참을 수 없이 불편했고, 그 불편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갖은 전자제품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끝내 온실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푸른 하늘, 울울창창한 숲,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냇물을 꿈꾸는 것은 또 무엇인지.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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