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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31]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10월 28일(월) 08:5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고묵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자, 너울이 이는 듯한 먼산주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깊고 두껍게 갈라진 검붉은 보굿이 눈에 띄는 오래된 소나무들과 길차고 미추룸한 참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진 숲은 때로는 깊은 탄식과도 같이 또 때로는 한여름 세찬 소낙비와도 같이 휘춘휘춘 뒤흔들리며 소리 내 울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먼 데를 꿈꾸는 일은 소품치는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아슬아슬 위태로웠다. 하지만 가로대를 향해 한순간 호흡을 멈추고 허공을 박차 오르는 찰나 아무런 상념마저 허락지 않았으므로 먼산주름은 점으로 소멸하고 소리는 귀가 멀 정도로 높아졌다.
아침노을이 번지는 이슬아침에 숲으로 향했다. 추석을 지낸 뒤부터 마을은 전염병이 돌듯 술렁술렁했다. 올해는 추석이 일렀으므로 그렇다고는 해도 추석을 지난 뒤에도 버섯을 땄다는 이가 없었고, 숲에 다녀온 이들마저 숲이 메말랐다고 전하느라고 바빠났다. 노인들은 들깨 꽃이 피면 송이가 날 것이라고 했지만, 깻송이가 여물어 내일모레면 베어야 하는 때가 당도했는데도 버섯 소식은 감감했다. 또 어떤 이는 밤이 아람이 내리면 버섯이 날 것이라고 했다. 큰 산을 올려다보고 한숨 한 번, 치어다보고 또 고갯짓을 해도 그저 그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성급한 어른들은 올해 버섯은 그른 게라고 벌써부터 낙담하며 혀를 찼다.
숲 기스락에 떼판으로 피었던 물봉선은 하마 지고 있었으며 냇둑에 코스모스는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쑥부쟁이와 미역취, 그리고 마타리 꽃이 피었다. 여름내 북쪽 상수리나무 숲을 오고가던 파랑새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고,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깐 제비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비행 연습을 하느라고 종일 논들과 전봇줄 근처가 북새통이었다. 올밤은 아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꾼우꾼 벼 익는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올벼 논에 ‘콤바인’이 들어갔고, 논들엔 트럭과 트랙터들이 줄을 지어 오갔다. 볏짚은 썰어서 논바닥에 깐 곳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알곡만 턴 채 그대로 펴서 두었다. 소먹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마을에 인구는 줄어들고 있었으나 날로달로 늘어나는 것은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대규모 축사뿐이었다. 이제 전기와 육류는 인간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가을이 오면 숲 입새에 둘러놓곤 하던 붉은 금줄이 낡삭았지만 올해는 새 줄로 바꾸지 않았다. 매해 마을 청년들과 함께 줄을 둘러치던 젊은이가 새해 벽두에 불귀의 객이 된 까닭도 없지 않았다. 꽃 피는 봄날 혼인예식을 앞두었던 그이는 바로 그 숲, 산에서 실종된 이를 찾기 위해 앞장섰다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떠난 자는 떠나서, 남은 자는 남아서 슬픔에 잠겼으나 꽃은 피고 또 지고 있었다.
버섯이 날 것 같다느니 안 날 것 같다느니 옥신각신하는 사이 육십여 년째 봄가을이면 숲을 오가던 이웃마을 노인께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셈인 양 숲에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이따금 그동안 있어 온 전례, 또는 노인들 경험을 믿는 편인지라 노인이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 자못 궁금했다. 그 사이 나 또한 숲에 들었다. 땅 밑 속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숲은 어제와 다른 매우 거칠고 메말라 보였으며 그 흔한 ‘잡버섯/똥버섯’마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이 잡버섯/똥버섯이라고 부르는 버섯은 기실 마을에서 식용하지 않는 모든 버섯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들 버섯들 일부는 식용버섯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널리 알려진, 로마 네로 황제가 버섯 무게만큼 황금으로 주었다는 ‘달걀버섯’도 있었다.
어릴 때는 송이, 능이는 물론이거니와 달걀버섯, 갓버섯, 꾀꼬리버섯들도 다 먹는 버섯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버섯은 송이와 능이, 그리고 싸리버섯과 벚꽃버섯이라고 도감에 나온 밤버섯, 까치버섯으로 도감에 실린 곰버섯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버섯들은 그저 잡버섯 취급을 하며 아예 채취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버섯들이 위의 버섯으로 좁혀진 까닭도 없지 않았다. 그동안 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던 노루궁뎅이버섯은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물론 양식도 하고 있다-새롭게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계곡의 물소리가 거세차게 들렸으며 동트기 시작한 햇살은 나무들 사이에 볕뉘를 만들면서 옮겨붙었다. 정밀하고 고요하여 풀이파리 움직임까지 느껴질 법하였으나 내 숨결은 사뭇 거칠어서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거친 암벽 옆에 매해 피고 지던 참배암차즈기는 꽃 피지 아니하였고, 그 옆에 구절초 또한 봉오리만 간신히 부풀었다. 참배암차즈기는 연노랑 빛깔의 꽃 이파리가 마치 뱀이 입을 벌린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었고, 한국 특산이라고 알려진 식물이었다. 전례나 절기에 따르면 꽃은 이미 활짝 피었어야 했다.
사람들 발자국을 더듬으며 자국길에 새로 생긴 오소리 똥굴을 유심히 살피면서 더 높은 산마루를 향해 나갔다. 지난봄에 솎아베기한 숲은 제겨낸 나무와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어 발을 내딛기가 버거울 지경이었다. 간벌(間伐), 즉 솎아베기를 하면 베어낸 나무든, 제겨낸 가지든 이른바 ‘집지(集枝)’를 하여야 하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서 솎아베기를 한 경우엔 집지한 곳을 찾는 일이 마치 모래불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다.
올해도 지난해 찾았던 능이버섯 자리를 찾았다. 매해 내 나름대로 기준점으로 삼는 곳이었다. 고리 모양으로 버섯이 돋던 자리에는 낙엽과 부엽토가 파헤쳐져 있었을 뿐 버섯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능이, 송이는 해마다 거의 같은 곳에서 돋았으므로 ‘밭’이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으며 아버지가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않는다고 하는 게 바로 ‘송이밭’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옛말이었다. 해마다 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었으므로 밭을 혼자 독점할 수도, 건사할 수도 없었다. 물론 사유지라면 금줄을 치는 것으로 대응하겠지만, 국유지인 경우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은 제때,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임대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키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들 싸움이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으로 끝이 나면 다행이었지만 때로는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했다. 버섯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부접을 못하는 사람처럼 이쪽 등마루 저쪽 골짜기를 헤덤벼치며 능이가 돋았던 곳과 송이를 만났던 곳을 찾아다녔다. 어느 핸가 송이를 만났던 곳에 다다랐다. 사람이 다녀간 자국은 없었으나 산짐승이 솔검불을 파헤친 흔적은 선명하여 머리를 빠트리고 돌아섰다. 다른 버섯들 이를 테면 무당버섯, 광대버섯, 껄껄이그물버섯, 나팔버섯도 한 꼬투리 볼 수 없었다. 버섯은 흔히 줄로 나기 일쑤인데, 송이와 능이도 그렇지만 싸리버섯과 밤버섯, 그 가운데 어느 해 줄로 난 밤버섯을 헤아려 보니 백여 개에 달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따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한편에서는 고인이 된 그이가 버섯을 다 가져간 모양이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거렸지만 아쉬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산에 다녀온 이웃마을 노인께서 ‘송이풀(꽃며느리밥풀꽃)’이 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올해 버섯을 틀린 게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곧이어 이웃집 아무개 씨가 지난해 능이 났던 곳에 다녀왔는데, 채 자라지 않은 버섯이 썩고 있노라고 전했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고 이웃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가리산지리산이었다.
추석이 지난 지 이주쯤 되자 슬몃슬몃 버섯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른들은 별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한꺼번에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처럼 숲으로 향했다. 인간은 숲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감할 수밖에 없으므로 외려 버섯이 돋아서 신기한 것이 아니라 온통 버섯에 집중하는 그 인내력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 버섯도 그저 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버섯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또는 버섯이 흥청망청 돋는다고 해서 우울해 할 일도, 웃음꽃을 피울 일도 아닐 듯했지만 인간사, 세상만사가 어디 교과서처럼 논리정연하게 벌어지던가. 꽃 진 자리에 여태도 벌떼는 잉잉대며 날고 있는데.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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