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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흥사 등 9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사찰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39] 조선의 대찰, 건봉사
불국사보다 8년 앞서 창건… ‘염불만일회’ 발상지, 임진왜란 때 의승병 활동

2019년 11월 14일(목) 10:46 [강원고성신문]

 

↑↑ 1920년대 건봉사 전경. ⓒ건봉사 소장. 책 207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사찰경내에 들어서면 길찬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금강송 우듬지에 파란 하늘이 머물고, ‘불이문’ 곁 팽나무는 사천왕을 대신하고 섰다. 광장 중앙에 만해 한용운스님과 월북작가 조영출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고, 한 켠엔 사찰 안내판이 서 있다. 흑백 사진은 1920년 경 건봉사의 전경이다.

조선시대 대가람 건봉사= 조선시대 대찰로 알려진 건봉사는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를 비롯해 9 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 서기520년 신라 법흥왕 7년 아도화상에 의해 원각사로 창건된 건봉사는 현재 우리나라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인 경주 불국사보다 8년 앞서 건립되었다. 규모면에서도 현재의 불국사보다 400여 칸이 많은 3,183칸이었으나 1878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복원사업을 통해 대웅전과 관음전, 사성전, 명부전, 독성각, 산신각, 단하각, 진영각, 범종각, 봉청루 등 총 642칸이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가 1991년부터 대웅전과 봉서루, 명부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산신각, 반두방 등 일부가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터무니만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염불만일회는 염불만일도량, 만일회라고도 하는데 신라 경덕왕 7년 건봉사에서 발징화상에 의해 최초로 열렸다. 사후 극락정토에 태어나기 위해 주야로 나무아미타불을 소리 내어 염불 수행하는 것으로 정신·양순 화상 등 31명과 염불 만일회를 만들고 향도 1,828인이 자원하여 기도하였는데 787년 신라 원성왕元聖王 3년 도량 문밖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아미타불이 관음, 세지 두 보살과 함께 자금연대를 타고 이르러 염불하는 대동을 맞이하여 극락세계로 돌아갔다. 이때 스님 31인은 육신등공肉身騰空, 상품 상생하여 의복과 식량을 공급하고 염불향도 1,828명 중 913명은 단정히 앉은 채 왕생하고 18인은 상품중생에, 31인은 상품하생에 왕생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31 인 유골등공기념지탑이 건봉사 북쪽 산자락에 있다.

↑↑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탈해 간 부처님 치아사리 8과를 사명대사가 되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했다. 책 208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석존진신치아사리= 사찰엔 진기한 보물이 있다. 석존진신치아사리다. 치아사리는 전 세계 모 두 15과가 있는데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갔다가 13과를 들여와서 영남지역의 사찰에 봉안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수탈해 일본에 가져 간 것을 사명대사가 왕명을 받고 사신으로 건너가 되찾아와 이곳 건봉사에 봉안했다. 그런데 1986년 또 다시 사리탑이 도굴되어 사리를 모두 잃어버리는 수모를 겪었다. 신도들은 백방으로 사리를 찾았으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리는 종단에서 되찾아 보관하고 있었다. 신도들 은 종단에 보관하고 있는 사리를 건봉사로 되돌려 줄 것을 요청했으나 종단은 거절했다. 결국 신도회는 조계종 종단과 재판 끝에 8과를 되찾아와 이곳 에 다시 봉안했다. 현재 3과는 새로 만든 사리탑에 봉안하였고, 5과는 염불 만일원 내 투명한 관으로 덮인 금장식 용기에 담겨 신도와 탐방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 임진왜란 당시 건봉사에서 의승병을 이끌고 봉기했던 사명대사. 책 208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의승병 출병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명을 받은 묘향산의 서산대사가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냈고, 건봉사에 거처하던 사명대사는 은사의 뜻에 따라 의승도대장이 되어 의승병 2천여 명과 함께 출병하여 평양성을 탈환하는 등 풍전등화와 같았던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리고 사신으로 일본을 건너가 외교적 큰 성과를 거두고 왜군에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건봉사는 후일 항일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태고종 종정 설산 스님의 가족들도 모두 건봉사 사하촌에 살았다고도 한다.

만해스님 항일운동지= 만해 한용운 스님은 1905년 대포동 앞에서 백담사 연곡 스님의 둘째 상좌를 따라 저항령을 넘어 백담사로 출가했다. 스승은 상좌 만해스님을 본사 건봉사의 강원講院으로 보냈다. 하지만 만해스님은 불경을 공부하기보다는 국권을 상실한 나라를 걱정하고 있었다. 스님은 일제의 국권 강탈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간성장터를 오가며 관헌들과 싸움판을 벌이곤 했다고 전한다. 만해스님의 항일 저항운동은 건봉사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만해는 강원의 수행과정에서 일본 유학 학승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본의 신문화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경은 이미 내 안에 있다’라는 이유로 유학 3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 후 만해스님의 열정적인 사회 참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서울 성북동 심우장과 신흥사 영산전靈山殿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수행을 이어갔다. 그러한 가운데 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을 저술한 만해스님은 ‘건봉사말사사적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근세 신문화가 봇물처럼 유입되면서 전국 사찰마다 신식 교육시설이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1910년 건봉사에도 봉명학교가 설립되었고, 신식교육과 계몽운동이 이루어졌다.

↑↑ 옛 건봉사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인 불이문. 1920년에 건립된 것으로 일반적인 불이문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일주문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책 207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건봉사 유물유적= 사찰에는 입구의 일주문 ‘불이문’을 비롯해 십바라밀석주와 같이 남방 불교의 영향을 받은 불교 유물과 유구가 다수 남아 있고, 국가보물로 지정된 능파교와 같은 5기의 홍예교기가 흩어져 있다.
건봉사 부도군은 경내에서 동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부도는 1백여기라고 전하는데 1990년 1차 정비로 60여기의 부도를 현재 위치에 모아 놓았다. 그 앞에는 의승도 대장 사명대사의 좌정 동상도 늠름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대표적인 부도는 1730년 영조 6년 운파대사비, 1731년 조선 영조 7년 목양당 영안대사지비, 1770년 영조 46년 건봉사지 일암대사비, 1904년 조선광무 8년 건봉사지 연회비, 1906년 조선광무 10년 건봉사지 사적비와 1928년 극락암 동량 축석과 불이문, 문수교 가설, 신영교 개수에 노고가 많은 능허당대선사기념비 등이 정리되어 있다.
대찰 건봉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소실된 법당과 요사채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1800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 일제에 의해 훼손된 채 방치된 「유명조선국팔도도총섭의병대장홍제존자사명대사기적비」와 비각, 의승병의 병기창 복원하여 호국불교의 성지로 그 입지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림암 등 주변에 소실된 암자와 중요한 유적을 발굴 복원사업도 앞으로 건봉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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