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0-02-26 오전 11:49:1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교육일반문화.스포츠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김하인 연재소설류경렬의 경전이야기가라홀시단학교탐방어린이집 탐방고성을 빛낸 호국인물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최종편집:2020-02-26 오전 11:49:15
검색

전체기사

교육일반

문화.스포츠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황연옥 연재소설 <화진포의 성>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사

김하인 연재소설

류경렬의 경전이야기

가라홀시단

학교탐방

어린이집 탐방

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황연옥의 행복한 동화읽기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교육/문화 > 김담 산문 연재 <숲에서 숲으로>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숲에서 숲으로 [35]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1월 07일(화) 08:4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진눈깨비로 바뀐 비가 다시 눈으로 변했으며 저수지는 멱차올라 차란차란했다. 마을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군부대를 지나 송강저수지에 다다르자 풍경은 돌변했다. 습기를 머금은 눈송이가 솔수펑이에서 눈꽃으로 피어났다. 눈앞에 쏟아지는 눈발은 한겨울을 연상하게 했으나 이제 겨우 겨울 입새였다. 언제부턴가 큰 산 중턱까지만 내리곤 했던 눈이었고, 마을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풍경이었지만 그것은 경계 없는 들숨과 날숨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으나 굳이 또 비와 눈 사이처럼 가을과 겨울로 나뉘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그저 인간이 자의로 나누는 것일 테고, 비가 눈이 되기도 하고 눈이 진눈깨비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자연에 어떤 뜻이 있을 리 없을 것이겠으나 다시 돌아서서 눈이 내렸으니 마침내 겨울이 왔다고 외쳤다.
북미 원주민인 아라파호 족이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마을에는 여전히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낙엽들이 남아 있었으나 마을에서 올려다보는 산마루에는 무채색의 검은빛이었다. 한여름 무더위 속일 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이 눈 깜짝할 새 당도했다. 그랬지만 산 기스락 풀숲에는 지르되게 핀 민들레와 산국이 한두 송아리 남아서 이따금 걸음을 멈추곤 했다. 봄이 되어야 새싹이 돋는다는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논둑이나 산 기스락 풀숲이 우거졌던 자리에는 지칭개 새싹이 새파랬다. 지칭개는 싹이 돋은 채 겨울을 났으며 우리나라 고유종이라고 알려졌다. 다시 말하면 싹이 돋은 채 겨울은 나는 ‘해넘이한해살이’풀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풀이든 나무든 꼭 봄에만 싹을 틔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으며 생강나무는 벌써 겨울눈인 꽃눈과 잎눈이 돋았다. 물론 대부분의 식물들이 이른 봄부터 싹을 띄우기는 했다. 사람의 일이든 자연의 일이든 어딘가 틈이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리하여 또 검질겼다.
눈이 내리기 전에 초도습지를 거쳐 죽정습지를 한 바퀴 돌았다. 화진포호수 둘레에는 지난해 조성한 금강습지, 화포습지, 죽정습지, 초도습지가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가만가만 불었는데도 습지에는 백로와 오리뿐 사람은 없었다. 꽤 오랫동안 겨울이 오면 고니를 보러 가곤 했으나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았다. 그 넓디넓은 호수에 빈 물결만 일렁거리거나 호수를 뒤덮은 얼음강판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호숫가에 있는 늙은 소나무들만 치어다보다 돌아서곤 했다.
죽정습지에는 무대가 있는 공연장과 휴게 시설 그리고 전망대도 있었다. 마른 수풀을 베고 정비한 길을 따라 놀민놀민 걷다가 전망대에 올랐다. 멀리는 잔설이 쌓여 있는 큰 산 건봉산을 비롯 가까이는 노인산도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를 바람이 갈대숲을 휩쓸며 지났다. 그렇게 또 거칠 것이 없어서 허허롭기까지 했다.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남쪽으로 동쪽으로 북쪽으로 아무렇게나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갈대밭뿐이었다. 겨울 입새였으므로.
주변에는 구역을 나눠 이런 저런 식물들 밭을 만들어 놓았으나 꽃은 물론 꽃대까지 모든 시든 뒤였으므로 한여름이면 보기 좋았을 풍광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무튼 인공의 습지였으므로 습지에서 자생하는 습지 생물들을 보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짓깔아뭉개거나 매립하지 않아서 퍽 다행스러웠다. 그리하여 다시 선유담을 생각했다. 주변이 농경지로 바뀌었고, 호수 또한 갈대밭으로 변해서 붓꽃 필 무렵에 붓꽃을 찾아 나섰으나 갈대밭으로 인해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내게는 여전히 ‘오리 숨구멍’으로 기억되고 있는 화진포는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했으며 그리하여 호수를 생각할 때마다 계절에 따라 굴이며 재첩, 빙어 등이 떠올랐다. 거진이 고향이고 연세 여든이 넘은 이웃마을 어르신은 화진포 호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시집온 뒤 낚시 좋아하던 남편께서 화진포 호수에서 이런저런 생물들을 채취하여 맛있게 먹던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지금은 수질 오염 등의 이유로 낚시 금지 구역으로 묶였다.
인공의 구조물들이 늘어나는 바탕에는 기계, 도구의 힘이 커져서도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산을 아무렇게나 까뭉개고, 논바닥 모래를 파내 집을 짓는 게 우리들이었다. 곡선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은 기어코 굽이굽이 돌아서 가던 물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도로 또한 굽이굽이 이어지던 길을 넓고 곧게 폈다. 마을 냇가 근처 농경지에서는 한창 모래를 퍼 올리고 있었다.
마을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마을 내에 흔하던 물고기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어린 시절엔 어쩌면 사계절 내내라고 해야 할 만큼 냇가에서 놀았다. 반두는 어른들이 주로 사용했고, 어린 우리들은 체와 주전자를 들고 냇가로 나갔다. 그마저도 없으면 강아지풀 줄기를 뽑아서 물고기들을 꿰었다. 여름엔 옆구리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칠성고기라고 부르는 칠성장어를 잡았다.
뱀장어처럼 생긴 칠성장어는 내에서 태어나 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에서 산란했고, 내에서 죽었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이때가 산란을 하기 위해서였으나 우리들은 또 그 알 때문에 칠성고기를 잡았고, 불에 구웠다. 칠성고기는 야행성이므로 고기잡이는 밤중에 이루어졌다. 이때 횃불을 만들고, 비료포대를 준비하는 일은 오빠들 일이었다. 지금은 멸종위기 종으로 마을 내에서는 볼 수 없었다. 마을 큰 산 골짜기 깊숙이까지 올라오던 연어, 은어는 물론 송어도 이제는 마을에서 볼 수 없는 사라진 물고기가 되고 말았다.
겨울이면 돌멩이를 들춰 개구리를 잡았고, ‘짹변’이라고 부르던 작벼리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개구리를 돌멩이에 내리쳐 기절하게 한 뒤 알불에 구웠다. ‘알가지’라고 부르던 암컷 개구리의 새까만 알은 불에 구우면 쫀득쫀득했다. 개구리 또한 지금은 잡을 수 없었다. 개구리도 개구리였지만 사철 샘터와 샘터 도랑을 따라다니며 쳇바퀴로 잡을 수 있었던 ‘옹고지’가 있었다. 우리들에게 추어탕은 없었고, 그저 옹고지국이 있었을 뿐이었다.
한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옹고지가 언제부턴가 다시 샘터 도랑에서 가끔 눈에 띄었다. 민물고기 도감을 펼쳐도 옹고지라고 불리는 민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과거를 호명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이럴 때만큼 과거를 호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어도 마찬가지였다. 송어는 작살로 잡았노라고 내 작은 아버지는 회고했다. 물론 마을 앞 내에는 게도 있었다고. 그 맛있는 참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민물 게가 있었노라고. 내가 기억하는 뚝저구라고 부르던 꾹저구, 모래무지, 버들개지, 퉁가리 등이 있었다. 사라진 것들은 그리웠지만, 그보다는 안타까웠다. 강과 내가 강과 내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많은 생물들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비거스렁이하듯 다시 찬바람이 일고 기온이 내려갔다. 바람이 하루 이틀 부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 말씀처럼 바람만 아니면 살기가 좋은 곳인데, 하는 후렴구를 흉내내지 않더라도 바람이 불 때 냇둑을 걷는 것은 불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그렇더라도 걸어야 할 때가 있었다. 걸음이 어긋나는 게 어디 산책뿐일까 마는 간밤에 마을에는 서리가 내려 마른 풀꽃에 눈꽃이 피었다. 이른 아침 눈곱을 떼자마자 냇둑으로 달려갔다.
산마루에 당도한 아침 햇발은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내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아침잠에서 깨어나던 마을은 높은 곳에서부터 햇볕에 물들기 시작했다. 서쪽 큰 산마루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마을을 물들이는 풍광은 자못 장관이었다. 그 속도에 따라 풀잎에 내려앉았던 얼음꽃 또한 빠르게 사라졌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고성군수 재선거 예비후보자 7명 등..

‘우한 폐렴’ 예방 대책반 운영

접경해역 지키는 여경 4인방

토성하수처리장 악취저감시설 설치

검게 탄 소나무숲 뒤로 보이는 울산..

거진에 퍼지는 미소와 웃음소리…

저소득주민 자녀 장학금 신청 접수

군수 재선거 출마자들에게 박수를

송지호 밀리터리 체험장’ 사용료 ..

김흥선 민선 고성군체육회장 취임식

최신뉴스

고성군 ‘코로나19’ 방역관리 총..  

기후변화 대응 과학영농 실증시범..  

저소득 10가구 주거환경개선 지원  

고성군 2021년 국비 확보 총력  

총선 후보들 직접 대면 선거운동 ..  

4.15 고성군수 재선거 이모저모  

고성문학회 2월 작품 합평회 가져  

남동환의 사진으로 보는 고성의 역..  

강원문화재단, 강원권 멘토봉사단..  

건봉사 불교교양대학 신입생 모집  

고성 여행은 문화관광해설사와 함..  

제10기 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 모..  

고성고 출신 윤덕화씨 관광학 박사..  

“가족애 넘치는 화합의 단체로”  

“임업을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hanmail.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