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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36]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1월 07일(화) 10:3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멧비둘기를 잡아챈 뒤 나무들 서리를 빠르게 날아가는 조롱이를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산비탈에서 꼭대기로 올라갔다가 인기척을 느낀 조롱이는 다시 삐뚤빼뚤 어지럽게 날더니 깊은 수로 마른 땅에 멧비둘기를 떨어뜨려 놓고서는 근처 나무들 사이로 날아올라 나뭇가지에 앉아서도 안절부절못하면서 사방을 살폈다. 수로 둑에 서서 조롱이가 떨어뜨린 멧비둘기를 내려다보았다. 깃털이 고스란했다. 나뭇가지에 앉은 조롱이를 올려다보다 수로 바닥에 놓인 멧비둘기를 내려다보다 문득 조롱이의 식사시간을 방해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더라도 이미 꼼짝없이 죽은 멧비둘기를 향한 연민이 없을 수 없었고 나뭇가지에 앉아서도 사방을 살피면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조롱이 또한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도시에 나들이를 갔다가 버릇처럼 미술관에도 들르고 박물관에도 들렀다. 박물관에 들른 이유는 특별히 핀란드에서 온 의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34세의 여성 총리가 등장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핀란드였지만, 그보다는 자작나무로 만든 의자의 실물이 더 궁금했던 터였다. 올리비에 트뤽 (Olivier Truc)이 쓴 소설 『라플란드의 밤』을 읽으면서 북극의 순록과 라프인이라고도 불리는 사미족 샤먼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라플란드는 특정 국가는 아니었고, 스칸디나비아 북부와 핀란드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숲에 사는 부족들에게 샤먼은 주술사이기도 하지만 치료사이기도 했다.
동짓날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에서 나무로 만든 봉헌물 받침대와 의자 등을 보았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 그리고 북극해로 둘러싸여 있었다.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던 나무들이었지만 나무들은 또 일상 깊숙이 들어와서 인간의 도구로 쓰였다. 어쩌면 성과 속의 경계가 얇은 닥종이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피는 어릴 때 우리집에서 보았던 것과 빼닮아서 놀라웠다. 어릴 때는 한겨울이면 눈이 키를 넘는 일이 다반사였다. 처마 끝까지 눈이 쌓여서 눈더미 아래로 굴을 파기도 했다. 이럴 때는 눈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눈 미끄럼틀도 만들 수 없었다. 지붕이 무너질까봐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 눈이 어디만큼 오면 어른들은 사냥을 나갔다. 그때 신발에 덧신는 것이 설피였다. 가본 적 없는 핀란드라고 하는 나라에 똑같은 설피가 있었으니 이것은 아마도 눈이라는 매개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전시되어 있는 여러 도구와 집기들 가운데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와 나뭇가지로 발을 단 의자를 보는 순간 우리집에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긴의자가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 아버지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겨울이면 나무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긴 겨울을 나곤 했다. 그 목록에는 의자도 있었고, 나무망치도 있었으며 등긁개도 있었다. 어릴 때는 골풀로 여치집도 만들어 주고, 팽이도 깎아주던 어찌 보면 만능인 것 같던 아버지는 나무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척척 잘 만들었지만, 기계를 만지는 일은 또 아예 젬병이었다.
어쩌면 숲이라는 공간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저 먼 북유럽과 한국의 이 작은 농촌을 잇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춥고 그늘졌으며 나무와 풀, 그리고 눈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로 무엇을 만들어 쓰기보다는 일회용에 가까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도구들이 넘쳐났다. 땔감으로도 쓰지 않는 버려진 나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나무들을 수습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마치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무언가를 자꾸 쟁여놓기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차고 넘쳐서 슬픔을 느끼는 것과 닮았다. 이를테면 나무로 숟가락을 만들어 써야 한다면 수십 개씩 만들어서 쌓아놓지는 않을 것이었다.
수로 둑에서 멧비둘기를 내려다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턴가 전봇대 꼭대기에는 수리부엉이뿐만 아니라 말똥가리가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말똥가리는 겨울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전령이었다. 한두 마리 숲정이와 마을을 오가던 직박구리가 깡패처럼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높은 음으로 울어대기 시작하면 겨울새인 말똥가리가 마을에 나타났고, 이때부터 마을의 공기는 한순간에 흐름이 바뀌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까치에게 대들기도 하는 직박구리는 울음소리가 퍽 날카로워서 듣고 있으면 신경이 곤두섰다.
직박구리가 떼로 모여서 내지르는 소리를 피해 자리를 뜨면 이번에는 방울새들이 전깃줄과 논바닥을 오르내리면서 방울 소리를 냈다. 겨울이 당도하면서 수풀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새들의 움직임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굴뚝새를 보았다. 어릴 때는 집 뒤 굴뚝 주변에서 흔하게 보았던 새였으나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던 그 굴뚝새가 좁은 봇도랑 덮개 밑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눈앞에서 포륵대며 날았다. 참새보다 작고 조금은 더 단단해 뵈는 굴뚝새는 그러나 한순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섰다. 멸종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밭두둑에 경계표시 삼아 심어 놓았던 감나무 우듬지가 싹둑 잘려나갔다. 밭주인의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오른쪽 감나무 우듬지가 잘려나가더니 어머니 사후에는 왼쪽 감나무 우듬지가 잘렸다. 밑동을 자르지 않은 것만도 어디인가 하면서도 아쉬움이 다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야 나무에 함부로 손대면 동티가 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아무도 동티 같은 것에 의미를 둘 리 없었지만 신성(神聖)의 의미를 깎아내린다고, 신성의 의미를 부정한다고 해서 신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터였다. 마치 오로라를 과학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오로라가 가진 신비로움과 황홀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이 알 수 없는 틈이 하나쯤 있다고 해서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서너 달째 흙과 모래, 자갈들을 퍼 올리고 있는 논배미 곁을 지나다녔다. 고성군 관내 천변 옆에 있는 논배미에서 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흙모래를 싣고 내달리는 덤프트럭이 도로를 메우곤 했다. 오후 4-5시면 대체로 작업이 끝났고, 그제야 어슬렁어슬렁 냇둑을 걸어가면 갈대숲에 깃들어 사는 뱁새들이 온통 분주탕이어서 때로는 기계소리를 뒤덮을 만큼 우렁차게 들리기도 했지만 속이 시끄럽지는 않았다. 그곳 개천에는 또 오리와 백로들이 먹이활동을 하기도 해서 구경을 하노라면 시간이 훌쩍 흐르곤 했다. 새와 쥐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르지 않고 동네 고양이들이 등장하곤 했다. 우리집에도 들르곤 하는 동네 고양이들이었지만 인기척에는 몸을 낮게 웅크리고 엎드려서 숨을 죽이는 것은 변함없었다.
우리집에 들르는 고양이들은 얼마 전에 새끼를 낳은 얼룩 고양이까지 못해도 여덟아홉 마리는 되었지만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 빼고는 다들 인기척에 도망치기 일쑤였다. 아기 고양이때부터 보아온 검은 고양이는 내가 나타나면 가만히 치어다보기만 할뿐 도망하지 않았다. 멸치나 생선대가리를 놓아두고 먹으라고 하면 뒤를 두어 번 돌아본 뒤에 먹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면 나는 또 뒤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따금 다리를 절기도 하는 검은 고양이는 마을 윗녘에서도 만나고, 마을 아랫녘 난들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무심히 헤어져 서로 갈 길을 가곤 했다.
길을 거슬러서 조롱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말똥가리는 어느 날 저녁에는 눈앞에 있었고, 또 어느 날 저녁에는 소식을 몰랐지만 그렇다고 애타게 찾지도 않았으나 나를 피해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조롱이는 퍽 궁금했다. 벌써 어둑해져서 나무들 사이에 앉았던 새는 보이지 않았으나 불현듯 눈앞에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조롱이었다. 수로 둑에 서서 멧비둘기가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깃털이 어지럽게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살이 한 점 붙은 깃털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조롱이는 이번에도 멀지 가지 않고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서 그 마지막 살 한 점을 향해 푸득푸득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가며 접근을 시도했다. 숨을 죽인 채 가만히 바라다보는 사이 조롱이는 다시 수로 밑바닥으로 날아내렸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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