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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38]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2월 18일(화) 11:0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전설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겨울이면 화진포 호수에 흰꼬리수리가 온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겐 풍문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래 전 먼발치에서 스치듯 본 적은 있었으므로 겨울이 다가오면 혹고니만큼 기다리는 겨울새였지만 좀처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로는 들었으나 눈으로는 볼 수 없었고, 눈앞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으나 만질 수는 없는 기이한 광경이었지만 눈앞에서 물위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커다란 날개에 뚜렷한 흰 색의 꽁지깃만으로도 이미 숨이 막혔다. 드디어 흰꼬리수리가 우리 마을에 당도한 것이었다.
큰 눈 없이 한여름 장맛비처럼 내리던 비도 긋고, 바람도 잠잠해진 일월의 어느 날, 읍내로 가는 길이었다. 하늘이 맑았으며 무엇보다 바람이 불지 않았으므로 버스를 타는 대신 도로를 피해 냇둑으로 올라섰다. 내가 갈대숲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냇물 한가운데로 물길이 나 있었고, 내와 내가 만나는 두물머리에는 날짐승들이 모여들만큼 너른 틈이 있었다. 철 따라 새들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곳에는 매일같이 끼리끼리 새들이 모여들었고, 겨울로 접어들면서는 백로와 오리들 차지가 되었다. 가끔 습관처럼 근처 갈대숲에서는 고라니가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고라니는 사철 내내 보았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한 번도 큰 눈이 내리지 않은 이상스런 겨울이었지만 이따금 바람만은 맹렬하게 불어서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날씨가 쾌청하고 맑은 날이면 바람은 더욱 거칠고 사나워졌다. 바람꽃과 같은 기미조차 없이 불어닥치는 큰 바람은 지붕을 들썩거리게 하고,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이때는 날짐승들마저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자고, 일어나는 일 또한 사람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더라도 광포한 바람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 달리 방도가 없었지만 매번 큰 바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한결같았다.
날씨가 전에 없이 따뜻해지면서 볕바른 곳에 돋아난 벼룩이자리가 꽃을 피웠다. 벼룩이자리는 보통 사오월이 되어야 꽃을 피우는데, 올해는 일월 초부터 꽃을 피었으며 버드나무의 버들개지도 움이 터서 솜털이 일어섰다. 마을 어른들은 벌써부터 눈이 없는 겨울을 걱정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이야말로 농사 밑절미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지금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로서는 집 밖에 있는 수돗물이 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까닭에 농부들 말씀에 잠시 딴전을 부렸다.
하늘은 짙푸른데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떼를 지어 하늘로 날아오르던 방울새들은 은행잎처럼 흩어졌다 다시 대오를 이뤄 논배미에서 숲정이로, 다시 전봇줄 위로 날아내렸다. 방울새는 언제 보아도 명랑했다. 무리를 이루는 작은 새들 가운데 방울새 떼는 자주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다녔다. 그런 반면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개개비는 갈대숲에서 오르락내리락했으며, 멧새 떼들은 숲 기스락 수풀에서 왁자글왁자글했다. 무리를 짓지 않는 딱새는 이따금 수컷 근처에 암컷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였고, 때까치는 물까치와는 다르게 매번 전봇줄에 단독으로 앉아 있곤 했다.
번식 철이 아니면 무리를 짓지 않는 때까치는 물까치처럼 까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엄연히 과가 달랐다. 20~30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며 가족애가 유난스런 물까치는 까마귀과였고,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부리를 가진 때까치는 때까치과였다. 그런데 번식 철이 아니면 주로 단독 생활을 하는 때까치는 육식을 하며 먹이를 나뭇가지나 가시 같은 데 걸어놓거나 꽂아놓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맹금 같은 때까치가 탁란을 하는 뻐꾸기의 새끼를 돌보는 보모새 역할도 맡는다는 것이었다. 여름철새인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개개비, 멧새 등 저보다 매우 작은 새들 둥지에 탁란을 하는데, 이 뻐꾸기 탁란 장소 중에 하나가 때까치 둥지였다. 제 둥지에 위탁된 알들이 껍질을 깨고 나오면 제 새끼처럼 정성스레 이 뻐꾸기 새끼를 기르는 새들이란 대체 무엇인지. 무리를 짓는 이유도, 혼자인 까닭도 또한 제 새끼들의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위탁된 새끼들을 기르는 사정을 알지 못했으므로 내처 가던 길을 가곤 했다.
영화 「닥터 두리틀」의 닥터 두리틀처럼 동물들과 소통할 능력이 없는 내게 동물들은 그림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가만히 지켜보는 재미가 없을 수 없었다. 겨울비가 길게 이어진 뒤로 큰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새들도 비바람이 불거나 소나기눈이 내릴 때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집들 사이를 오르내리며 시끌벅적하게 놀던 참새떼마저 자취가 없었다. 새들도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깃에 파묻고서는 비바람이, 눈이 지나가길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떼들의 이동이 잦고 전에 보이지 않던 새들이 보였으나 곧 자취를 감추곤 했다. 이를테면 화진포호수나 북천에 고니 떼가 나타났다고 해도 때를 못 맞추면 새떼들은 어느새 떠나고 없었다. 마을에 머무르지 않고 더 먼 남쪽으로 이동하는 나그네새였다.
두 개의 내가 만나는 두물머리는 가운데를 도려낸 듯 두려빠진 곳이 있었고, 겨울로 접어들면서부터 꽁지깃이 새하얀 쇠물닭으로 보이는 새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인기척이 나면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물속을 헤엄쳐서 저쪽 물가에서 살그머니 몸을 드러낸 뒤 재빠르게 갈대숲 사이로 사라지곤 했다. 흰뺨검둥오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라서 자리를 뜨는 것과 달리 쇠물닭으로 보이는 새는 날아가는 대신 날쌔고 조용하게 수풀 속으로 감쪽같이 몸을 숨겼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사라진 흔적이 물위에 갈매기 모양의 파문으로 남아 있곤 했다.
겨울비로 불어난 냇물이 여러 쓰레기들을 실어날랐고, 그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큰 산 근처 내에는 숲에서 떠내려온 검불과 낙엽들이 꼬지꼬지했으며 그 가운데 가랑잎이 으뜸이었으나 마을 아래쪽 바닷가 어귀로 갈수록 생활 쓰레기들로 어질더분했다. 페트병과 스티로폼 조각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냇물은 바다로 흘러들었고, 우리가 버린 생활 쓰레기들은 또 이렇게 바다에 쌓여서 그리하여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스티로폼 찌개’를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부터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덜 쓰면 덜 만들까 아니면 덜 만들면 덜 쓸까. 번번이 진퇴양란이었다.
냇가 갈대숲에서 까투리가 날아올랐다. 숲 기스락이나 논두렁 풀숲에서 날아오르곤 하던 꿩들은 서너 마리씩 몰려다녔는데 수꿩인 장끼, 암꿩인 까투리가 한데 모여 있다가 인기척이 나면 화들짝 날아오르는 통에 꿩들은 판판이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것도 꼭 발치에서 난데없이 퍼드덕 뛰어나오듯 날아오르면 꿩이나 나나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나 또한 이따금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새떼, 특히나 직박구리와 멧새 떼를 놀래게 할 때도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우연이 겹치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꿩과 나는 줄곧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흰꼬리수리가 날아오르는 순간, 백로는 멀찌감치 자리를 피해서는 냇가에서 골재를 채취하면서 높다랗게 무져놓은 흙더미 언덕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흰꼬리수리가 수리부엉이가 사는 숲정이에 내려앉은 뒤에도 백로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 한여름에는 무리를 지어 앞산 솔수펑이에서 지내곤 하던 백로 떼들이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어딘가로 다 흩어진 뒤 마을 냇물 위를 오르내리는 백로는 한두 마리뿐이었고, 주로 이 두물머리에서 볼 수 있었다. 물고기 사냥의 명수인 흰꼬리수리가 화진포 호수가 아닌 산 너머 우리 마을까지 온 연유도 궁금했을 뿐만 아니라 흰꼬리수리가 사냥을 하는 동안 둔덕으로 자리를 옮긴 백로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아무려나 꽃봉오리에 맺힌 빗방울처럼 시간과 우연이 겹쳐 빚어진 순간일지라도 오래도록 궁금했던 흰꼬리수리를 화진포 호수가 아닌 우리 마을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흐벅지고말고.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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