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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39]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3월 16일(월) 16:2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볕바른 산 기스락 무덤가엔 매일같이 송아지만한 개들 네 마리가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울멍줄멍 모여 있다가 저녁 무렵 내가 길을 휘돌아서 무덤가 근처에 나타나면 성급하게 컹, 컹, 컹 짖었다. 검정개 세 마리와 하얀 개 한 마리인데,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마을 이장님네 풍산개 암컷과 수컷이었다. 이 풍산개들은 너무 늙어서 이도 빠지고 힘도 전과 같지 않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네 마리 개들은 이 풍산개 암, 수컷이 나타나면 나를 향해 짖던 울음을 뚝 그쳤다. 그러고서는 슬금슬금 이 풍산개들에게 다가가서는 이들 가운데 늙은 수컷을 빙 둘러선 뒤 냄새를 맡으면서, 머리를 들이밀면서 야단법석이었다. 늙은 수컷은 또 가만히 서서 이들이 자신을 빙 둘러싸고 냄새를 맡는 것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었다. 이따금 이 수컷이 가진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그뿐, 이윽고 발걸음을 옮겼다.
족보 있는 풍산개라고 자랑이 대단한 이장님은 이 늙은 개들을 낡은 트럭에 태워서 다녔을 뿐만 아니라 큰 산에 들어갈 때도 어김없이 이 개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늙은 이 풍산개들은 가끔 우리집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다 전봇대 아래에 오줌을 싸기도 했지만 나를 봐도 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멀뚱멀뚱 치어다보다 그대로 지나치곤 했다. 산 기스락 자드락길을 걷다가 덩치가 큰 검정개들이 나를 향해 짖어댈 때마다 나 또한 걸음을 멈추고서는 이들을 향해 집에 가라고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목청을 높이곤 했다. 검정개들 가운데 젊고 날렵하게 생긴 수컷 한 마리가 유독 사납게 짖었지만, 개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그들을 곁에서 멀리 몰아내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집에 가라고 소리치면 이들 개들은 또 내게 달려드는 대신 슬몃슬몃 옆으로 비껴서 내가 가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곤 했지만, 덩치가 송아지만한 개들과 맞서야 하는 이 상황이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버려진 개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따금 이들과 함께 산기슭 자드락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보였기 때문인데, 왜 개들을 풀어 놓는 것인지 궁금했으나 그 또한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간혹 이 개들이 무덤가 주변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송아지만큼 덩치가 큰 개들이 주인은 물지 않을지는 몰라도 낯선 사람은 또 다를 수 있을 것이었으니 풀어놓지 않고 묶어 놓는 게 좋을 것이었다. 마을엔 이따금 떠돌이개들이 나타났고, 도둑괭이라고도 불리는 동네고양이들이 흔하긴 했지만.
얼마 전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진 어느 날 이른 아침, 밖에 나갔다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고양이가 죽어 있노라고,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셨다. 눈을 껌뻑거리며 섰다가 밖으로 나가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집 앞 길가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외상이 없어 보였으나 어딘가에 묻어야 할 듯해서 옮기다 보니 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다. 종이를 펴고 수레에 실었다. 근처 은행나무 아래 묻어주려고 하였으나 땅이 얼어 삽으로 팔 수 없어 다시 냇둑으로 향했다. 수풀이 우거지고 볕바른 곳을 찾았더니 다행스럽게도 흙이 얼지 않아 구덩이를 팠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이 달아날 듯 바람이 차디찼다. 꽁꽁 언 고양이를 구덩이에 넣고 흙으로 덮고서는 잘 가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막 아침 햇살이 앞산 위로 번지고 있었다.
누런 고양이는 한번쯤 내가 밖에 내놓은 국물 우린 멸치나 생선 대가리를 먹었을 테지만 그보다는 짐승이든 인간이든 자연사하지 못하고 객사한 죽음이었으므로 어디든 마땅한 곳을 찾아 묻어주어야 했고,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작은 새끼 고양이도 텃밭에 묻었고, 숲정이를 헤덤벼치다 보면 죽은 짐승들 사체와 마주쳤으므로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새하얗게 육탈한 뼈일 때도 있었고, 썩은 냄새를 풍기며 한창 파리떼가 우글거릴 때도 있었다. 요즘엔 몸뚱이는 사라지고 없는 새털들이 한자리에 흩어져 있는 것을 논둑길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누구의 짓이었든 그것은 먹이 사냥이었을 테니, 이럴 때는 잘잘못을 따질 수 없었다.
몇 해 전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개에 물리는 사고가 났었다. 야생너구리로 인한 광견병이 유행하던 때였다. 광견병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개였으나 주인은 개를 붙잡는 것이 어려워서 내버려두었다고 했다. 다행이 큰 탈 없이 지나갔지만, 내가 좋아서 기르는 가축이므로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광견병, 즉 미친갯병은 인수 공통 감염병(人獸 共通 感染病)이었고, 우리 마을에서는 흔하게 너구리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견병은 물을 무서워해서 공수병이라고도 불렸고, 치사율도 높았다. 인수 공통 감염병은 ‘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의 감염병’을 가리키는 말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일본 뇌염, 조류 독감,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등이 있고, 구제역 또한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
바야흐로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발전했다고 하는 21세기인데도 세상은 여전히 전염병, 역병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며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2015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로 38명이 사망했고, 지난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더니 올해는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감염병 이름도 처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전염병으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우한 폐렴’으로 불리다가, 폐렴의 원인인 병원체가 확인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불리다가, 지난 2월 11일 세계보건기구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다시 ‘COVID-19’로 공식 발표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국문 약칭 ‘코로나19’로 명명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는 편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 직업, 문화 등의 항목을 표기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2020년 2월 19일 현재,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는 있지만 사망자는 나오지 않아서 다행스럽게 여겨지다가도 이웃한 중국을 떠올리면 정신이 아마득해지곤 했다. 매일 수십 명씩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2020년 2월 19일 현재, 전세계 사망자는 1800명을 넘어섰다. 이 상황이 차라리 재난 영화였으면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 이 지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이런 가운데 또 ‘격리’와 ‘배제’, ‘지역’과 ‘혐오’가 하나로 묶여서 난무하고 있었다. 때때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내, 외국 왕래가 자유롭고 이동하는 인구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 오늘날 특정한 지역, 국적, 인종을 표적하여 공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코로나19 또한 신종, 새로운 감염병이었고, 백신과 치료제가 아직 없었다. 야생동물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추측일 뿐 정확한 기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쓴 데이비드 콰먼에 따르면 인간이 동물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숙주(宿主)를 잃은 갈 곳 없는 바이러스들이 새로운 숙주를 찾기에 이르렀고, 그 새로운 숙주가 인간이라고 했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세포에 기생했으므로. 모기가 옮기는 어른들이 학질이라고 부르는 말라리아, 한탄강에서 최초로 발병한 설치류가 옮기는 유행성 출혈열, 사스와 메르스, 이제는 코로나19까지 어느새 우리 귀에 익숙한 감염병이 되었으나 문제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들이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그 답은 숲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마다 기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녹아내리고, 태풍이 몰아치고, 해수면이 올라가는 밑바탕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숲을 짓깔아뭉개는 데 있을 것이었다. 한번 부리를 딴 숲을 다시 되돌리는 일은 까마득할 뿐만 아니라 멀리 세계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까지 갈 것 없이 우리 마을 숲정이만 둘러보아도 마치 기계총이 생긴 것처럼 숲정이가 얼룩덜룩했다.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면 그 여파는 마침내 우리들, 내게 들이닥칠 것이었다. 숲은 숨일지니.
그런 와중에도 양양 낙산사 경내엔 흰색 백매가 꽃을 피웠더라.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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