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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암뒷산에 ‘비운의 복서’ 고 김득구 묘 조성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34] 김득구와 돌고개 벼락바위
봉수대가 있던 정양산은 어부들에게 이정표 역할… 벼락에 살아난 청년

2019년 08월 06일(화) 17:59 [강원고성신문]

 

↑↑ 고 김득구 선수. 책 174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비운의 복서’ 권투선수 고 김득구의 묘가 거진읍 반암리 마을 뒷산에 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김득구 선수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년시절을 이 마을에서 지냈다. 1978년 권투에 입문하여 1980년 한국챔피언, 1982년 동양챔피언이 되었다. 1982년 1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세계권투협회 라이트급 챔피언 맨시니의 타이틀전에 도전하였으나 ‘싸워서 지면 링에서 걸어 나오지 않겠다’는 그의 약속처럼 링 위에서 쓰러져 결국 사망하였다.
TV 생중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한 권투선수의 죽음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종전 직후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절박한 시골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불굴의 투지와 사회적 성공에 대한 동병상련의 아픔이 공감을 일으켜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이 마을에 살았던 어머니와 함께 이 마을 뒷산에 묻혀 있다.

봉수대가 있었던 정양산= 고 김득구 선수가 묻혀 있는 산록이 바로 정양산이다. 높은 산은 어부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정양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비교적 높기 때문에 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어부들에게도 좋은 이정표가 된다. 그 산정에는 봉수대가 있었지만 수복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지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기록으로만 전할 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의 “정양산 봉수는 고을 북쪽 15리에 있다. 북쪽으로 술산戌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죽도에 응한다”고 언급된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봉수대의 위치를 지금의 전파중계소가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
관방유적 봉수대. 관방유적은 국경의 방비를 위해 설치한 진鎭이나 영營, 보堡, 책柵 등 군사 목적의 시설로써 넓은 의미에서 성곽과 봉수대를 포함한다.
봉수대는 봉수 신호를 잘 받고 전달해야하기 때문에 높은 산꼭대기에 세 웠다. 평상시 연기나 불빛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봉수대를 세웠는 데, 이렇게 설치된 봉수대는 전국에 6백개 이상 되었다고 한다.
남쪽 고성 지방의 관방유적으로 고성산성과 간성읍성 등 축성이 있고, 정양산 봉수대를 비롯해 무산봉수대와 순포봉수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봉수대가 바로 정양산 봉수대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의 “정양산 봉수는 고을 북쪽 15리에 있다. 북쪽으로 술산(戌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죽도에 응한다”고 언급된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봉수대의 위치를 지금의 전파 중계소가 있는 곳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조선왕조실록. 책 175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반암마을을 지나면 작은 바위가 있는 고개를 만난다. 돌이 있는 고개라고 하여 일명 돌고개라고 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집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고개 바로 곁에는 자산마을에서 도로가 확장되면서 집단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돌고개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산길 곁으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옛날 그 마을엔 늙은 한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부부는 금실이 좋았지만 자식이 없어 늘 근심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뒤늦은 아들을 얻는 기쁨을 맞게 되었다. 늦둥이를 얻은 것이다. 부부는 천지신명께 감사하며 애지중지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노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탁발을 나선 시주승이 집 앞을 지나가면서 혀를 끌끌 찼다. 불길한 예감에 놀란 부부가 스님을 쫓아가 붙잡고 그 까닭을 물었다. 머뭇거리던 스님은 아이가 단명할 것이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노부부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스님에게 시주를 하고 방책을 알려 달라고 졸랐다. 스님은 마지못해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스물다섯이 되는 해의 칠월 비가 오거든 집에 불을 놓으라고 일러주었다. 늙은 어머니는 명심하겠다고 약속하고 스님은 돌아갔다.
아이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포목장사를 시작했다. 장마다 장터에 나가 포목을 팔고 돌아오는 것이다. 스물다섯이 된 해, 그날도 변함없이 청년은 간성장터에 나가 광목을 팔았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청년은 서둘러 좌판의 포목을 걷어 집으로 향했다. 반암마을쯤 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비가 아니었지만 비를 잠시 피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집이 보이는 고갯마루엔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다. 청년은 잠시 비를 피할 양으로 바위 아래로 들어서서 눈을 돌리자 건너다보이는 자신 의 집 처마에 불이 붙는 것이 아닌가. 놀란 청년이 바위 밑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천둥소리와 함께 청년이 비를 피했던 큰 바위가 벼락을 맞아 순식간에 부서져 내려앉았다. 만약 청년이 바위 아래 그대로 있었으면 흔적 없이 압사 당할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청년은 집 처 마 끝의 불로 인해 자신의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부서진 바위를 벼락바위라고 하고 그 일대를 돌고개라고 불렀다. 그리고 죽음을 면한 청년은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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