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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27]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8월 21일(수) 11:2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멍석딸기를 두어 줌 따서 먹은 뒤 구부러진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길이었다. 얼마 전에 본 파랑새가 다시 눈앞에서 날아올랐다. 주황색 부리와 짙푸른 청록색 깃털 그리고 공중을 날 때만 보이는 흰색 깃을 가진 파랑새는 전깃줄에 앉았다 상수리나무 숲속으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잇새에 낀 딸기 씨앗을 혀로 굴리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새가 사라진 곳을 바라다봤다. 건봉사에 가던 날도 보았지만 그때는 거리가 멀어서 큰유리새인가 하고 고개만 갸웃거렸을 뿐 더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수컷 큰유리새는 푸른 깃털에 부리가 검었을 뿐만 아니라 배 빛깔이 희었으므로 큰유리새는 분명 아니어서 무슨 새인지 궁금답답했었다.
파랑새가 등장한 주변에는 고묵은 소나무가 세 그루 있었으며 주변은 수풀이 우거져서 담비가 나타났다고 해도 놀랄 것이 없는, 해 질 녘이면 주택가에서 사라진 후투티가 떼로 몰려다녔으며 딱새와 멧새 그리고 멧비둘기 떼 등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여름이면 돌아오곤 하던 후투티가 보이지 않아서 궁금하던 가운데 떼로 날아오르는 장관을 목도했다. 우관, 머리깃이 볼만한 후투티는 아무래도 이 땅의 새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집집마다 굴뚝이 있던 시절에는 주로 그 굴뚝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새였으나 굴뚝이 사라지고 난 뒤 후투티도 마을을 떠나 숲으로 돌아갔다. 이름마저 굴뚝새인 ‘굴뚝새’도 마을 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다.
큰유리새도 그렇고 파랑새도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여름새일 뿐만 아니라 흔히 볼 수도 없었다. 큰유리새는 마을 남쪽 숲정이에서 만난 적이 있었으나 파랑새는 올해 들어 전에 없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파랑새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파랑새를 보았네, 파랑새를 보았네.” 라고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민 교수가 쓴 『새 문화사전』(글항아리, 2014)을 떠들어 보았으나 내 의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파랑새를 한자로 청조(靑鳥)라고 쓴다는데,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이 그린 「해당청금(海棠靑禽)」을 봐도 그것은 큰유리새이지, 지금 파랑새라고 부르는 그 파랑새는 아니었다. 깃털 색깔로만 보면 큰유리새 수컷을 파랑새라고 불러야 될 성싶었다.
파랑새는 영어로 ‘Oriental Dollarbird’ 라고 하고, 큰유리새는 ‘blue-and-white flycatcher’라고 한다. 옛 그림에서 파랑새를 찾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붙이는 습성이라면 파랑새와 큰유리새의 거리는 왜 이다지도 먼 것인지. 연암 박지원이 그의 조카 박종선의 시집에 붙인 「능양시집 서」를 보면 까마귀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지금이라도 그처럼 쓸 수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까마귀 깃털이 빛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길게 썼다. 햇볕이 쨍쨍한 한여름 숲속에서 그것도 딱따구리가 떠난 소나무 줄기 구멍으로 날아드는 파랑새를 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여전히 파랑새하면 녹두장군 전봉준을 먼저 떠올렸고,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듯했지만 지금 ‘청포’, 또는 ‘청포묵’이 녹두로 만든 묵이라는 걸 얼마나 알고 기억하고 있을까. ‘빈대떡’의 주재료가 녹두라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몇 해 전 뒷집 아주머니께서 텃밭에 녹두를 심었으나 지금 우리 동네에서 녹두를 심는 농가는 아예 없었지만 읍내 마트에 가면 녹두로 기른 ‘숙주나물’을 만날 수 있었지만 어찌하여 파랑새는 파랑새가 되었고, 큰유리새는 큰유리새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그것이 더 갑갑궁금했다.
냇둑에서 쥐를 입에 물고 가는 족제비를 본 뒤 갈대숲에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즉 뱁새 그리고 개개비들 안부가 궁금했다. 마을 산책을 하는 동안 시멘트로 포장한 냇둑에 다다르면 갖은 동물과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갈대숲으로 변한 작벼리에서 고라니를 만나는 일은 다반사였으며 할미새와 노랑할미새 그리고 매번 사냥 중인 물총새와 절름거리거나 할금거리면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는 꼬마물떼새도 만날 수 있었다. 풍경처럼 왜가리, 백로가 날아다니고 수면에서는 오리 떼가 헤엄을 치며 뻐꾸기가 나른하게 울고 꾀꼬리가 노란 빛깔을 뽐내는 가운데 호반새와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꼬마물떼새는 냇가 작벼리가 갈대로 뒤덮인 뒤엔 수풀이 거의 없는 콘크리트 다리 아래 자갈밭에서 자주 보였다.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새된 울음을 울며 할금할금 나를 살피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게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일부러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새를 놀렸다. 꼬마물떼새 어미의 목청은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해졌다. 발탄 강아지처럼 돌아치던 새끼들은 그럴 때마다 어미와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거나 숨을 죽이고 웅크린 채 어미의 행동을 살피고는 했다. 지나치게 겁을 먹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하여 두어 번 발을 구르다 돌아서곤 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어느 날 마을 북쪽 숲정이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수리부엉이를 눈앞에서 보았다. 거리가 멀어 처음엔 어디 다친 게 아닌가 걱정하며 아주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논둑에 앉아 있던 수리부엉이는 앉은자리에서 앞뒤 좌우로 고개만 돌릴 뿐 한 발짝도 떼지 않았다. 논둑에 앉은 모습은 처음이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논둑은 이웃마을 어르신이 저녁이면 논물을 보러 오고, 때때로 제초제를 쳤으며 이따금 비료와 농약을 치기도 하는 곳으로 아주 빤빤했다. 작은 항아리처럼 동그만 모습에 이끌렸으나 한편 조바심이 났다. 수리부엉이 머리 위로는 왜가리가 느릿느릿 날아가고 있었으며 근처 숲정이에서는 물까치 떼가 아우성이었다.
언제 한번 수리부엉이 깃털, 그것도 귀깃을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채 눈이라도 마주치길 바라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란 빛으로 부리부리한 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몽글몽글 샘솟았다.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듯했지만, 눈빛만은 빨려들듯 영롱했다. 부엉이는 논둑에 오두마니 앉아서 무엇을 하려는지 그저 두리번거리기만 할뿐 더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모처럼 수리부엉이를 오래 마주볼 수 있는 것만도 좋아서 새가 날아오를 때까지 잠자코 지켜보았다. 날아가는 방향은 노상 수리부엉이들이 깃들곤 하던 북쪽 숲정이어서 그곳 어딘가에 새 둥지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북쪽 숲정이엔 상수리나무를 비롯하여 소나무는 물론 대나무가 숲을 이뤘는데 언제부턴가 물까치 떼가 모여들어서 아예 터를 잡았다. 이따금 때까치도 눈에 띄었지만 물까치 떼가 단연 으뜸이었다. 물까치 떼와 직박구리가 어울리면 그 소리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거기에 마을 아랫녘 논들에서 자주 보이는 방울새까지 합류를 하면 그야말로 새들 세상이었다. 작은 새들끼리 복작거리고 있을 때 백로나 왜가리는 또 저 홀로 느릿느릿 하늘 높은 곳을 날아서 냇가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퍽 기이해 보일 정도였다.
새는 새여서 즐거울까. ‘죽어 죽어 파랑새 되’겠다는 시인 한하운을 떠올렸다. 일생을 나병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가도 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라고 읊었던. 그 아찔한 막막함 끝에 그는 파랑새가 되었을까.
『파랑의 역사』(민음사, 2017)를 쓴 미셀 파스투로는 ‘희귀하고 도달할 수 없는 존재를 파랑새(oiseau bleu)’라고 한다고. 파랑새가 그렇게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영 다다를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었다. 그처럼 우리 마을에 임시 거처하고 있는 파랑새는 높디높은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도 인기척을 느낄만한 거리도 아닌데도 조금만 더 다가가려고 하면 저 먼저 놀라 달아나기 일쑤였다. 아무리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기척 없이 다가간다고 가는데도 낌새는 새가 먼저 눈치챘으므로 번번이 파랑새를 가까이에서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없었지만, 해 질 녘 그곳에 가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날아가는 중이거나 전깃줄에 앉아 있거나 하는 파랑새를 볼 수 있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올 여름, 내 새 관찰은 되우 즐거웠더라.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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