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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28]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9월 10일(화) 10:4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두백산(頭伯山)은 오봉, 왕곡마을에 있다. 마을에서는 그저 뒷산이라고 불렀을 두백산은 평지돌출한 듯 우뚝하여 채 삼백 미터가 되지 않는 산이라는 걸 잊게 했다. 한여름 뙤약볕 속에 무얼 하자고 길을 나섰는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웅얼웅얼했다. 도로에서 바로 숲 입새로 들어서니 눈앞에 대숲이 나타났고, 그 한가운데로 작은길이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섰나 싶어 잠시 두리번거렸으나 대숲 한가운데를 일부러 제겨냈으니 가다보면 끝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 그대로 앞으로 나갔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돌아서면 될 것이므로.
짐승들 길이 사람들 길로 이어진 것이 아닌 인간이 손대서 만든 길엔 풀이 돋았고 심지어 떡갈나무 어린 싹은 길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 발길이 뜸했기 때문일 것이었으나 나무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그 또한 나무의 운명이려니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어린나무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겨우 한 살이 되려는 나무는 근처에 경쟁자가 없었으므로 너풀거리는 이파리가 내 손바닥만 했다. 아무런 기도도 없이 자리를 떠나 고라니 똥을 피해 발을 제겨디디면서 위로 위로 숨차게 치올랐다.
허공을 등지고 걷는 걸음에 힘이 붙을 리 없었으므로 주변을 기웃거리는 일이 잦던 가운데 눈앞에 연분홍 술패랭이가 가만바람에 나울짝나울짝했다. 산의 물매가 가파르고 무더위로 한숨짓던 순간은 간데없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술패랭이는 우리 마을 숲정이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한눈에 술패랭이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꽃들은 길섶 말뚝 근처에서 길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떡갈나무와 같은 나무들 그늘 아래 눕혀진 채로 또는 곧게 선 채로 아무렇게나 꽃을 피었으며 벌써 이운 꽃잎은 거뭇거뭇했고, 이제 막 피어난 꽃잎은 새뜻했다. 안날 비가 오락가락했으므로 꽃이파리는 가볍지 못하고 조금 무거운 듯하였으나 그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숲 입새에서 건듯 지나쳤던 노란 빛깔의 ‘솔나물’을 떠올렸던 것은 그때였다. 이른봄 숲의 꽃들도 꽃들이지만 한여름 뙤약볕과 무더위, 장맛비 속에서 피고 지는 여름 꽃들이 새삼스레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꽃들과 나무들을 노상 유심히 지켜본다고 여겼으나 그것은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깔아놓은 깔개에는 버섯이 돋았고, 잔디와 꿀풀도 보였다. 그제야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면서 술패랭이가 눈에 띌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 두백산 또한 고성산, 운봉산과 같은 화산체로 이루어진 산이었으므로 곳곳에서 어른들이 ‘각담’이라고 부르는 현무암을 볼 수 있었다.
가파른 물매 때문인지 나무 계단을 놓았고 가장자리엔 밧줄을 이어놓았다. 거기에 깔개까지 깔아놓았으나 물길은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흘렀으므로 여기저기 움푹움푹 패이면서 물길이 만들어졌다. 그렇더라도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구불구불 걸어서 올랐다. 다다를 곳이 어떤 모습인지 언제쯤 산마루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은 때때로 별 근심 없이 산길을 걷게 했다. 그것은 예정된 약속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해찰을 해도 두어 시간이면 왕곡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예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꼭대기 정수리에 올라서서야 아뿔싸! 했다.
바윗돌 옆에 의자가 하나 있었으나 자리가 옹색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없어서 앉아서 사방을 조망할 수도 없었던 것은 넓지 않은 곳에 군부대 시설물과 거대한 높이로 우뚝 솟은 방송사 tv 중계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 위로 아무런 그늘도 없이 쏟아지는 뙤약볕에 얼굴이 이글이글 익었으나 그렇더라도 남쪽도 바라보고 동쪽과 북쪽을 아니 바라볼 수 없었다. 사방 천지를 다 볼 수 있었으나 서북쪽은 시설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목을 길게 빼고 삼방 천지를 둘러보았다. 이내가 끼여 시선 끝이 텁텁하고 뿌옜으나 서쪽 끝 멀리 인정리 마을 사람들이 ‘대고깔’이라고 부르는 죽변산도 덩두렷했다.
왕곡마을에서 나고 자란, 팔십 여년의 생을 살고 계신 어르신은 산 정수리에 중계소 탑을 박아 놓아서 마을에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몹시 언짢아하셨다. 그러면서 어르신은 ‘마을 할아버이’들이 오봉, 즉 다섯 봉우리를 어떻게 불렀는지 일러주셨다. 동쪽에 있는 산은 손에 끼는 골무처럼 생겨 ‘골무산(骨蕪山, 拱帽山)’, 남쪽 송지호 근처에 있는 산은 갯가 옆에 있는 산이라 ‘갯가산(湖近山)’, 그리고 남서쪽에 있는 산은 밭도 있고 산도 있고 하여 ‘밭또산(辰方山)’ 서북쪽에 있는 산은 집이 숨은 듯 보이지 않아서 ‘숨방골(脣防山)’, 우리가 두백산(頭伯山), 뒷배재라고 부르는 산은 ‘두벽재’라고. 그러니까, 백과사전 등에서 말하는 한자어와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어르신은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초급중학교엘 다니다 전쟁이 나서 학업을 중단하셨다고.
TV중계소 옆을 지나 서북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드디어 앞이 훤히 트였고, 그제야 그늘도 만들어져 숨을 좀 쉴 수 있었다. 현무암 바윗돌 사이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다시 돌아섰다. 바윗돌 사이에 돋아난 식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린초였다. 샛노란 꽃은 돌나물과 닮았으나 꽃은 벌써 지고 없고,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었다. 선유담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며 우리 마을 숲정이에서 볼 수 있는 꽃이었으나 메마른 너덜겅에서 만나니 유별하여 한참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들여다보았다. 행여 지르되게 핀 꽃잎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그러다 기린초 꽃 대신 보랏빛 ‘용머리’를 보았다. 꽃부리가 마치 날름 혀를 내민 것 같은 딱 한 송이 꽃을.
까치수염에 앉은 은점표범나비, 또 다른 까치수염에 앉은 호랑나비를 보았으나 순간 멈칫했다. 수컷 호랑나비인데 어딘가 이상해서 가만히 살펴보니 망가진 오른쪽 날개가 보였다. 채 펴지지 않은 날개는 아마도 우화할 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림짐작했다. 그리고 개망초 떼판을 옮겨 다니면서 꿀을 빠는 큰줄흰나비를 본 뒤 다시 덜레덜레 걷다가 수풀 사이에서 빨간 열매를 보았다. 처음에는 멍석딸기인 줄 알고 다가갔으나 붉은가시딸기라고도 부르는 ‘곰딸기’였다. 맛을 아니 볼 수 없어서 한 줌 되게 따서는 한꺼번에 입에 넣고 꼬약거렸다.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강하고 씨앗도 굵어서 자꾸 잇새에 끼었다. 한국 원산이라고. 배부르게 따 먹을 수도 있었지만, 새들 밥도 좀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으므로 자리를 떴다.
군데군데 무덤이 눈에 띄었고, 그 틈 사이로 두백산 산정이 고스란히 올려다보였다. 산꼭대기 중계탑은 아무래도 이물스러웠다. 생각은 일제강점기 쇠말뚝에 이르렀다. 일제는 민족말살 정책의 하나로 명당이라고 할만한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든 없었든 산 정수리에 쇠말뚝을 박는 행위가 아름다워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금수리 고성산에도 산북리 뒤쪽 노인산에도 왕곡마을 두백산에도 산불감시탑이든, 중계소 탑이든 쇠로 만든 거대한 탑들이 있었다. 요즘은 산줄기를 뭉텅뭉텅 잘라내고 밀어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으니 그깟 산 정수리에 쇠 탑 정도쯤이야 뭐 그리 대수일까마는.
노란 좁쌀알 같은 ‘좁쌀풀’도 떼판을 이뤘고, 무엇보다 붓꽃이 피었다.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만 보면 틀림없는 붓 모양이었다. 붓꽃은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꽃이기도 했고, 솔밭 그늘 속이기도 해서 더위도 식힐 겸 한참을 서성거렸다. 꽃들은 또 꽃들대로 사연이 있을 테지만 그 사연까지 알 수 없었으므로, 설령 전해오는 사연을 안다고 해도 굳이 꺼내서 읊조릴 일은 또 아닐 듯하여 우리 마을 숲 기스락에 피고 지던 붓꽃들이나 찾아보아야지 속다짐을 했다. 그러다가 보았다, 금꿩의다리 꽃을. 입이 함박만 해졌다.
화산암 지대는 물이 괴지 않고 곧장 흘러갔고, 실제로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왕곡마을 안 개울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냈다. 들깨 모종을 한 텃밭머리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게라고 애가 탔으나 곧이어 장맛비가 쏟아졌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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