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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29]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9월 24일(화) 10:5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한국전쟁 정전협정 66주년을 맞는 지난 7월 27일(토),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12박 13일 일정으로 여정을 시작한 「2019 통일걷기」는 동서를 횡단, 가로지르는 300여 km에 이르는 DMZ(demilitariz
ed zone. 비무장지대) 남측지역과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을 걷는 행사였다. 출정식에 앞서 올봄 4월 27일 처음 열린 ‘고성 DMZ 평화의 길’을 먼저 걸었다.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 모였을 때부터 아니 통일걷기 참가 신청을 하고부터 설렘과 불안, 걱정 등으로 흥숭생숭하였으나 승합차는 벌써 동해안 최북단 관측소였던 717OP(observation post), 즉 금강산전망대로 향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새벽마다 뒤란 곁 신작로에서 웃통을 벗고 내달리던 군인들의 헛둘헛둘하는 구보 소리에 잠을 깼으며 대남방송을 들으면서 등교했다. 시시때때로 북에서 보낸 삐라를 주우러 다녀야 했고 더구나 삐라를 줍되 읽으면 절대 안 된다는 선생님 당부가 있었지만 호기심은 두려움을 억누를 만큼 강렬하여 이불 속에서 남모르게 삐라를 읽었다. 마을 냇가 너른 들에 훈련 나온 병사들이 반합을 들고 짠지와 장을 얻으러 마을을 돌 때마다 어린 우리들은 언니, 누나 이름을 팔아서 별사탕이 든 건빵을 얻었다. 오빠와 형들은 마을에 자리한 군부대 병사들이 마을 점방에 나와 술을 마실 때마다 군모를 빼앗은 등 시비가 잦았으나 카빈총을 가진 자가 매번 이기는 것도 아니어서 어린 우리들은 또 반공 드라마 ‘전우’를 흉내내며 소나무로 목총을 깎아 전쟁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쓰리꼬다’(쓰리쿼터)와 ‘제무시(GMC)’를 볼 때마다 한쪽에서는 건빵을 달라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태워 달라고 소리치며 군용 트럭 꽁무니를 뒤쫓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같은 반이었던 아무개가 마을 냇가에서 대인지뢰에 발목을 잃었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다본 북녘은 금강산 채하봉(彩霞峰)에서부터 낙타봉이라고도 불리는 구선봉(九仙峰)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오는 감호(鑑湖)와 작은 섬 송도, 해금강 만물상 구역, 무엇보다 희디흰 해안 모래불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시계가 환히 트여 가까이는 금강산 육로와 철길 그리고 산줄기를 따라 들어선 남, 북의 군사시설들과 함께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11개 GP(guard post)를 시범 철거하는 과정에서 10개의 GP를 파괴했으나 마지막 하나 원형 보전하여 남겨두기로 한 829GP, 일명 고성GP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쟁 정전 뒤 남측에서 처음 설치한 GP로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로 이름이 바뀌어 이젠 분단과 평화의 상징물로 등록문화재가 된 고성GP는 지금은 파괴되어 흔적만 선명한 북측 감시초소와는 불과 580m 거리에 있었으며 주소는 고성군 수동면 덕산리(德山里) 산 1번지였다.
무엇보다 민간인은 거주할 수 없는 행정 지명으로만 남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고향을 잃은 이들의 기억으로만 남은, 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만 남은, 아니 그곳에서 살다 사라진 돌이킬 수 없는 그 모든 동. 식물들을 그러면서 물이 많은 고장으로 알려진 고성군 수동면(水洞面)을 떠올렸다. 정전협정에 따라 탄생한 DMZ(비무장지대)는 전쟁 중 마지막 군대 접촉선을 휴전선, 즉 군사분계선으로 하자는 협상에 따라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가는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고, 그리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제가 살던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야 했으며 또 다른 죽음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눈으로 빤히 바라다보면서도 손으로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을 뿐더러 한 발짝도 더는 다가갈 수도 없는, 마치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까닭이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하고자 하는 것처럼 오로지 그 땅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그곳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두 번 다시 그곳에 발 디딜 수 없는 형벌에 처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 유엔사(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DMZ 남측지역으로 들어섰고, 이곳을 자동차로 이동하여 금강통문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앞뒤좌우로 군인들이 따라 나섰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고 쓴 파란 조끼를 입은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지어 철책을 따라 걷는 풍경은 낯설었고, 더구나 걷는 길 왼쪽 해안에는 높고 첩첩한 철책이 시선을 가로막고 있어 기묘한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더라도 철책 그 촘촘한 구멍 사이로 한창 참나리꽃과 메꽃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늦봄이나, 초여름이었다면 해란초며 갯메꽃, 좀보리사초, 순비기나무와 같은 화진포 해변에서 볼 수 있는 꽃들과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다가가 손으로 만질 수도 없을 만큼 꽃과 나는 가깝고도 멀리 있었으므로 뜨겁고도 해맑은 한여름 해변이었음에도 걷는 걸음에 힘이 붙지 않았고, 마음은 착잡했다. 역삼각형의 지뢰라고 쓴 표지판을 보는 일은 노상 편치 않았으므로.
한반도 DMZ과 민통선은 지뢰 밀집 지역으로 약 200만개 가량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지뢰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생물로 피아(彼我),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았다. 특히 플라스틱 재질로 된 M14 지뢰는 썩지도 않아서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2019년 7월 ‘고성 DMZ 평화의 길’을 걷던 우리는 2003년 해안초소 전신주 작업을 하다 지뢰 폭발로 넘어진 굴착기, 포클레인을 그대로 전시해 놓은 길옆을 지났다. 풍경은 사뭇 고요하여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바람도 불지 않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녹슨 굴착기는 모래 바닥에 반쯤은 파묻힌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쟁 중에 망가진 것일 게라고 어림짐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으나 눈으로 보면서도 굉음과 아우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부자의 시선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쪽빛으로 빛나는 바다는 더 없이 맑고 푸르렀지만 발 한 번 담글 수 없었으므로 그저 그 빛나는 모래불을 눈으로 담으면서 앞선 사람들 뒤를 무심히 따라 걷다 어느 순간 기역 자로 꺾이는 곳을 돌아들다 걸음을 멈췄다. 지뢰 표지판 너머 멀리 감호의 배경으로 넉넉한 낙타봉이 한눈에 들어왔고, 몸을 돌리자 이번에는 또 통일전망대가 우뚝하여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한바탕 꿈일 법도 한 그곳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수동면 삼치령(三峙領)에서 발원하여 해금강 남쪽을 돌아 동해로 흘러드는 남강(南江)을 떠올렸다. 남강은 물론이고 건봉산 고진동 계곡(수동천)은 마을 어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지명들이었다.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산양, 반달곰과 함께 마을 냇물에서 사라져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칠성장어와 송어를 입에 올릴 때면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호명되는, 민간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민통선은 시나브로 북쪽으로 북상하고 있었음에도 언제 다시 그곳에 가볼 수 있으려는지 아득하기만 한 지명으로.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잠시잠깐 올려다보면서, 왼쪽으로 펼쳐진 희디흰 모래불을 가로막은 철책을 힐끗거리면서 그러다 철책과 지뢰 표지판을 매달고 있는 철망을 넘어 산 뿌다구니를 관통하는, 텅 비어 오히려 더욱 커다랗게 보이는 기차 굴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옛 동해북부선 통전터널로 알려진 굴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물자 수송을 막기 위한 폭격으로 기찻길이 다 망가졌지만, 고성군 관내에는 가진터널과 통일전망대 옆 배봉터널 그리고 지금은 통전터널로 불리지만 초구터널이라고 해야 할 기차 굴이 있었다. DMZ 박물관에서 북쪽 통일전망대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 산 뿌다구니와 바닷가 사이로 보이던 그 터널을, 오래 전에는 조국 통일이라고 커다랗게 서 붙였던 그 굴을 반대쪽에서 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입이 벌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고, 한국전쟁 뒤 사라지고 만 동해북부선은 강원도 양양에서 함경남도 안변에 이르는 192.6km 이르는 철길이었다. 정전 뒤 딱 한번 열렸다 다시 닫힌.
금강산을 등지고 걸으면서 아니 한반도 동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서쪽 파주 임진각까지 장장 300여 km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면서, 어찌하다 남쪽 한라에서 북쪽 백두까지 걸어서 종단하려던 꿈은 진작에 잊고 있었던 것일까, 어찌하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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