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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4]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4]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9월 11일(금) 14:22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닥터 홀은 숨을 몰아쉬며 로제타를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종이에 쓴 글씨를 읽으라고 손짓을 했다.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평양에 갔었던 것을 원망하지 마시오. 나는 예수님의 뜻을 따른 것뿐이오. 그분이 당신과 셔우드에게 훗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오.”
닥터 홀은 너무 힘이 없어서 이젠 말하고 글씨 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다섯 명의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 했으나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나려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가장 큰 좌절감은 가슴이 벅차도록 마음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닥터 홀은 슬픔이 가득 한 눈으로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말했다.
“당, 신, 을, 사, 랑, 하, 오- !”
‘아, 제임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로제타는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진실한 사람이었고 그의 믿음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했다. 미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아이들의 친구‘ 라고 불렸던 그였는데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 셔우드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영원한 작별을 하고 있었다.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서 편안히 잠들 듯이 그는 죽음 앞에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1894년 11월 24일 석양이 물들 무렵, 그는 하나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로제타는 남편의 임종을 지켜보던 일을 훗날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가 떠나던 날, 그의 두 눈은 계속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손짓으로 나에게 내손으로 눈을 감기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 숨을 거둔 후에 뜨고 있는 그의 두 눈을 감겼다. 그러나 그의 맑고 깊은 눈빛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제임스 눈을 다시 뜨게 하고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그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너무나 맑아서 마치 평소처럼 평안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셔우드를 안고 와서 아빠의 얼굴에 입술을 대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나에게 약속한 것을 꼭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15개월 된 셔우드는 아빠가 자는 줄 알고 있는 같았다.”
로제타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오열했다.
“아, 어떻게 당신께 이런 일이……. 당신과 조선에서 환자들 병을 고쳐주며 많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내 사랑 제임스, 편히 가세요. 당신이 정말 사랑한 조선에서 하려고 했던 일을 제가 대신 할게요. 우리 이다음 영원한 안식의 나라,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로제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었다. 기진맥진하면서도 닥터 홀 곁을 떠나지 않았다.
1894년 11월 27일 배재학당의 강당에서 노블 목사의 주례로 닥터 홀의 추도식이 있었다. 그의 육신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살아남았다. 은둔왕국 조선에 와서 의료 선교사로 봉사하며 평양 선교지를 개척한 그의 헌신은 그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뜨겁게 남아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노블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34살의 짧은 생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형제 제임스 닥터 홀과 이 땅에서 잠시 이별합니다. 그를 조선식 관에 넣고 아름다운 한강의 둑(양화진)으로 가서 땅에 묻었습니다. 그 곳은 육신이 잠들기에 평화로운 장소였습니다. 그는 생명을 바쳐 일한 조선 땅, 먼저 간 사람들 사이에 묻혔습니다. 그는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아내와 자녀들과 조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남편 추도식과 장례를 마치고 홀 부인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첫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셔우드를 돌보며 조선에서 둘째아기를 출산하는 일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홀 부인은 임신 7개월이었다. 셔우드를 데리고 뉴욕 주 리버티의 친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일단 미국에 가서 힘든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둘째를 낳아 키운 후, 기회가 되면 남편이 묻힌 조선에 다시 돌아와 의료선교의 일을 할 마음을 먹었다.
미국으로 갈 짐을 꾸리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에스더가 방문을 열고 들어 왔다.
“선생님, 저도 미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가서 선생님 곁에서 일을 하며 의학공부를 하고 싶어요!”
홀 부인은 에스더가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의학 공부를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탁을 승낙하였다. 그러나 에스더를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에스더의 남편 박유산에게 의향을 물으니 미국으로 같이 가겠다고 하여 두 사람을 함께 데려가기로 하였다. 선교회에서도 승낙을 하였고 친구들도 잘 되었다며 약간의 경비도 모아 주었다.
홀 부인과 아기 셔우드, 박유산 부부는 서울의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 미국으로 가는 기선을 타기 위해 제물포로 떠났다. 서울을 떠나는 로제타의 마음은 일파만파로 착찹 했지만 이런 저런 것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제물포 조지 히버 존스 댁에 도착을 하였는데 갑자기 셔우드가 열이 40도 넘게 올랐다. 모두들 긴장 하였다.
‘혹시 아버지한테서 발진티푸스가 전염된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엄마의 정성된 치료와 간호덕분에 열이 내렸고 아이는 보채지 않고 잘 놀았다. 다음날 아침 배를 타려고 준비하는데 셔우드 몸에 반점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로제타는 셔우드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 같아 승선을 연기하였다.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아들 셔우드까지 열병이 나자 그녀는 막막하였다.
‘아,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우리 셔우드를 보살펴 주십시오……!’

다행히 셔우드의 열이 내리고 몸에 반점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가사키에 가서 배를 타야하는데 어제 제물포에서 일본으로 떠난 배는 이미 미국으로 출발하였을 거라 생각하니 걱정되었다. 다시 배편을 구하는 일은 시일도 오래 걸리고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밤에 꿈을 꾸었는데 큰 배가 아직 나카사키항에 정박해 있었다. 홀 부인은 꿈 이야기를 하며 아직 큰 배가 일본에 머물러 있을지도 몰라 서둘러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일본으로 항해하는 50시간 동안 파도가 너무 심해서 어른들은 멀미로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셔우드는 보채지 않고 잘 참아 주었다.
배가 나가사키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일행이 홀 부인에게 뛰어오며 말했다.
“당신 꿈이 맞았어요. 차이나 호는 아직 부두에 정박 중입니다. 오늘 오후 미국으로 떠난답니다!”
승객들을 심하게 멀미나게 했던 간밤의 그 폭풍 때문에 차이나 호는 출범을 연기하였다. 그들 일행은 안도의 숨을 내 쉬며 배에 오를 수 있었다.

한 달 정도의 긴 여행 끝에 로제타는 미국 뉴욕의 리버티 옛집에 도착하였다.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아! 그리운 나의 집, 남편과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로제타는 이 집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집안과 마당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옛 추억에 잠겼다. 조선에서 돌아 온 지 2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로제타는 자기가 태어난 그 집에서 셔우드의 동생, 둘째를 낳았다. 예쁘고 파란 눈을 가진 딸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이미 닥터 홀이 살아 있을 때 ‘에디스 마거리트’ 라고 지어 주었다.
셔우드가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누이동생은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뉴욕의 리버티에서 태어난 것이다. 참 이상하였다. “동쪽과 서쪽에서 너의 씨앗을 데려오고 불러 모을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로제타는 남편 닥터 홀이 살아서 예쁜 딸 에디스 마거리트를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하였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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