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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5]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5]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9월 23일(수) 13:3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홀 부인 로제타는 고향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 로즈밸트 셔우드(Rosevelt R. Sherwood)는 손자 셔우드와 함께 지내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외할아버지 생일날 셔우드가 태어났다. 그는 외손자의 생일이 자기 생일과 같은 날이라는 데 어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 밑에 ‘아흔 살과 한 살’이라고 써 붙이고 즐거워하였다. 셔우드도 외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새 학기가 시작 되었다. 홀 부인은 에스더를 불렀다.
“사랑하는 에스더, 이제 당신도 공부를 시작해야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학비가 많이 들겠지만 제가 장학금을 받도록 열심히 노력 할게요. 시간 날 때 일해서 학비도 모으고요.”
에스더의 눈빛은 강렬했다. 미국까지 오게 한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에스더는 리버티의 공립학교에 입학하였고 그녀의 남편 박유산은 셔우드가의 농장 일을 도우며 에스더의 학비를 마련했다. 조선학교에서는 선교 위주의 학습이라 내용이 단순했지만 미국에서는 학습 분량이 많고 교육과정도 다양해 매달 과외비용을 지불하며 친구 집에 합숙시키거나 기숙사에 보내서 공부를 해야 했다.
에스더는 총명하여 학습에 많은 진전을 보였다. 그해 9월, 뉴욕시 유아병원에서 근무하며 생활비를 버는 한편, 개인 교수를 찾아서 라틴어, 물리학, 수학을 공부하였다. 그 이듬해 가을, 에스더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당당히 입학하였다.(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교) 조선최초의 여학교(이화 학당)에서 만난 어린 소녀 김점동, 그녀는 에스더 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최초의 한국여성이 되었다.

홀 부인은 두 돌이 되어가는 셔우드와 생후 6개월 된 아기 에디스 마거리트를 데리고 캐나다 글렌뷰엘에 있는 남편고향을 방문하였다. 시부모님과 남편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무척 반가와 하였고 크게 환영해 주었다. 어릴 때 제임스(닥터 홀)가 자란 통나무집도 그대로 있었다.
닥터 홀의 부모는 며느리와 손주들의 방문을 아주 기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이 선교사가 되어 극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지만 며느리가 귀여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찾아 온 일에 대하여 무척 기뻐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여행에 박유산도 동행하였는데 그는 그때까지도 긴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상투를 틀고 그 위에 중절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모습은 서양인들에게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캐나다 글렌뷰엘 교회에서는 특별한 환영예배를 마련해 주었다. 홀 부인은 그들의 따뜻한 환영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이 우리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동안 당신의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우리는 당신의 가족들과 조선에서 함께 온 형제자매도 한 가족으로 환영합니다. 여건이 어려운 외국에 가서 예수님을 전하고 다른 민족을 섬기다가 돌아온 당신들을 존경하고 환영합니다. 닥터 제임스는 조선에 믿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가 보내온 편지에는 저 먼 나라 백성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맺은 아름다운 결실을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제임스는 하늘나라에서 아내와 아들딸이 이곳에 온 것을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로제타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남편의 혈육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이처럼 따뜻하고 애정 어린 표현을 보며 남편 제임스는 이 캐나다의 고향에 잊히지 않는 추억을 많이 남긴 게 틀림이 없었다. 그를 기념하는 액자가 글렌부엘 교회에 걸려 있었다. 남편의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 자신보다는 타인을 향한 헌신을 남편 고향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에 큰 감동을 받았다.
홀 부인은 시댁 식구들의 사랑을 받고 배웅을 받으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제 남편이 살아생전에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에 닥터 홀을 기념하는 병원을 짓기로 하였다.
그 일을 꿈 꾼 지 2여 년 후, 선교회로부터 아무런 경제적인 원조를 받지 않고 로제타와 친지들, 조선의 선교사들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1897년 2월, 평양에 ‘닥터 홀 기념병원’이 세워졌다.

닥터 더글라스 포엘은 닥터 홀의 후임으로 평양에 온 의사이다. 그는 이 병원을 짓는 일을 매우 성스러운 사업으로 여겼다. 이 시료원(병원)은 조선식 건물로 평양성 서문 안쪽의 지대가 높은 곳에 지어졌다. 중심지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고 대기실, 진료실, 약제실, 의사 사무실이 들어가도록 설계하여 지었다.
닥터 포엘은 조이스 감독과 조선 선교회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보냈다.
“닥터 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의 아내의 노력으로 홀 기념 병원이 평양에 개원되었습니다. 이제 환자들을 수용할 방과 필요한 의료 기구를 구입할 기금만 있으면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나는 수술해야 할 환자들이 와도 돌려보내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기구와 입원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망치나 못, 톱이 없으면 목수가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외과 의사는 수술기구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장비가 부족해서 실패할 수도 있는 수술을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성공적인 수술 결과가 나오는 수술만 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필요한 의료 기구들을 평양에서 사용하며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이듬해 수술기구를 구입할 자금이 모금 되었다. 닥터 포엘의 보고서에 의하면 3개월 동안 수술하여 치료받은 환자는 1300명이 넘었고, 일반 환자도 1000여명 치료 했다고 한다. 환자 수는 매일 평균 60여명이라고 하니 당시 홀 병원의 유명세를 짐작 할 수 있다.
홀 부인은 미국에서 평양 홀 병원의 후원금을 마련하면서 『월리엄 제임스 홀, M.D의 생애』 라는 남편의 전기를 출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많은 노력 끝에 1897년 8월, 뉴욕 감리교계통의 출판사 에서 닥터 홀의 전기를 출간하였다. 그 책은 많이 팔렸고 특히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홀 부인은 시동생인 클리포드 홀에게 그 책의 캐나다 판매 임무를 부탁했다. 책을 판매한 대금은 닥터 홀 병원설립 기금과 관리기금으로 보냈다.

홀 부인의 머리에 항상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숙제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조선의 맹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던 자신과의 다짐이었다. 그녀는 맹인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알아보았다. 1892년에 프랑스 파리의 맹인 교사인 루이 브라이가 개발한 점자책이 있었다. 또한 1860년 뉴욕의 맹인 교육학원의 원장인 월리엄 웨이트가 개발한 “뉴욕 포인트”라는 점자책도 있었다.
여러 가지 점자 구조를 비교해 본 그녀는 ‘뉴욕 포인트’가 조선어 구조에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웨이트 원장을 직접 찾아가서 점자의 구조를 배웠다. 평양에서 남편과 자신을 많이 도와주던 착한 오 씨와 앞을 못 보는 딸 오봉래가 생각났다. 하루 속히 조선에 가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의 맹인들에게 점자를 가르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에서 그가 하지 못했던 의료 계통의 일들을 이제 조금씩 시작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홀 부인은 다섯 살, 3살 된,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1897년 가을, “Empress of India” 라는 배를 타고 조선을 향하였다.
‘아, 또 어떤 일들이 내 앞에 전개될까?’
남편이 평양 개척을 하며 위험한 지경에 있을 때 모펫 목사가 전보로 보내준 여호수아 1장 9절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도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니라!”
홀 부인은 갑판에 나와 뱃머리에 부서지는 세찬 물살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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