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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성사에 대한 단상

<고성문학회> 회원 작품 릴레이 [18] / 박봉준(수필)

2020년 10월 29일(목) 13:5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이번 부활절 판공성사는 여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일괄 고백 일괄 사죄’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아내 마리아가 판공성사 때마다 걱정거리가 있는 듯 예민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도 신부님 앞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 떨리고 불편해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죄를 고백하며 떨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할 수도 있겠다. 저러다가 혹시 냉담은 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면서도 조심스럽게 나중에 다시 개별 성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건넨다.

더없이 고결하신 성모님을 흠모하여 성당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마리아란 세례명을 가질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아내는 결국 소원하던 마리아가 되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요셉이 되었다. 아내에게 마리아란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요셉인 나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첫 번째 판공성사를 받았다. 성사를 앞두고 아내는 불안하고 예민해 보였다. 예비신자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한 해에 두 번이 의무라는 사실은 몰랐다. 사실 지인들과 천주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제 앞에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성사를 선뜻 받아들이기 난감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날아갈 듯하던 그 상쾌한 청량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해진 내 영혼을 위해 마음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도 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고 속이 후련하지만, 그때의 첫 성사를 마친 기분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마음이 무겁고 지은 죄가 클수록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나는 성사를 볼 때면 미리 죄목을 나열한 인쇄물을 가지고 간다. 한번은 별실에서 성사를 받게 되었는데 방에 들어서자 촛불이 희미하고 글씨가 잘 보이질 않아 순간 무척 당황했다. 그냥 고해하자니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고해를 시작하라고 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고 적막한 어둠에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니 신부님이 금방 눈치를 채시고 촛불을 밝게 해 주셨다. 그 자상하심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 후로는 그럴 때를 대비하여 활자 포인트를 크게 해서 출력한다. 적어 놓은 인쇄물을 읽는 것이 형식적이고 진지하지 못한 것 같아서 성사를 받을 때마다 마음에 부담이 되었는데 어느 신부님께서 성사 준비를 잘하였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여태껏 그렇게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판공성사를 볼 때면 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이제는 익숙하다.
성사가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방 나오는 사람도 있다. 나도 성사 받는데, 오래 걸리면 그것이 독실한 참회일 것 같아 궁리를 해 보기도 했다. 미리 써 놓지 않고 그냥 신부님 앞에서 곰곰이 잘못을 끄집어내어 고해하면 시간은 길어질 것 같은데, 대신 준비한 내용이 생각이 안 나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하던 대로 한다. 고해가 형식적인지 아닌지는 주님께서 판단하시리라. 고해소에서 어느 자매님의 흐느끼는 기척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때 달랑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있는 내가 더없이 작게 느껴지고 아직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해인가는 첫 번째로 성사를 보러 임시 고해소에 들어간 자매님이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자니 신앙인으로서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눈총을 받을 것 같고 더구나 고해성사를 받으러 온 사람이 남의 흉을 보는 것은 가당찮다는 생각에 다들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드라마 한 편은 본 듯한 시간이 흐르고, 지루함이 절정에 이를 즈음에 문제의 자매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미 자신도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알고 밖에서 기다리는 교인들의 원성을 의식했는지, 문을 나오자마자 손사래 치며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자신은 고해를 짧게 했는데 신부님의 훈화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하며 자매님은 총총히 행렬 사이를 지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모두 할 말을 잃고 겸연쩍은 얼굴을 하였다. 무슨 중대한 죄를 고백했는지는 모르지만, 신부님도 첫 시작이라 하실 말씀이 무척 많으셨나보다 생각하며 다시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또, 어느 해인가 성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해소 안에서 갑자기 우렁찬 남자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초등학생쯤 되는 그 목소리는 성당 안을 쩌렁쩌렁 울려 본의 아니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그 동심 세계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듣게 되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으나 웃지도 못하고 웃음을 참느라고 모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아이는 누구보다 진지하였다. 그래도 아이가 혹시 무슨 큰 죄라도 지었다고 불쑥 고백하는 건 아닌지 끝까지 긴장감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고해가 누구보다 정직하고 숨김이 없는 고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남의 고해를 몰래 듣는 것은 부담스럽고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고해소에서 들었던 신부님의 훈화 중에 사람의 마음은 유리창과 같아서 닦아도 늘 때가 낀다는 비유의 말씀이 나는 참 좋았다. 유리창은 깨끗이 닦아도 금방 더러워지는 것이라서 우리가 죄를 지는 것도 불가항력적이고 정당하다는 말이 아니라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닦아도 때가 금방 끼니 계속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때가 끼는 데 지나치게 집착을 하여 교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다독거려주시는 따뜻한 사랑이 아닐까. 해마다 지은 죄를 찾아내고 백지에 적어보아도 그 죄가 그 죄다. 똑같은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그런 패턴이 반복될수록 나의 신앙심에 방심이 생기고 틈이 생기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진지하게 묵상을 해볼 일이다.

※판공성사 : 가톨릭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해 성사
※이 글은 <경향잡지> 2020년 8월호 게재된 것입니다.
-고성군 아야진 출생
-2004 <시와 비평>으로 등단
-(사)한국가톨릭문인회원, 두레문학회원, 관동문학회원
-(사)한국문인협회 강원고성문인협회장(고성문학회장)
-시집 <입술에 먼저 붙는 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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