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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7]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7]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10월 29일(목) 13:54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에디스가 하늘나라로 간지 일 년이 지났다. 홀 부인은 환자를 돌보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로는 깊은 회의도 밀려왔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아픔을 참으며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제임스. 당신은 전쟁부상자를 돌보다가 하늘나라로 갔고 사랑하는 딸 에디스까지 질병으로 내 곁을 떠나갔어요. 의사인 엄마가 딸을 지켜주지 못했어요. 너무나 슬프고 외로워요. 그러나 조선에 와서 제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겠지요? 그 일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있어요. 다행히 우리 아들 셔우드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홀 부인과 아들 셔우드는 평양 여성치료소에서 살고 있었다. 여성치료소는 1898년 6월에 문을 열었고 홀 부인의 환자는 대부분 여성 환자들이었다.
어느 날 평양감사로부터 아내가 병이 났으니 급히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몇 번의 왕진치료를 하여 어려운 고비를 넘긴 감사부인은 병이 나았고 몸도 회복되었다. 조 감사는 기뻐하면서 수고비로 달걀 100개와 닭 3마리를 보내왔다.
얼마 후 여성치료소가 개원하는데 홀 부인은 치료소 이름을 평양감사에게 지어 달라는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환자들이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올 것 같았다.
“감사님, 평양에 여성들을 치료하는 시료소를 개원하려 합니다. 감사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감사는 쾌히 승낙하였고 <광혜여원>(廣惠女院,Women’s Dispensary of Extended Grace)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서신까지 보냈다.
“내 아내가 이 치료소의 착한 사람들에 의해 병이 나은 것처럼 앞으로 많은 여성 환자들이 이곳에서 좋은 의료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을 지었소.”
평양감사의 배려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진료를 하게 되었다. 서양인을 배척하여 처형까지 감수하며 평양에서 진료를 시작했던 남편 제임스 홀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기도 했지만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이렇게 우호적인 의료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 부인은 진료활동 이외에도 더 많은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여성병원과 어린이 병동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여성선교위원회에서도 이 사업을 돕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후원하였고 에디스 이름으로 저축해 놓은 저금도 합쳤다.
1899년 8월, 병원건축을 시작하였다. 당시 평양의 모든 건물들과 선교사들이 사는 집들도 한옥이었다. 이 어린이 병동이 평양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나무판자로 누비듯 벽을 만들고 양철 지붕과 벽돌로 굴뚝을 세운 것도 평양에서 처음 보는 건축물이라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병원 건물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홀 부인은 이 병동의 이름을 “에디스 마거리트 기념병동”이라고 지었다. 이 기념 병동에 등장한 명물은 커다란 ‘물탱크 저수장’이다. 평양에서 처음 보는 깨끗한 물의 공급원이었다. 이질 병의 가장 큰 원인은 오염된 물이다. 이질은 그토록 사랑하던 딸 에디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홀 부인은 식수에 많은 신경을 썼고 좋은 수원지와 물 저장고를 만드는 일은 병동을 짓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관청에 물탱크 건축허가를 신청했는데 관료들과 주민들이 심하게 반대하였다.
“평양은 지형이 배처럼 생겼는데 저수탱크를 만들기 위해 땅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을 것이오.”

관료들도 미신이나 풍수지리를 믿는 주민들과 마음을 같이 하며 건축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홀 부인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 일이이야 말로 평양 주민의 건강을 지켜 줄 수 있는 길이다. 무지한 그들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이런 실상을 바로 알려 마음이 열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관료들을 만나러 갔다.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강물을 떠다 먹어도 괜찮지만 몸이 연약한 아이들이나 병자에게는 깨끗한 식수가 필수입니다. 식수가 불결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그 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 저수탱크 구멍을 시멘트와 벽돌로 단단히 막을 것이므로 평양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홀 부인의 얼굴에 이질 전염병으로 딸을 잃은 엄마의 슬픔이 묻어 있는 것을 그들도 눈치챘는지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구멍을 튼튼하게 막는다는 조건으로 관리들은 청을 들어주었다.
“하긴, 저 서양 여의사는 남편과 딸을 잃어버리고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양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있으니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이번 시설은 허락해 주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여 깨끗한 식수 저장고가 완성되었다. 비가 오면 양철 지붕으로부터 물탱크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미국에서 수입한 특수 금속 파이프가 설치되었다. 커다란 탱크 위에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셔우드를 시켜 비가 올 때마다 파이프의 특수 레버를 움직여서 먼지 섞인 물을 제거한 다음 흐르는 빗물을 물탱크에 보내는 일을 맡겼다. 단순한 일이라서인지 셔우드는 책임지고 잘 해냈다. 그 일이 재미있었는지 은근히 비가 오길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병원 일을 하면서도 홀 부인은 남편과 에디스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아픔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디스를 보낸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밤이면 괴로움으로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홀 부인은 마음을 달래려 셔우드를 데리고 상해로 잠시 휴가를 떠났다. 그때의 감정들을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요즘 때때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 때도 있고 내 인생의 아픔이 점점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내 심정을 차마 글로 쓰기조차 두렵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내게 주어진 이 아픔이 주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감사할 수가 없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이런 시련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의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다. 이런 심정은 기독교 선교사의 입장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가장 두려운 시련이다. 나는 머리를 식히려고 셔우드를 데리고 상하이에 갔었다.
상하이에서 피치 부인에게 내 심정을 말하였다. 피치 부인은 나의 이러한 아픔은 당연한 감정이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닥터 홀과 에디스가 떠나간 일을 몹시 애석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주님의 뜻으로 돌리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피치 부인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시 힘을 차리도록 위로와 여러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닥터 홀은 나를 지극히 사랑했으므로 내 영혼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이 편안하길 원할 것이다. 나는 2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이 무분별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계속 나를 지켜주시고 성령께서 부족한 내 믿음이 다시 회복되고 감사가 충만하도록 인도해 주시리라 믿으며 다시 평양으로 왔다.”

선교사 일지라도 인간적인 깊은 고뇌가 깃든 홀 부인의 일기를 아들 닥터 셔우드 홀은 훗날 어른이 되어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겉으로 감정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어린 자신을 데리고 이렇게 큰 아픔을 삭이며 신앙으로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내셨구나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아프고 숙연해졌다고 한다.

휴가에서 돌아온 홀 부인은 마음을 추스리고 맹인들을 위한 점자교육을 하기 시작하였다. 병동에 눈먼 소녀들을 위한 점자 교육 장소를 마련하고 주변에 눈먼 소녀들이 있으면 병동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점자 교육 장소를 개소한 이튿날, 밖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오봉래 에비 오 씨예요”
“아, 오 씨!……. 어서 들어오세요.”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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