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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의 신혼 이야기

<고성문학회> 회원 작품 릴레이 [19] / 이미복(수필)

2020년 11월 11일(수) 09:11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지난여름은 비로 얼룩지고 마스크에 모든 것이 가려진 채 지나가 버렸다.
요즘 제법 서늘해진 아침저녁 날씨에 한낮 햇볕도 그리 싫지 않아서 모자 없이 마스크만 하고 집을 나섰다. 올핸 익은 벼 이삭을 보지도 못했는데 논에 추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들판의 초록빛 잡초들은 시들어 가는데 하얀 망초 꽃과 보랏빛 쑥부쟁이 그리고 연분홍 코스모스가 은은한 색으로 곳곳에 빈 공간을 메꾸어주듯 아름답게 피어있다. 마을길을 벗어나 한참동안 들길을 걷다보니 해는 어느 사이 온기를 잃어가고 있다. 멀리 도로가엔 시내버스가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출발한다. 장소는 다르지만 넓은 들판과 시골 마을의 모습이 비슷했던 신혼 때의 어느 가을이 생각났다.

그 시절 적지 않은 나이인 스물여덟과 스물일곱에 내가 근무 하던 학교 관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퇴근하여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더운물을 쓰고 방에 군불을 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불을 피우는 일은 요령이 없어서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 신랑은 버스로 30분쯤 가야되는 우리 학교의 분교에서 근무하였다. 퇴근 무렵 멀리 신작로에서 버스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부엌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그이는 어김없이 버스에서 내렸고 멀리 억새와 채소 밭길 사이로 걸어오는 모습을 가슴 설레며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부엌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였다. 현관문을 열며 나를 부를 때까지…. 아마 그때 남편은 버스에서 내려 연기가 올라가는 우리 집을 바라보며 또 아내가 맞아 줄 모습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들길을 걸어왔을 것 같다. 지금 같으면 버스가 서는 곳 까지 마중을 나갔을 텐데…. 솜씨를 다해 준비했던 도시락 가방을 반갑게 받아들고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왔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지 못한 이유가 이웃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숫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두 가지가 합쳐진 이유일 수도 있다.
남편은 클래식에서 가요까지 모든 음악을 좋아하였고 피아노와 풍금도 악보 없이 잘 쳤다. 내 기준으로 외모도 준수한 편이었다. 처녀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지만, 어머니 같은 연세의 여선생님께도 사랑을 받았던 성실하고 재주가 많은 총각 선생님이었다. 둘이 결혼하기 전 읍내 서로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남편과 한 학교에 근무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중매 역할로 만나게 되었고 일 년 정도 지나 결혼 하였다. 그래서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에 가깝다.

결혼 전 부르던 호칭을 딱히 바꾸지 못하고 ‘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몇 개월이 지나자 그것도 어색하게 느껴져 부르지 않고 다가가서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자 큰아들 슬기가 태어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슬기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편하고 자연스런 호칭이 생겨서 좋았다. 그리고 ‘이 선생님’에서 ‘슬기 엄마’로 불려지는 것이 행복했다. 어쩌면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처음 ‘엄마’라고 불렀던 것 보다 남편이 ‘슬기 엄마’라고 불렀을 때가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출산을 하고 얼마 후 강릉에서 시어머니가 오신 다음 날이었다.
남편이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며 “슬기 엄마” 하고 불렀다. 그런데 방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엄마’소리만 들으셨는지 “그래.” 하고 먼저 대답을 하셨다.
“엄마 아니고 슬기엄마 불렀어요.” 나는 부엌에서 대답 대신 소리 없이 웃었다. 왠지 시어머니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살림하며 자상한 그이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때로는 나를 의지하며 산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항상 현관문을 열면서 엄마 찾는 아이처럼 나를 찾을 때와 혼자 자려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아이처럼 말할 때이다.
‘아내’는 ‘안 해’로 뜻을 풀이하면 ‘집안의 해’와 같은 존재라고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아마 나는 ‘집안의 해’이였나 보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 그 주인공처럼 남편이 젊고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 그리고 앨범 속 늙지 않은 젊은이의 모습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에 병이나 일 년을 투병하고 우리 가족 곁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늦가을 땅거미 지고 전기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낯선 도시 많은 인파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있다. 그리고 햇볕의 따스함이 사라진 텅 빈 들판에 서서 갈대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느끼는 쓸쓸함이 있다. 그러나 신혼의 그 가을엔 외로움과 쓸쓸함을 몰랐었다.
지금은 작은 수채화 그림처럼 아름답게 기억하고픈 나의 신혼 일기 같은 이야기이다.

-고성군 거진읍 출생
-거진초·중·고, 춘천교대 졸업
-<생활문학>으로 수필가 등단(2015)
- 생활문학회 회원
- 문인협회 고성군지부(고성문학회) 회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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