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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8]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8]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11월 11일(수) 09:1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닥터 홀이 처음 평양에서 병원을 매입하는데 이름을 빌려주었고 신앙의 박해를 받으며 함께 어려움을 겪은 오 씨였다. 오 씨는 눈이 먼 딸 오봉래의 손을 잡고 들어 왔다.
“어서 오세요. 그러잖아도 뵙고 싶었어요.”
홀 부인은 오 씨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오 씨는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 후 봉래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홀 부인은 오봉래에게 점자 교육을 시작했다. 교재는 ‘뉴욕 점자’를 조선말에 맞게 고쳐서 사용하였다. 처음 이 점자 교육은 진도가 느리게 나가고 지루하였으나 봉래가 점자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해득한 후에는 진도가 빨랐다. 오봉래는 점자책으로 교육을 받은 최초의 조선인 맹인이었다.
그해 겨울, 홀 부인은 여가를 이용해서 조선어 점자교재를 다시 만들었다. 빳빳한 조선 기름종이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뚫어 키보드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교재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 존스 여사가 지은 ‘조선어 기도서’, 그리고 ‘십계명’이었다.
놀랍게도 오봉래는 일 년 만에 홀 부인이 만든 모든 교재를 읽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총명한 그녀는 점자로 글을 쓸 수도 있게 되었고 말하는 것을 받아 맹인 친구들에게 초보적인 점자를 가르쳐 주기까지 하였다. 홀 부인은 봉래에게 뜨개질도 가르쳤다. 손끝의 감각이 남달라 잘 따라 하였고 목도리를 떠서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였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장님인 제가 글을 읽고 뜨개질도 할 수 있다니…….”
봉래가 글을 읽고 뜨개질을 하며 행복해한다는 소식이 병원 안과 밖에 널리 퍼졌다. 직원이나 환자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맹인 소녀들도 받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홀 부인은 맹인 소녀들도 정상적인 소녀들과 함께 배워야 하며 가능하면 여러 놀이나 운동에 똑같이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그 시절에 조선에서 첫 번째 ‘맹인학교’가 생기게 되었고 평양 여학교가 설립된 후에 맹인반이 추가되었다.
초보 학생을 위한 특수교사들을 훈련 시켜서 교사진에 합류시키는 일도 필요하였다. 홀 부인은 봉래를 교사로 훈련 시키기로 하였다. 여러 훈련과정을 거쳐서 결국 봉래는 특수교사가 되어 앞을 못 보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어려운 점을 알고 있어 더 섬세하게 가르치게 되었고 배우는 학생들도 편안하게 배울 수 있었다. 맹인학교는 계속 커져서 후에 ‘청각 장애인’까지 수용하게 되었다.
평생 보고 듣지 못하며 힘겹게 살아가야 할 그녀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찾게 되었다. 조선에 아직 신문화가 들어오기 전인 1899년 여성들에게는 어두운 은둔의 시절에, 어려운 시련을 참으며 의료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한 닥터 로제타와의 만남으로 앞을 못 보는 소녀들은 새로운 광명의 삶을 살게 되었다.

병원 일이 조금씩 안정되자 로제타 홀 부인은 의료선교 초청을 받아 지방교회를 방문 하게 되었다. 닥터 홀이 평양에서 교회를 시작한 후 8여 년 만에 지방에 스물아홉 개의 교회가 생겼다.
이제 7살이 된 아들 셔우드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셔우드는 조랑말도 잘 타는 용감한 꼬마였고 성격도 활발하고 진취적이었다. 홀 부인과 간호사 수잔, 셔우드, 마부, 선교 일을 돕는 일행은 세 마리의 조랑말에 의약품을 싣고 길을 떠났다. 조랑말의 등을 중심으로 양쪽에 의약품과 짐을 실은 상자를 걸쳐놓고 한가운데는 짚을 갈아 푹신하게 하여 그 위에 셔우드를 앉혔다. 어느 한쪽으로 쓰러질 때 잡을 수 있는 난간 같은 것을 만들어 주어 등을 받칠 수도 있었고 급할 때 손잡이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
셔우드는 이 선교여행이 무척 재미있었나 보다. 조랑말들의 목에 방울 종이 달려있어 움직일 때마다 종소리를 냈다. 마을을 지날 때면 종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치료와 약품을 받을 때는 서로 먼저 받겠다고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다. 일과가 끝나면 여인숙에서 잤는데 빈대, 벼룩, 이가 들끓어 살충제 가루를 뿌리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주를 통과한 후, 운산으로 가기 위해 밑이 납작한 나룻배에 조랑말까지 싣고 청천강을 건넜다. 운산에서 10km 떨어진 곳에 ‘동양연합광산회사’가 있었는데 ‘미국금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벙커 목사는 운산 지역의 선교사로 있었고 운산은 평양보다도 여성을 격리시키는 풍습이 엄격하여 여성들을 전도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이 광산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조선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본국 사람들의 방문은 마치 가족을 만난 듯 기쁜 일이었다. 꼬마 셔우드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고 선물도 듬뿍 받았다.
광산 주변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이삼 층으로 지어진 건물, 서양식 유리창과 지붕들, 벽돌로 만든 굴뚝, 기계들이 돌아가는 분주한 소리 등등 평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고 같이 갔던 마부들도 얼굴에 신기한 표정이 가득하였다.
광산의 테일러 소장은 일행들이 돌아갈 때 무장한 호위병을 한사람 동행시키겠다고 하였다. 길이 험난해 도둑과 호랑이가 가끔 행인을 습격한다고 하였다. 거절하였지만 테일러 소장의 강력한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른 마을도 들려 낮에는 진료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예배를 드렸는데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홀 부인은 감동했고 남편 닥터 홀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제임스, 당신이 조선에서 뿌린 복음의 씨앗이 이렇게 많은 싹을 틔우고 잘 자라고 있어요! 저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당신을 보듯 저도 행복해요.”
홀 부인은 이번 여행에서 돌아와 비로소 마음에 평안을 찾았고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병원 일과 환자를 돌보는 일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꼬마 셔우드는 친구들과 놀이를 하며 잘 자랐다. 대부분 친구는 선교사들의 자녀였는데 노블 목사의 딸 루스와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놀았다. 가끔 노블 목사의 젊은 비서가 아이들의 놀이에 합세하였다. 아이들은 그를 좋아하였다. (훗날 셔우드는 그 비서의 안 좋았던 행동을 광산 소장께 용서해 달라고 진심으로 울면서 애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놀며 영어 회화를 배우려고 하였다. 영어를 배우는 대신 선교사 자녀들에게 조선 민속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연싸움’을 여자아이들에게는 ‘널뛰기’를 가르쳐 주었다.
연싸움은 하늘은 날고 있는 상대방의 연을 떨어뜨리고 자기의 연을 높이 날려야 이기는 경기이다. 연을 만든 후 깨진 유리 조각을 잘게 부셔서 그것을 풀에다 섞어 연 가까운 부분의 실에다 묻힌다. 이 날카로운 부분으로 바람에 날리는 연을 얼레로 조종하며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야 한다. 이 놀이는 상당한 인내심과 연을 만들고 날리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였다.
그밖에도 겨울에는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눈사람 만들기’, ‘팽이치기’ 놀이를 하였다. 봄철에 평양에서는 조선 전통의 ‘돌 던지기시합’이 있었는데 이 경기가 열릴 때면 서양에서 권투시합에 군중이 몰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두 편이 알맞은 돌멩이를 골라서 가장 멀리 던지는 것을 겨루는 경기이다. 소녀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돌멩이를 윤기가 나게 갈고 닦았다. 경기 장소는 성 밖이었지만 위험한 경기라 홀 부인은 셔우드를 데리고 성 위의 편안한 곳에 가서 시합을 관람하였다.
“선수들이 던진 돌멩이가 관중들 위에 떨어질 경우도 있으니 성 밖에 나가지 말고 여기 성 위에서 구경하거라!”
어머니가 타일러도 모험심이 많은 셔우드는 몰래 성 밖을 빠져나가 군중 속에서 응원하며 열광을 하여 홀 부인은 걱정하며 찾아 나설 때가 빈번하였다.
“셔우드가 학교공부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저렇게 놀게만 해서는 안 되는데 어쩌나?”
홀 부인은 셔우드의 교육문제로 많은 고심을 하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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