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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9]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9]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11월 11일(수) 16:2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셔우드의 교육 문제로 고심하던 홀 부인은 주변 국가의 외국인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중국 내륙지방에 선교사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영국식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서해를 건너 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아직 일곱 살 밖에 안 된 셔우드를 그렇게 먼 곳으로 보낼 수는 없어….’
스웰렌 목사도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스웰렌 목사는 닥터 홀이 처음 평양에 병원을 시작한 후 평양에 온 장로교 선교사이다. 부인이 두 아이에게 직접 학습지도를 하고 있었다. 셔우드도 그들과 함께 공부를 시키기로 하였지만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의한 공부를 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이런 교육 방법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어요.”
“아이들을 중국까지 보내지 않고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의해 교육시키는 방법은 없을 까요?
“그렇다면 합법적인 교육기관이 있어야겠어요. 교사도 있어야 하겠구요.”
홀 부인과 스웰렌 부인은 선교사들의 자녀를 위해 평양에 학교를 세우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 무렵 평양에 장로교 선교사로 있었던 월리엄 베어드 박사 부부도 합세하였다. 그때 베어드 가족은 미국으로 안식년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를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다.
스웰렌 박사는 미국에 가서 안식년을 보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선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선교활동 사례들을 알렸다. 어느 집회에서 설교를 하며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와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18살 된 루이스 오길비(Louise Ogilvy)양이 그 집회에 참석했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아빠, 엄마, 제가 조선에 가서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 뜻은 기특했지만 18살 밖에 안 된 딸을 멀리 보낼 수 없어 오길비의 부모는 반대하였다. 그러나 스웰렌 박사 가족이 안식년 휴가가 끝나고 조선에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도 조선의 외국인 학교 교사직을 맡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자 결국 오길비의 강한 의지는 부모님을 설득하였고 어린 처녀 선생님은 조선으로 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평양 외국인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후에 조선의 선교사 자녀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다른 아시아 지역의 선교사 자녀들까지 유학을 왔다.
홀 부인은 학생들이 훗날 미국에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뉴욕 교육심의회에서 제정한 교육과정을 그대로 적용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모든 교재나 교과과정을 그대로 이수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 ‘평양 외국인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본국에 가서 중퇴자 없이 대부분 상급학교로 바로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오길비 선생님은 평양의 감리교선교사로 있는 모리스(Charles D. Morris) 선교사와 결혼 하였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이 뜻깊은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모리스한테 시집가려고 젊고 예쁜 선생님이 조선으로 오게 된 것 같다며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겨울철 놀이로 아이들은 팽이치기 즐겼다. 손으로 깎아서 만든 나무 팽이를 얼음판 위에서 회초리로 치면 팽이는 뱅뱅 돌아갔다. 이 팽이가 멈추지 않고 오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 이긴다. 조선 아이들은 채찍 같은 끈을 가느다란 나무에 묶어 팽이를 치면 팽이는 잘 돌아갔고 선교사의 자녀들도 서툰 대로 팽이놀이를 즐겼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열중하다가도 가끔 운산에 있는 ‘미국 금광’으로 가는 짐을 실은 조랑말들을 몰고 지나가는 일행을 만나면 팽이 놀이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 일행 중 말 한 마리는 처음 보는 튼튼한 나무상자를 싣고 있었는데 호위병들의 삼엄한 경호를 받고 있었다. 이 상자들은 언제나 선교사의 집으로 옮겨졌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상자 속에는 광산에서 일하는 조선인 일꾼들에게 지불할 은화가 들어 있었다. 그 당시 평양에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의 집에 보관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조선 일꾼들은 지폐보다 은화를 더 원했다. 그래서 일꾼들의 수고비를 줄 때가 되면 부피가 큰 은화를 보관하고 옮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 말썽 없이 잘 보관되었는데 어느 날 미국인 금광의 간부가 보관했던 짐을 다시 말에 실으려 했을 때 문제의 상자가 가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상자를 열고 은화를 세어 본 결과 예상대로 은화의 일부가 없어졌다. 이 상자는 오는 도중 경호를 받았고 선교사의 집에서도 문단속을 잘 했는데 도난사고가 난 것이다.
도둑을 찾아낼 수 없자 금광 관계자들이 대책을 의논하였다. 광산에서 곰이나 산짐승을 잡는 ‘덫’을 가져와서 상자 안에 몰래 넣어 도둑을 잡자고 하였다. 다음 달 다시 은화상자를 이곳에 가져올 때 그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하였다.
“산짐승을 잡는 ‘덫’으로 도둑을 잡는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노불 목사를 비롯한 몇몇 선교사들은 이 계획이 위험하다고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돈을 찾아야겠다는 금광 관계자들의 강한 주장으로 선교사들의 의견은 묵살 되고 말았다.
다음 달 일꾼들의 품값을 운반하는 날이 되었다. 선교사의 집에 보관한 은괴 나무상자 뚜껑에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을 뚫은 후 상자에 은화를 가득 넣은 후 그 위에 덫을 살짝 올려놓은 후 뚜껑을 닫았다. 상자를 보관한 벽장 속은 캄캄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 상자 속에 손을 넣기만 하면 덫에 걸리게 해 놓았다. 도둑은 필시 흉악범일 거라고 말했다.
그 날 밤, 모두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특히 노블 목사는 입을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덫에 잡힌 도둑은 노블 목사가 아끼는 조선인 비서였다. 그는 덫에 걸린 채로 상자를 끌고 달아났지만 피를 많이 흘려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무장한 감시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잡아왔다. 감시인들이 상자를 열고 덫을 풀었을 때 그의 손은 끔찍하게도 이미 반쯤 잘려져 있었다.
출혈이 심한 그는 급히 홀 부인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외과 닥터인 홀 부인은 응급으로 출혈을 막고 그를 정성껏 치료하였다. 한동안 기절하였다가 의식이 돌아오자 그는 큰 소리로 울며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는 손이 잘린 상처의 아픔보다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준 노불 선교사와 부모님을 속인 배은망덕한 사실을 더 가슴 아파하였다. 놀람을 진정시킨 노블 목사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 금광 직원에게 간절하게 부탁하였다.
“저 사람을 관아에 넘기지 말아 주십시오. 훔친 돈은 제가 배상하겠습니다. 제가 그를 책임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노블 목사의 간청으로 금광 직원들은 그를 관아에 넘기지 않기로 하였다. 어린 셔우드도 눈물을 흘리며 아저씨를 붙잡아 가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다. 민속놀이와 영어를 서로 가르쳐 주며 정이 들었나 보다. 그 비서가 손이 나은 후에도 노블 목사는 그를 잘 보살펴 주었고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길 기도하였다.
그즈음 (1902년경), 하와이에서 조선인들에게 설탕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으로 갈 노무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노블 목사는 그가 충분히 마음을 돌이켰지만 얼굴에 항상 그늘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 부부를 하와이로 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여 의사를 물었다.
“목사님, 하와이로 가겠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이렇게 새로운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형제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님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세요!”
노블 목사는 그들 부부를 웃으며 환송하였다.
“아저씨, 잘 가셔요! 언젠가 미국에서 만나면 좋겠어요. 우리가 가르쳐 드린 영어 잘 사용하셔요”
셔우드의 말에 그는 눈물을 흘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셔우드는 비서아저씨가 자기들과 영어 공부한 것이 하와이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노블 목사 비서가 하와이로 떠나간 후 어느 날, 미국에서 반가운 전보가 왔다. 홀부인은 상기된 목소리로 커다랗게 말했다.
“에스더가 온대요! 의과 대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의사가 되어서 조선으로 돌아온대요!”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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