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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0]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0]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11월 25일(수) 12:08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1900년 봄, 에스더 박이 미국에서 의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서양의학을 전공한 조선 최초의 여의사였다. 남편 닥터 홀이 하늘나라로 간 뒤 미국 친정으로 둘째 에디스 마거리트를 출산하러 갔을 때, 에스더는 의학 공부를 하겠다고 함께 미국으로 갔었다. 이화학당의 소녀 제자 에스더가 이렇게 훌륭한 의사가 되어 귀국한 일이 홀 부인은 정말 대견하고 기뻤다.
그러나 에스더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돕겠다고 함께 미국으로 갔던 남편 박유산이 미국에서 폐결핵으로 병사 한 것이다. 박유산은 아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볼티모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며 아내 학비를 보탰다. 그러던 중 폐결핵에 걸렸다. 에스더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현재 존스 홉킨스대학) 졸업반이던 해에 박유산은 이국땅에서 병사하였다.
“당신은 특별한 재능을 받았으니 훌륭한 의사가 되어 홀 부인처럼 우리나라의 어려운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어야 해요. 내가 당신을 돕고 당신 곁에서 힘이 되어 주겠소.”
이렇게 말하며 매일 격려해주던 남편이었다. 이국땅에서 고생만 하고 아내가 의사가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당신의 뜻을 이루어 드릴게요.”
에스더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였고 당당히 의과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병원의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도 있었는데 홀 부인을 도와 고국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최초의 조선인 여의사가 되어 평양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선에 돌아온 에스더는 홀 부인의 의료사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홀 부인과 함께 일한 10개월 동안 3천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였다. 병원 사람들은 그녀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에스더는 홀 부인 집에서 함께 살았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고 셔우드는 에스더를 이모라고 불렀다. 에스더는 매우 감미로운 선율이 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노래도 잘 부르고 가끔 셔우드에게 시를 낭송해 주거나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런 에스더를 셔우드는 아주 좋아하였고 친 이모처럼 따랐다.

닥터 에스더가 귀국하고 병원도 차츰 안정되자 홀 부인은 기도하던 중 낙후된 환경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고생하는 오지에 있는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을 치료해주는 의료선교를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에스더와 상의하였다.
“그런 의미 있고 귀한 일은 선생님 아니면 할 분이 없어요. 환자들은 제가 돌볼 테니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에스더는 사랑이 가득한 격려의 말을 하였다. 홀 부인은 힘을 얻어 병원 일과 셔우드, 어린이 병동까지 잠시 에스더에게 맡기고 간호사와 함께 의료선교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주님, 저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려고 이 일을 계획하시나요? 이번 선교 여행에서 어떤 환자를 만나게 해 주시려는지요?”
선교 여행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노블 목사가 불길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모든 기독교인들을 15일 이내에 다 죽이라”는 비밀 지령이 관청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언더우드 박사가 모펫 목사에게 라틴어로 보낸 것인데 노블 목사가 해주에서 평양으로 가져온 소식이다. 노블 목사는 선교 여행을 반대하였다.
그 전에도 북쪽 지방에 그런 벽보가 붙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홀 부인은 염려되고 망설임도 있었지만 영국 영사로부터 공식적인 시달도 받은 일이 없는데 소문만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조선인 환자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영사는 중국에서 반기독교적인 봉기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이므로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경고해 주었을 텐데 영사관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홀 부인은 고심하며 망설이다가 의료 선교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노블 목사께 송구함과 염려해 준 것에 감사드리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닥터 포웰, 리 목사, 모리스 선교사와 일정을 의논한 뒤 필요한 의약품과 그 밖에 진료할 때 필요한 짐을 꾸리고 말도 준비했다.
“주님, 이 선교 여행을 무사히 잘 다녀오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환자들의 질병에 맞는 약을 주어 그들의 병이 낫게 하시고, 제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홀 부인은 일행과 함께 시골로 떠났다. 그렇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기독교인들 살상을 시작한다는 날짜 이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여정을 이틀 정도 줄였다.
그 날 오후 첫 번째 마을에서 진료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그들을 환대하였고 고마워하며 약품을 받아갔다. 그 다음 날은 다른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마다 여자들이 한 방 가득 차게 모였고 남자들도 더러 있었다.

세 번째 마을에 방문했을 때였다. 사람들이 그 마을에 정신병 환자가 있는데 그 여자를 고쳐 달라고 홀 부인에게 데려왔다. 너무나 처참하고 불쌍한 이 여자는 34살 된 미인 과부로 남편을 잃은 지 3년이 된 두 아이의 엄마였다.
‘하나님이 이 여자를 만나게 하려고 나에게 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교 여행을 시키신 것은 아닐까?’
홀 부인은 여자를 찬찬히 살펴보며 이렇게 심하게 정신병이 생기게 된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은 몇 달 전 이 여인이 평양을 다녀온 후 정신이 돌았다고 하였다. 그 후 여자를 넉 달 동안이나 작은 골방에 가두어 놓았다고 했다.
방은 작고 컴컴하였으며 벽은 도배도 하지 않은 흙벽이었다. 창문이 없어 습하고 불결했고 작은 출입문 하나가 있었다. 가구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조롱박 바가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음식을 갖다 주었나 보다. 먹다 남은 음식이 담겨 있었다. 돼지들의 먹이와 다름없는 불결한 음식물이었다. 방안에서는 돼지우리에서 나는 것 같은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이 여자가 병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무당을 불러 20일 동안이나 떠들썩하게 굿을 하였다고 한다. 무당들은 귀신을 쫓아낸다고 여자를 때리고 몸을 불로 지져서 몸 여러 군데가 상처가 심하게 헐어 있었다. 이렇게 해도 병이 낫지 않아 여자를 골방에 가둔 것이다.
‘아, 주님, 어찌 이럴 수가…….’
홀 부인은 그 가족들을 불러 말하였다.
“멀쩡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비위생적인 어두운 골방에 가두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입니다. 어서 밝은 방으로 이 여인을 옮기도록 하세요.”
이 여인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쩌자고 여자의 성기를 6일 동안 매일 뜨거운 불로 지지고 머리 정수리와 뒤통수까지 불로 지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 같았다.
여자를 진찰하였다. 약물을 투여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시키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홀 부인은 이 여인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법을 생각하였다. 치료하면서 차츰 그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홀 부인은 예전부터 적절한 시설, 장소, 보조 인력이 구비 될 때까지는 정신병 환자들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처참한 상황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저들도 인격을 가진 소중한 생명이 있는 사람들인데…….’
에스더가 의사가 되어 도와주고 에스더의 여동생까지 병원 일을 돕고 있으니 병원의 한 병동만 개조할 수 있다면 불쌍한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다.
“병동을 지을 후원금만 마련할 수 있다면 두 개의 병동을 더 지어, 하나는 전염병 환자 병동으로, 하나는 정신병 환자 병동으로 사용하면 좋을 텐데…….”
홀 부인은 어려운 가운데 이번 선교 여행을 다녀오게 하신 주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마을을 더 들려 예정대로 의료 활동을 한 후 평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땅이 너무 질어서 힘들었다. 11월의 가을비가 내리고 날씨도 점점 추워졌다.

“엄마, 잘 다녀오셨어요?”
셔우드가 병원 마당에서 뛰어와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엄마가 며칠 없었는데도 이 용감한 꼬마는 활기차게 잘 지내고 있었다. 셔우드는 일행보다는 함께 다녀온 조랑말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다. 조랑말 목을 껴안기도 하고 등을 토닥이며 문질러 주기도 하였다. 겁도 없이 호기심 많은 아들을 바라보며 아빠 닥터 홀을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하여 모두들 웃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병원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모처럼 편안한 가을 저녁을 보냈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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