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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23]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23] / 삽화 윤광자 화가

2021년 01월 24일(일) 14:3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어머니가 평양의 병원으로 되돌아가신 후 셔우드는 쓸쓸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의 여러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마침 그 학교는 중국에서 봉사하는 선교사의 자녀들이 많았다. 미국인으로 셔우드보다 네살 아래인 장로교선교사 아들 헨리 루스(Henry Robinson Ruce)도 그 학교에 다녔다. 그는 성인이 된 후에 예일대와 옥스포드대학을 졸업하고 <타임>지를 비롯한 많은 잡지를 발행하여 미국을 빛낸 사람이다. 헨리 루스 또래의 또 한 명의 미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손턴 와일더(Thonton wiven Wilder)이다. 그도 성인이 되어 프리스턴,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위기일발」이라는 희곡으로 퓰리쳐상을 수상하였다.
좋은 학우들도 많았는데 학교의 규율이 너무 엄격해서 셔우드는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모험심이 많아 들판을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한 셔우드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과 규제된 교칙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셔우드는 한 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중단하였다. 아무리 좋은 교육시설이라도 본인이 적응하지 못하면 좋은 교육 효과가 없음을 알고 홀 부인은 셔우드를 평양으로 다시 데리고 왔다. 시간이 허용되는 대로 직접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준비학습을 시켰다. 2년 후 두 번째 안식년 휴가로 미국에 갈 예정인데 그때 셔우드를 메사추세스에 있는 마운트 허몬 학교(Mount Hermon School)에 입학시켜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홀 부인은 셔우드에게 경제적인 자립심을 길러 주기로 하였다. 앞으로 계속 공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러시아 박물학자에게 곤충채집을 해 주는 일거리를 맡았다. 이 일은 매우 흥미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그런데 채집한 곤충표본들이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여름이었다. 우기라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아 셔우드가 보낸 곤충표본들 대부분이 곰팡이가 쓸었다. 운송시간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동안 고생하고 노력한 일들이 허사가 되자 셔우드는 크게 실망하였다. 홀 부인은 셔우드에게 이 일을 거울삼아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돈을 투자할 때는 좀 더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현명하게 처신하도록 타이르고 돈을 많이 번 것만큼이나 좋은 경험을 했다고 위로했다.
어느 날, 홀 부인이 셔우드를 불렀다.
“셔우드, 해외 선교부에서 조선으로 두 의료선교사 가정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대. 그들이 평양에 올 수 있도록 거주할 집을 지으려 하는데 그 감독 일을 한번 해보지 않겠니? 지난번 병원 지을 때 해본 경험도 있으니……”
“글쎄요, 그 어려운 일을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좋은 기술자를 붙여 줄게. 숙소 문제가 결정되지 않으면 그 선교사님들은 다른 지역으로 임명될 수도 있어.”
홀 부인은 병원이 점점 커지자 의료 선교를 함께 할 의사가 더 필요했다. 평양에 오겠다는 선교사들이 숙소가 마련되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될까 봐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어머니, 알겠어요! 제가 해 볼게요. 그 대신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세요!”
선교사들이 거주할 집을 짓는다면 선교사들을 돕는 일이 되고, 어머니의 병원 일을 수월하게 해드리는 일도 되고, 장래 자신의 집을 짓게 될 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아버지 닥터 홀이 돌아가시기 전에 생명보험을 들어 자신에게 남겨준 돈으로 연립주택을 짓기로 하였다. 연립주택은 단독주택보다 경비가 적게 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제일 높은 3층 건물로 설계하였다. 마루용 재목, 문짝, 창살 등의 재목과 철물들은 워싱턴 타고마에서 조립품을 주문해서 쓰기로 하였다. 만들어진 조립품을 가져오면 시간과 돈이 절약될 뿐 아니라 나중에 잘 맞지 않는 불편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건축 시공에 들어갔다. 첫 번째 작업은 지하실을 파는 것이었는데 암석이 많아 사람의 힘으로는 암석을 깨기가 힘들었다. 고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폭파하기로 하였다. 시내 지역이라 조선인 청부업자는 발파작업 허가를 받지 못했는데 셔우드는 외국인이라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철로는 서울에서 평양을 경유하여 만주 경계 부근까지 놓여 있었다. 청부업자들과 납작한 철로용 차를 타고 철로 끝까지 가서 발파작업을 구경하였다. 그곳에서 다이너마이트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퓨즈를 테스트할 때 절대 깨물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암시장에서 다이너마이트는 금값과 맞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셔우드가 사온 다이너마이트를 탐내어서 위험하긴 했지만 침실의 벽장 속에 넣고 열쇠를 잠가 놓았다.
발파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고 불을 붙였는데 터지지 않았다. 셔우드는 땅에 묻힌 화약을 다시 파낼까 하다가 불량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너마이트 하나를 땅속에 더 묻었다. 발파 시 돌이나 파편 들이 사방에 튀는 것을 방지하려고 짚이나 가마니 같은 것들로 단단히 방비했다.
그러나 먼저 묻은 다이너마이트는 불량품이 아니고 연결이 잘못되어 터지지 않았었다. 두 개의 다이너마이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고 발파를 한 것이다. 폭발은 마치 작은 화산이 터지는 것처럼 솟아올랐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크게 놀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관리들이 찾아와 공사할 때 큰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위험한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경고하였다.
“셔우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거라!”
어머니의 걱정과 꾸지람을 달게 받아야 했다. 이 발파작업은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셔우드 자신도 놀라 그 후부터는 사소한 일도 전문가에게 물어서 점검하고 또 점검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일을 진행했다.
3층 연립주택은 어렵고 힘든 6개월의 긴 공사 끝에 1909년 7월, 완공되었다. 이제 숙소 문제가 해결되어 두 분 선교사의 평양 임명이 가능해졌다. 그 연립주택은 평양에서 제일 높은 벽돌 건물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셔우드의 상급학교 진학 학비를 마련하여 유학준비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년 시절 이런 특별한 경험과 체험들은 훗날 해주 결핵요양원을 짓고 환자들의 자립농장을 개척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1909년 5월 28일은 ‘우리들의 의사선생님’이라고 불렸던 박 에스더에게는 아주 기쁘고 특별한 날이었다. 여성교육협회와 여성기업협회에서 공동으로 조선 최초의 문학사였던 하란사(B. A)와 조선 최초의 여의사 에스더 박에게 표창장을 주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거행된 이 식에 참석한 에스더는 금메달을 받았다. 에스더는 기뻐하며 그동안의 고생도 잊어버린 듯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런 기쁨과 영광의 날이 일년 남짓 지났는데 청천벽력같이 에스더에게 아주 충격적인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다. 의사 에스더 박이 폐결핵에 걸린 것이다. 여러 가지 좋은 방법으로 치료를 해보았지만 에스더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안타깝게도 조선에는 폐결핵을 치료할 요양원 같은 곳이 없었다. 홀 부인 로제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13살 소녀인 점동이를 이화학당에서 만나 이렇게 휼륭한 여의사 에스더 박이 되기까지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온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나님, 제게서 남편 홀을 데려가시더니 왜 나의 사랑하는 제자, 동역자인 에스더까지 데려가시려 하십니까?” 로제타는 통곡하고 오열했다. 에스더 박은 조선에 최초의 여의사로 10년간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교사로 신실한 삶을 살다가 1910년 4월 13일 하늘나라로 갔다.
모두들 충격이 컸고 셔우드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늘 다정하게 웃으며 한 식구가 되어 준 에스더 이모가 옆에 있어서 아버지가 안계서도 덜 외로웠다. 그렇게 따뜻하고 착한 의사였던 에스더 이모가 불치의 병에 걸려 사망하다니…….
셔우드는 눈물을 흘리다가 비장한 각오를 하였다. 장래 의사가 되어 이 불치의 병, 결핵을 퇴치하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사랑하는 에스더 이모님, 당신을 이 세상에서 빼앗아 갔고 당신이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이 병의 퇴치를 위해 반드시 폐결핵 전문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오겠어요! 편안하게 하늘나라 가세요!”
셔우드는 눈물을 흘리며 에스더의 장례예배를 드리다가 문득 4년 전,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들려준 설교 말씀이 생각났다.
“여러분, 높은 이상과 고귀한 동기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실천하기 힘듭니다.”

홀 부인은 안식년 휴가가 돌아오자 평양의 병원 일들을 다른 선교사들께 맡기고 셔우드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번 여정은 만주와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육로 여행을 계획하였다. 이번에 가면 셔우드는 미국의 고등학교에 입학하여야 한다.
‘앞으로 혼자 있는 날들이 많을 텐데 얼마나 힘든 일들이 내 앞에 전개될까?’
셔우드는 아무도 모르게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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