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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수가 없는 비애, 하지만 멈출 수는 없어

이선국의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43. 마지막회]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산
최근 고성통일전망타워 개관… 휴전협정 때도 전투 계속 ‘351고지’ 기리는 전투전적비

2020년 04월 23일(목) 11:19 [강원고성신문]

 

↑↑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고성 금강산의 모습.

ⓒ 강원고성신문

반쪽 남고성의 마지막, 멀리 해금강과 구선봉을 바라보고 휴전선 앞에 선 다. 1945년 8월 9일 저녁, 미국의 젊은 장교 딘 러스크에 의해 30분 만에 붉 은 색 연필로 그어진 북위 38도선, 그 후 1953년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으로 다시 남·북한군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한 것이 지금의 휴전선이다.
통일전망대는 남북이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군사적 대치가 심화되어 가던 1984년, 분단의 아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는 한편,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통일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세워졌다. 해마다 100만 명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여름철 피서 기간에는 더욱 많은 탐방객이 붐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28일 통일전망대보다 규모다 크고 현대화된 통일전망타워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고성군이 평화관광의 중심지로 우뚝 서기 위한 발판이 될 ‘고성 통일전망타워’는 현내면 명호리 산 31번지 일원에 총사업비 68억8천만원이 투입돼 지상 3층, 높이 34m, 건축연면적 1,674.93㎡ 규모로 건립됐다. 1층은 카페와 특산물 홍보·판매장, 2층은 통일홍보관, 전망교육실, 라운지, 3층은 전망대와 포토존이 조성됐다. 부대시설로 종탑과 옥외홍보관, 망배단 등이 갖춰졌다.
2014년 8월부터 추진에 들어간 ‘고성 통일전망타워 신축사업’은 접경지역지원특별법 및 한반도 생태평화벨트조성계획에 따라 문체부의 국고를 지원받았으며, 기존 통일전망대는 향후 북한음식점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351고지 전투전적비. 책 243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351고지 전투전적비= 통일전망대의 철조망 넘어 북한의 월비산전망대 곁에 351고지가 있다. 한국 전쟁 당시 351고지 전투가 치열했다고 전사戰史는 전하고 있다. 351고지는 금강산 일대의 지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고지의 선점은 금강산을 확보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계기로 종전이 되었지만 351고지는 여전히 전투가 계속됐다. 야간에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주간에는 미군의 함포 지원 사격에 힘입어 아군이 점령하는 등 주야간 피아간 백병전과 같은 격렬한 전 투가 있었다고 한다.
또 북한 지휘부는 이 고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북한군 장교 수백트럭의 목숨과 바꿀 만큼 안간힘을 다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351고지는 원래 해발 356m였지만 전투 과정에서 폭격으로 5m가 낮아져 지금 351고지가 되었다고도 한다. 통일전망대 광장에는 351고지 전투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고 매년 이곳에서 351고지 전투에서 순직한 장병들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북한 351 고지 맞은편에 우리 금강산전망대가 있다. 일명 717OP라고 부른다. 금강산 전망대는 군부대에서 건립한 전망대로써 이곳을 출입하려면 별도의 군부대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고성 통일전망타워 개관식이 2018년 12월 28일 오후 2시 현내면 명호리 통일전망타워에서 열렸다.

ⓒ 강원고성신문

한편 전망대 주변에는 통일의 염원이 담긴 많은 종교적 상징 시설들이 방 문객들의 관심과 시선을 끈다. 매년 성탄절이면 높이 39m의 전진십자철탑 에서 통일기원 점등식 행사가 개최되고 높이 187m 지름 126㎝ 무게 500관, 타종거리 4㎞인 통일기원 범종, 천주교에서 1986년에 세운 높이 10.5m의 성모마리아상, 설악산 신흥사에서 1988년에 세운 높이 13,6m의 통일기원 미륵불상, 각 도의 특산바위 13개로 우리나라 지도모형으로 세운 민족웅비 석탑,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동해안 최북단 수복을 기념하여 세운 351고지 전투전적비 등도 있다. 전망대 광장엔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퇴역 비행기와 전차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 밖으로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철조망 너머를 관망할 수 있다. 쾌청 한 날,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강산 비로봉과 옥녀봉, 세존봉 등 수많은 봉우리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 일명 낙타봉, 그 앞에 있는 봉래 양사언 선생이 머물렀다는 청초한 석호 감호, 아름다운 해안선과 섬으로 풍경을 이룬 해금강,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송도와 푸른 동해 바다의 눈부신 장관이 눈 끝에 닿아 가슴 저며 온다.

↑↑ 통일전망타워 내부에서 바라보는 북녘땅.

ⓒ 강원고성신문

전망대에선 많은 학생과 탐방객들이 북한 땅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고,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은 고향과 북녘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한숨짓고 발길을 돌리곤 한다.

한 계단씩 밟고 올라서면
눈 끝에 닿아 더욱 슬픈 땅
앞은 구선봉 더 앞은 금강산

더 이상 갈 수 없는 산하
땅이 꺼질 듯 긴 한숨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북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하는 길목

쾌청한 봄날에도
눈가에 뿌연 안개 서려오고
한여름 뙤약볕에도
온몸이 동태처럼 굳어지는 산
언제나 울컥 목이 멘 채
그리움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바다

그 시린 가슴이 칼끝에 찔려
몇날며칠 목 놓아 울어도 시원찮을
슬프고 더 아픈 혹한의 빙벽
- 이선국, <통일전망대 1>

↑↑ 쾌청한 날이면 금강산 비로봉까지 볼 수 있다. 책 249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철조망 너머 보이는 금강산 구선봉=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구선봉과 감호, 금강산만큼 아름다운 바다의 금강 해금강이 융단처럼 펼쳐지고 해당화와 밝은 모래로 유명한 명사십리도 보인다. 구선봉 산정에는 지붕처럼 생긴 큰 너럭바위가 있는데 웅덩이가 움 푹 파여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다. 노송이 곁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옛날 아홉신선이 바둑을 두면서 놀고 갔다는 자리. 구선봉九仙峯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구선봉 마루에서 남쪽을 내려가면 새끼 용龍 모양의 천서함이 있다. 이 천서암은 옛날 선인들이 구선봉 아래 집을 짓고 살면서 서법書法을 익히던 봉래 양사언 선생에게 용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힘 있는 글씨체를 가르쳐 주었다고 전한다.

↑↑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일명 낙타봉)과 그 아래 놓여 있는 봉래 양사언 선생이 머물렀다는 청초한 석호 감호. 책 247 페이지.

ⓒ 강원고성신문

천서암을 따라 내려가면 감호에 이른다. 감호는 이름 그대로 동그란 거울같이 생긴 호수로써 호면이 맑고 푸르며 태고의 침묵 속에 잠겨있는 듯 늘 잔잔하다. 전설에 의하면 감호는 하늘의 선녀가 거울을 떨어뜨린 곳이라고 한다. 감호는 구선봉에서 뻗어 내린 둥근 고리모양의 산발로 이루어진 골짜기 바닷물이 잠겼다가 점차 모래 퇴적으로 의해 생겨 난 바다자리호수라고도 한다. 석호라는 표현이 옳다. 호수의 둘레는 3㎞, 깊이가 2m 정도라고 한다.
조선시대 당대의 명필이자 시인이었던 양사언 선생은 금강산을 가장 사랑 하고 자랑하며 그곳에서 일생을 살고자 했던 금강산 사람이었다. 고향은 아 니었지만 스스로 호를 봉래蓬萊라고 하였고, 구선봉 밑 감호鑑湖가에 정자 비 래정飛來亭을 짓고 풍류를 벗 삼아 은거했다. 그리고 육화암을 비롯해 많은 봉우리의 이름을 지어주고 글씨를 바위에 새겨 놓기도 했다.
1564년으로 추정되는 봉래 양사언 선생의 감호당 사랑의 한시를 통해 옛 모습을 그려본다.

묻노니 그대 어이 이 고장에 집 잡았나
세상에 이름난 곳 여기가 제일 좋아
흰 모래, 푸른 바다, 소나무 숲 사이 길에
일만 송이 고운 연꽃 내 집을 덮었다오.
- 양사언, <감호당>

불국토 금강산= 금강산 전망대에서 외금강까지는 짧게는 16㎞, 길게는 25㎞밖에 되지 않 아 금강산 일출봉, 월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 대, 관음봉 등 대표적인 봉우리를 멀리서나 볼 수 있지만 주봉인 비로봉은 맑은 날에만 보인다. 누군가 금강산을 하나의 불국토佛國土라고 말한다.
우선 금강산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 경전에서 따 왔다고 한다. 그리고 금강산의 봉우리며 계곡이며 곳곳이 불교의 명칭으로 이름이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최고봉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이 상주하는 곳이고, 용화산, 미륵봉은 미륵이 성도할 곳이라고 한다. 문수봉은 문수보살이, 보현봉은 보현보살이, 세지봉은 대세지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한다. 외금강에는 관음봉, 세존봉, 세지봉이 있고, 내금강에는 법기봉, 석가봉, 지장봉, 시왕봉이 있다. 산중 곳곳에 중향성, 불정대, 명경대, 마하연, 천불동, 금강문, 극락문, 지옥문 등의 명소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발길 닿은 곳이 길이 된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오롯이 길이 되고 마음을 따라가면 온전히 삶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수레다. 그러나 여기서 발걸음을 멈춰야 한다. 폭우가 오는 것도, 폭설이 내리는 것도,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더 이상 갈 수 없다. 마냥 가슴저며오는 고통을 쓸어내리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한다. 흰 구름과 바람은 무심히 오가는데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비애를 참기 어렵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금강산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끊임 없이 찾아 갈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해마다 아물지 않은 상처 틈바귀에서도 변함없이 민들레꽃이 핀다. 금강산 길섶에 수줍은 듯 함초롬히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고 싶다.

필자 이선국 약력

-1957년 고성 출생
-고성고, 방송대 법학과 졸업
-2012년 수필가 등단
-고성군청 공무원 생활 40년
-전 고성문학회 회장(현 고문)
-현재 ‘물소리 시낭송회’ 회장
-저서 <지명유래지>, <고성지방의 옛날이야기>, <길에서 금강산을 만나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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