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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4]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4]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5월 26일(화) 10:13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로제타는 한강에서 작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한강에 닿기 전에 모래밭을 지났는데 모래가 많아 마치 사막을 가는 거 같았다. 성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길고 높은 성벽을 보았는데 이 성벽은 1396년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20Km, 높이는 6에서 12m까지인데 어떤 부분은 도시 밖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인 곳도 있었다.
서대문이라 불리는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여성 해외선교회 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지대가 높아 도시의 전경과 둘레의 산들이 잘 보였다. 이 지대에 학교, 병원, 닥터 스크랜턴댁, 아펜젤러 올링거 목사 댁이 한쪽에 있고 로제타가 기거할 집과 여선교회의 학교(이화학당)가 있었다. 목사님들의 집과 소년들의 학교(배재학당)는 벽돌로 지은 미국식 건물이고 그 밖의 건물은 모두 단층 기와지붕인 조선식 건물이었다.
로제타는 본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집에 숙소를 정했다. 햇빛이 잘 드는 남쪽의 방에 짐을 풀어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방에는 침대와 세면대가 있었는데 조선 돈을 넣어 두는 구리로 장식된 큰 궤가 있었다. 먼저 살던 사람들이 두고 간 것 같다. 얼마나 돈이 많았기에 저렇게 큰 금고에다 돈을 넣을까 신기했다. 그러나 조선은 금화 1달러어치에 해당하는 돈이 25센트만 한 크기의 엽전 1천 개 정도 되었으므로 적은 액수의 돈을 보관하려 해도 큰 함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사람들을 돈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줄을 꿰어 등에 메고 다니든지 액수가 많으면 지게에 지거나 말 등에 지우고 다녔다.
로제타가 서울에 도착한 때는 1890년 10월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곧 병원 일을 시작했다. 여성 해외선교회 병원을 돌아보는 로제타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설이 훌륭하네!”
병원은 구조를 고친 조선집이었지만 진찰실, 환자 대기실 약국, 입원환자들을 위한 방도 5개나 있었고 약품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선교회 병원의 최초의 여의사 닥터 하워드가 병을 얻어 귀국한 뒤 닥터 스크랜턴은 여의사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여성 전용 병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다. 로제타가 두 번째 여의사로 이 병원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이 작은 병원을 보구여관保救女館(여성들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집, 사진)이라 불렀다.
“아! 주님, 감사합니다.” 로제타 입에서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로제타는 남아 있는 돈을 다 털어 부족한 의약품을 주문했다. 병원의 감독 겸 간호사인 봉선이 엄마(사라)의 도움으로 진료를 시작한 첫날은 4명, 다음 날은 9명을 진료했다. 그 후 석 달 동안 549명의 환자가 와서 진료를 받았다. 눈병, 귓병, 기생충이나 회충, 매독, 연주창(경부 림프에 생기는 결핵) 등이 가장 많았다. 8명의 환자를 보는데 무려 21가지 전문적인 병을 치료해야 했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진료를 하였다. 3년 동안 무려 14,000가지나 되는 병을 진료하였다.
이렇게 많은 환자를 진료하게 되자 서양 의사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고 대부분의 조선인이 호의적이었다. 동양 의술로 할 수 없는 수술 환자들을 치료해서 완치시켰기 때문이다.
‘의사가 한 명 더 파견되어 오면 더 많은 환자를 고쳐줄 수 있을 텐데…’
로제타의 마음은 찾아오는 환자들을 시간에 쫓겨 더 자상하게 돌보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 진료소에 오는 환자들은 “많이 고맙소”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상류층의 여성들은 가끔 가마를 타고 오거나 가마를 보내와 집으로 왕진을 청하기도 한다. 한 번은 민 씨라는 집에 왕진을 하러 갔는데 그 집은 조선식의 아주 큰 건물로 궁궐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아 훌륭한 가문의 한 집인 것 같다. 그 집에서 무려 여섯 사람의 환자를 진료했다. 마치 작은 이동 진료소를 차린 것 같았다.

어느 날, 열여섯 살 난 소녀를 가마에 태우고 그녀의 오빠가 병원을 찾아왔다.
“동생이 오래전에 화상을 입어 손가락 세 개가 손바닥에 붙어 있어요. 선생님 고칠 수 있을까요?”
소녀를 데리고 온 오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둡게 말했다. 조선에서는 여자가 16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 하면 집안의 큰 흉이 되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가족들은 손 때문에 시집을 못 간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로제타는 그 소녀를 입원시켜서 수술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손에 흉터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피부 이식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데 피부가 부족했다.
로제타는 깊은 생각 끝에 자신의 몸에서 피부를 떼어 내어 수술하기로 했다. 그러나 로제타의 피부만으로 환자의 흉터를 다 가릴 수는 업었다. 통역을 통해 피부 이식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환자의 가족들과 주변의 사람들까지 나서서 자신들의 피부를 제공했다. 모두 30개의 피부 이식 수술을 했는데 그중 6개 이식한 피부가 성공하여 흉터가 거의 가려졌고 상처가 다 아물었다.
그 소녀는 크리스마스 전날 밝은 얼굴로 퇴원을 하였고 가족들도 기뻐하였다.
“이제 손도 예뻐졌으니 좋은 남편한테 시집가서 잘 살길 바래요!”
로제타는 웃으며 소녀를 배웅하였다.
서양인 처녀 의사가 조선 소녀를 위하여 자신의 피부를 떼어 주었다는 소문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구한말 조선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기 되었다.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거의 돈을 받지 않았다.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여자들은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고 대부분 굿이나 미신적인 방법에 의존하였다. 보구 여관은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실로 진맥을 받던 여성들이, 근대의학의 혜택을 누리게 되고 조선 여성들의 건강과 자기의식을 높여 주는 빛 같은 역할을 하였다.
비가 오는 날 캄캄한 밤중에 난산으로 생명이 위독한 여인을 찾아가 아기와 산모를 구하는 등 로제타의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보고 사람들은 그녀를 높이 칭찬했다.
하지만 그녀는 칭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미력한 자신이 이렇게 조선의 여성 환자들을 위해 의료봉사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병원 옆에 있는 여학교(이화학당)에는 7세부터 17세까지 26명의 소녀가 있었다. 교과 과목으로 한문, 조선어 읽기, 쓰기, 작문, 지리, 산수, 성경, 영어와 미용체조도 가르쳤다. 저학년은 조선어로 가르쳤고 고학년은 영어로 가르쳤다.
로제타는 총명한 두 소녀에게 진료실에서 자신을 도울 수 있도록 가르쳤다. 열세 살 된 이 소녀들은 3년 동안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인데 한 소녀는 조선인이고 다른 소녀는 부모가 서울에 사는 일본 소녀이다.
조선 소녀 이름은 ‘점동’이인데 영어를 잘해 좋은 통역사였고, 일본 소녀의 이름을 ‘오와끼’이며 약제사 일을 좋아해서 꼬마약제사라 불렀다. 점동이는 가마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오와끼는 일본인이라 대낮에도 거리를 다닐 수 있어 심부름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두 소녀는 로제타의 진료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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