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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43]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20년 07월 31일(금) 08:5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소리 소문도 없이 느릅나무 꽃이 피었다 이우는 사이 숲 바닥에는 애기나리 흰 꽃이 떼판으로 피었다. 인간의 손을 덜 탄 두릅나무는 가까스로 잎을 피웠고, 고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잔대와 삽주를 캐는 동안 삼지구엽초 꽃은 벌써 지고 있었으며 검은 융단 같은 요강나물은 마디게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두릅을 데쳐 먹었고 고사리도 삶아 말렸으니 봄은 봄일 것이었으나 여태도 언 땅 언저리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삼월에는 더워서 헉헉 땀을 닦느라고 바빠났고, 못자리 모들도 웃자라서 미처 논을 만들기도 전에 모내기를 하느라고 농부들은 드바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마당에 내놓았던 옥수수 모종이 죄다 얼어서 다시 파종해야 했다. 봄가물이 길게 이어질 듯하더니만 한여름 장맛비처럼 며칠씩 비가 내렸다. 꽃이 피는 때도, 여름새들이 오는 때도 모두 다 빨라졌다. 대체로 음력 삼월 삼짇날 온다던 제비마저 이르게 나타나 둥지를 짓기에 이르렀다.
저물 무렵이면 발밤발밤 숲정이로 스며들어 꽃들과 인사를 나눴다. 봉오리인 채로 오래도록 애를 태웠던 요강나물의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사이 쥐오줌풀과 백선 또한 꽃을 피웠다. 요강나물이 꽃을 피웠다고 해서 꽃술까지 들여다보이도록 활짝 핀 것은 또 아니어서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한껏 비틀고서야 종 모양의 꽃을 볼 수 있었다. 검회색인 듯 아닌 듯 흑갈색인 듯 아닌 듯 꽃봉오리 빛깔을 정명할 수 없어서, 그래서라도 또 다른 색을 꿈꿀 수 있었으므로 며칠을 숲 기스락으로 요강나물 꽃을 보러 다녔으나 끝내 꽃을 알 수는 없었다.
쥐오줌풀이 희미해지고 백선 꽃이 밝아지는 동안 찔레꽃과 아까시 꽃이 한꺼번에 피어서 아니 그 가운데 붉은 빛깔의 해당화가 피어서 고개를 들고 보니 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뚝뚝 떨어져 내리면서 잎으로 바뀌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한자로 오동(梧桐)이라고 쓰는데 오동나무 오(梧)에 오동나무 동(桐)자이다. 그러니까 그냥 오동나무인데, 오동나무는 참오동나무도 있고, 벽오동나무(碧梧桐나무)도 있으나 이 둘은 또 각기 다른 나무이다. 달리 말하면 두 나무는 과가 달랐다.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동나무는 참오동나무로 꽃이 먼저 피고, 꽃잎이 지는 동안 이파리가 자라는데, 향도 퍽 진해서 벌떼를 불러모았다.
때와 철에 대한 어머니의 감각과 내 감각은 서로 달라 천마 철을 두고서도 매번 의견이 분분했다. 아까시 꽃이 피어야 천마를 만날 수 있다는 내 주장과 달리 어머니는 벚나무 열매인 버찌가 익어야만 천마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승자를 따질 일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머니보다는 내가 숲정이를 기웃거리는 일이 더 잦았으므로 궂은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달력만 아니라면 한여름 장맛비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 비는 며칠을 이어서 내렸고, 빗줄기도 거세찼다. 그 사이에도 아까시 꽃은 산과 들을 희푸르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뒤늦게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이웃마을 할머니께서 감자 몇 알을 나눠 주신 덕분이었다. 겨우내 부엌에 매달려 있던 감자 몇 알이 싹이 돋았고, 버리려고 나갔다가 싹이 자란 채로 쪼개서 심은 뒤였다. 그저 감자꽃이 피는지 궁금했다는 게 맞을 것이었지만, 이 얘기를 들으신 노인께서 당신이 보관하고 있던 감자를 내주셨고, 집에 돌아온 뒤 고랑을 만들고서는 감자 씨앗을 묻었다. 아무런 거름을 하지 않은 채였다. 지난해 고추 농사를 지었던 곳이었고, 평소 비료와 제초제가 지나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물을 심는 일보다는 나무를 심는 일에 관심이 컸고, 아버지가 가꾸던 산에 듬성드뭇 어린 나무들을 심었으나 또 지며리 돌보지는 않아서 어떤 나무는 말라죽고 어떤 나무는 칡덩굴을 뒤집어썼다. 나무를 심기는 해도 숲이 제 뜻대로 물오리나무도 키우고 싸리나무도 키우고 있었던 터라 또 굳이 이 나무들을 제겨내지만, 또 한편으로 끝까지 가꾸지 않을 것이라면 그대로, 숲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둘까 하는 생각이 장마철 날씨만큼 변덕스럽게 오갔다.
그러면서 흔했으므로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영산홍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던 것은 서정주의 시인의 시 때문이기도 했지만, 철쭉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철쭉을 함박꽃이라고 부르는데, 함박꽃이라고 하면 도시에 사는 지인들은 산목련이라고도 하고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도 하는 함박꽃나무의 꽃을 이르는 줄 안다. 이 함박꽃나무는 북한의 국화로 알려졌으며 일본목련이라고 불리는 후박나무와 함께 목련과로 철쭉과는 전혀 다른 나무이다.
오래도록 철쭉과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철쭉과는 없고, 철쭉도 진달랫과였으며 영산홍 또한 진달랫과였다. 도롯가나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영산홍인데, 이 영산홍은 일본 원산이라고 알려졌다. 그리하여 말말이 ‘나뭇집 아들’임을 내세우는 한 선배님께 영산홍과 철쭉은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여쭈었다. 그리하여 이야기가 길어졌다.
시인 서정주의 ‘영산홍 이야기’에 따르면 시인의 시 ‘영산홍’은 영산홍을 보고 쓴 시가 아니라, ‘붉은 산단꽃’을 보고 쓴 시라고 고백한다. 산단은 ‘하늘나리’의 다른 이름인데, 어떻게 영산홍과 하늘나리를 헷갈릴 수 있는지 그것이 더 의아한 나로서는 어찌되었든 선배님께 ‘고려 영산홍’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 선배님은 시인의 ‘영산홍 이야기’에 나오는 ‘안양 옆 군포의 고려농원’집 아드님이다. 선배님의 선대인께서는 영산홍 삽목(꺾꽂이)을 위해 구례 화엄사와 순천 송광사 등에서 지내기도 하셨다고. 그런데 영산홍을 삽목하면 자산홍이 나오는데 그 까닭을 모르겠다고.
영산홍은 왜철쭉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전기 때 문신으로 시. 서. 화에 능했으며 용비어천가를 주석한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을 보면 세종 임금 때 일본에서 공물로 바친 일본 철쭉과 우리 철쭉을 비교하는 대목이 있으니 이미 오래 전에 일본 철쭉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자로 척촉이라고 쓰는 철쭉은 그대로 해석하면 머뭇거리는 꽃이라는 데 꽃이 머뭇거리며 피는 것인지, 구경하는 이가 머뭇거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영산홍은 일본어로 고월(皐月. サツキ(사츠끼))이라고 부른다는데, 음력 오월에 꽃이 피는 까닭에 그리 부른다는 무심한 이름과는 달리 영산홍은 수많은 교배종을 낳아서 지금 우리들이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시인 서정주는 영산홍을 일러 ‘느끼하다’라고 했는데, 내겐 느끼함보다는 그 분홍 빛깔이 너무 엷고 부려해서 외려 멀미가 났다. 그래서였을까. 선배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골짜기 ‘산방’에 줄지어 심어 놓은 영산홍의 정수리를 아주 낮게 잘라 버렸다.
귀룽나무 꽃이 지고 열매가 푸르스름해지는 동안에도 코로나19는 맹위를 떨쳐 문밖출입이 여의치 못했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마을버스에서도 눈총을 맞았다. 『농경의 배신』을 쓴 제임스 c. 스콧에 따르면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과밀화된 인구 집단이 전염병을 불러들인다고 봤다. 코로나19 또한 밀집하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집거(集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흩어져 사는 것을 별스럽게 여기던 관행에 쐐기를 박는 것이 다름 아닌 인수공통전염병이었다. 더 센 전염병이 올 것이라는 경고는 그래서라도 흘려들을 수 없었다.
비 그치고 숲으로 달려갔더니 천마는 싹이 돋았으며 어느 것은 벌써 꽃을 피웠다. 버찌는 아직 영글지 않았다. 천마를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천마가 돋던 자리엔 멧돼지가 칡을 캐먹느라고 그랬는지 군데군데 움푹움푹 파인 구덩이가 보였다. 그곳은 모두 천마가 무드기 나던 곳이었다. 철책에 막혀 큰 산으로 들어가지 못한 멧돼지들은 민가 가까운 산 기스락에 덮쳐들어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멧돼지들은 언제 다시 큰 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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