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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7]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7]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8월 04일(화) 03:1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닥터 홀은 평양에 병원을 세우는 준비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서울로 향했다. 놀랍게도 길에서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은 이미 목숨이 끊어져 있었고 죽은 사람 옆에 상처가 심한 사람이 신음 소리를 내고 누워 있었다.
강도를 만나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그냥 두면 상처가 심해서 살아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처음에 닥터 홀은 남의 일에 휘말리지 말고 지나가자는 강한 유혹이 들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생각을 돌이켰다. 문득 성경에 나오는 길에서 강도 만난 자를 대하던 제사장과 사마리아인이 생각났다.
그는 우선 부상자를 응급치료한 다음, 짐을 실었던 나귀에 그를 태우고 지난밤 잠을 잤던 여관으로 되돌아갔다.
여관 주인은 강도를 만나 부상당한 사람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없었고 오히려 그를 데리고 온 닥터 홀에게 화를 냈다.
“왜 그런 사람을 데리고 왔소. 저 사람을 우리 여관에 재울 수 없어요.”
닥터 홀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주고 여관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설득하자 그를 바라보던 여관 주인은 마지못해 다친 사람이 묵을 방을 내놓았다.
“내가 서울 갔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돈을 좀 더 드리겠으니 이 사람이 나아서 혼자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돌봐 주시오. 평양 가는 길에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꼭 확인하겠소.”
홀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여관 주인에게 주었으므로 이제 하루 한 끼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먼 길을 걷느라 지쳐서 길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더라도 빼앗길 것도 없으니 잘 되었다고 좋은 쪽으로 위로하며 어서 서울까지 잘 도착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천사가 나타났다. 얼마 전부터 안면이 있던 일본인 의사가 이 길을 지나가다가 홀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었다. 북쪽 지방을 탐사하던 일본인 의사는 원래 샛길을 통해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여행 일정을 변경하여 닥터 홀이 가던 길로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초췌한 모습의 닥터 홀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일본 의사는 식사비와 서울까지 갈 경비까지 보태 주었다.
닥터 홀은 식사를 하고 원기를 회복하여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당신이 오지 않아서 혹시 길에서 사고를 당한 건 아닌가 하고 많이 걱정했어요.”
남편이 일정대로 도착하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로제타는 남편이 도착하자 한시름을 놓았다. 남편은 노상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주다가 길에서 쓰러져 하마터면 당신을 못 볼 뻔했다며 75Km를 걸어서 사경을 헤매고 왔으니 나는 좋은 신랑이 아니냐고 로제타를 안으며 농담하듯 유쾌하게 말했다. 그는 역시 담력이 큰 의사였다.
그와 함께 선교 개척 여행을 한 노불 목사는 훗날 다음과 같은 회고담을 기록하였다.
“조선에서의 여행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선교사의 진정한 모습을 시험하는 것 같은 이상한 고통과 시련들이 많다. 그러나 닥터 홀은 편안한 기차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이 그런 어려움을 즐겁게 대처해 나간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자세가 되어 있었다. 한 번은 평양에서 외국인에게 증오심을 가진 군중들이 일어났다. 조선인들의 적개심이 어떤 방향으로 터져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블 목사는 닥터 홀에게 이 상황의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신혼인데도 며칠 지나서 닥터 홀은 다시 평양으로 돌아갔다. 평양에 병원과 숙소를 구입하였다며 다음에 와서 아내 로제타를 데리고 평양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로제타의 후임 여의사로 닥터 커틀러가 다음 주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닥터 홀은 하루 오륙십 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병원이 이렇게 커지고 수월하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평양 감사의 덕택이다. 서양인들을 귀신이라며 의사일지라도 쫓아내라고 선동하는 주민들에게 평양 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닥터 홀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요. 서울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소. 그리고 이 외국인은 국왕으로부터 북쪽의 내륙지방을 여행해도 좋고 의술을 행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소. 누구든지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면 관청으로 잡혀 갈 것이요.”
이렇게 말한 평양 감사 덕분에 주민들의 외국인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조금씩 없어지고 난동도 무마되어 닥터 홀은 마음 놓고 병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결혼한 지 어느새 9개월이 지났다. 로제타는 신혼인데도 두세 달 만에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위험한 먼 길을 걸어 서울에 오는 남편이 늘 걱정되어 어서 평양으로 임지가 정해져 안정된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함께 환자들을 돌보고 싶었다.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로제타도 남편이 없는 서울에서 열심히 일했다. 여성 해외 선교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 이외에 동대문 시료소(시에서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화요일과 금요일에 의료봉사를 하였고 학교에서는 생리학과 약물학 강의를 하였다.

김점동은 병원 일을 돕기 위해 특별히 뽑힌 학생이었다. 수술 보조는 싫어해서 약을 짓고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로제타는 태어날 때부터 언청이인 한 여인을 수술하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술이 갈라진 흉한 얼굴이라 시집도 못 간 여인이 수술로 고침을 받아 새 희망을 갖게 된 모습을 보며 점동이는 크게 감동을 받았고 그녀에게 변화가 왔다.
‘아, 나도 장래 의사가 되어야지. 선생님처럼 사람들의 병든 몸을 고쳐주어 기쁨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어…….’
점동이는 영적인 면에서도 성숙이 빨랐다. 선교사님들은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고 ‘누구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에게 자기 이름을 갖게 해 주었다. 점동이는 열다섯 살에 세례를 받았다. 김점동의 세례명은 에스더였다. 로제타는 에스더가 원한다면 평양으로 갈 때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에스더를 위하는 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로제타는 에스더에게 조심스레 혹시 이다음에 우리와 같이 평양에 가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에스더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새 길을 열어 주신다면 어느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평양에 길을 열어주신다면 그리고 갈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로제타는 어린 에스더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평양에 가는 길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남쪽 지방에서 동학란이 일어난 것이다. 동학이라는 종교를 가진 농민들이 임금께 외국인들을 조선에서 추방하라고 청원했다. 그러나 임금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4만 명의 군대들을 몰고 서울로 와서 외국인들을 죽이겠다고 하였다. 동학군이 서울로 진격해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외국인들은 조바심을 냈고 일본인들이 더욱 심했다.
한동안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뜸해졌다. 병원이긴 해도 외국인이 치료하는 병원을 드나들면 자신들도 살해당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이 지나자 경비를 서던 군인들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환자들도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그런데 평양에서도 외국인을 배척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외국인들이 부동산을 샀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감사에게 부동산 환원을 요청했다. 감사는 병원으로 사용하는 일로 집을 구입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주민들이 소요하자 다시 환원하라고 하였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며 닥터 홀은 아내가 평양으로 오는 것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당분간 연기하자고 하였다. 로제타는 슬펐다.
‘우리는 조선인들의 병을 고쳐 주고 싶어 왔는데 왜 이렇게 험한 장벽이 많을까?’
또 혼자 지낼 일로 낙심했지만 평양으로 떠나는 닥터 홀을 웃는 얼굴로 배웅하였다.
“주님, 남편과 함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소서!”
로제타는 멀어져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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