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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8]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8]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8월 04일(화) 03:29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1893년 여름, 포스터감독이 주관한 연례회의에서 닥터 월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아내 닥터 로제타 셔우드 홀은 평양 개척의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었다.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져 홀 내외는 몹시 기뻤다.
평양으로 갈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 되었다. 평양 개척에 대한 보고서를 낸 후 선교 기지용 건물과 가옥을 사려고 서울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이 때 가장 먼저 용기를 준 사람들은 어린 선교사들의 자녀였다. 닥터 홀이 평양에 병원과 선교센터를 마련할 집이 필요로 하다는 상황을 설명할 때 부모와 함께 온 한 어린이가 일어서서 말했다.
“그런 좋은 일이 라면 하나님께 병원과 선교하는 집을 사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저에게 용돈을 모아 둔 은화 1달러가 있어요. 평양에 집을 사는데 헌금하겠어요.”
버티 올링거 양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꼬마들도 마음을 모아 1달러 60센트가 금방 모였다. 이 작은 헌금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선물하여 그 후 모금액이 1480달러가 되었다. 처음으로 평양에 병원과 진료소를 갖게 된 것은 이렇게 어린 심령들의 순수한 마음과 기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닥터 홀은 이 어린이들의 기도와 성원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병원을 구입하는 문제가 해결되자 닥터 홀을 도울 간호사가 필요했다. 에스더는 평양으로 함께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혼기 찬 아가씨를 생소한 지역에 혼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마침 닥터 홀이 데리고 있는 사람 중에서 박유산이라는 성실한 총각이 있었다. 박유산은 아버지가 교사를 하다가 5년 전 돌아가셔서 총각으로 가장이 되어 밤낮으로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로제타는 믿음이 진실하고 성실한 박유산을 에스더의 남편감으로 소개해 주고 싶었다. 박유산을 신랑감으로 소개했을 때 에스더와 그녀의 어머니와 가난하고 지체가 높지 않은 집안에 시집보내려 하느냐며 원망을 해도 그녀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여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에 자기 집안 보다 더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 에스더에게 편지로 그의 생각을 알아봐야겠어.’
로제타는 조심스럽게 박유산을 신랑감으로 추천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에스더는 이 결혼 문제에 대해 참으로 훌륭한 답신을 보내왔다.
“선생님,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기뻤어요. 사흘 동안 저는 뜬눈으로 고민했어요. 제 심정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바느질도 잘 못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습은 나이가 차면 누구든지 결혼해야 하지요. 그와 결혼하는 것을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신앙이 있는 그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저는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지체가 높고 낮음을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성실한 사람이면 됩니다. 선생님, 막상 제가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 참 묘한 생각이 듭니다.”
‘아! 사랑하는 에스더, 그녀는 날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배우게 하는구나……’

당시 조선의 관습은 여자들은 열네 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해야 했다. 처녀들은 머리를 길게 땋아서 등으로 늘어뜨리고, 결혼을 하면 머리를 뒤쪽으로 묶어 비녀로 쪽을 지기 때문에 미혼자와 기혼자는 쉽게 구별된다. 조선에서는 무당이나 병에 걸린 사람만 미혼으로 남는다고 한다.
에스더의 집안은 전도되어 기독교 가정이었으나 에스더가 나이가 많아지자 부모들은 믿지 않는 남자에게라도 시집을 보내려 했다. 이런 형편일 때 박유산이 신랑감 후보로 뽑혔다. 박유산은 닥터 홀에게 전도되어 기독교 신자가 된 청년이다.
박유산과 에스더는 1893년 5월 24일 기독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 가을, 닥터 홀은 또 하나의 큰 기쁜 일이 생겼다. 아내 로제타가 임신을 하였다. 항상 어린아이들을 사랑했던 홀이다.
‘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저를 아버지가 되게 해주시려는 군요. 태중의 아기와 아내를 건강하게 지켜주십시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로제타를 안고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홀 부부의 아기는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기 이름을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라고 지었다. 닥터 홀은 가슴이 벅찼다. 아기가 태어난 날은 닥터 홀 아버지의 여든아홉 번째 생일날이었다. 셔우드 홀은 할아버지와 같은 날 태어난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닥터 홀은 제일 먼저 서울에 있는 영국 공사관에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서의 사본 한 장은 영국 런던의 등록 사무소에 보냈다. 혹시 원본이 없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취한 조치였는데 역시 서울의 원본은 후에 없어졌다.
닥터 홀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기 침대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시장에 들렀다. 갈대로 엮어 만든 상자 비슷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조선 사람들이 ‘고리’라고 부르는 가방 같은 물건이다. 손잡이도 있고 어깨에 멜 수 있는 가죽끈(멜빵)도 붙어있었다. 사방의 벽이 꽤나 높아 아기침대로 고쳐서 쓰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가볍기 때문에 나중에 평양으로 이사할 때 아기를 넣어 가기에도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셔우드가 태어 난지 3주가 되자 홀은 다시 평양으로 떠나야 했다. 아직 회복하지 못한 산모인 아내와 사랑하는 아기를 두고 떠나는 일은 전보다 훨씬 가슴 아팠다.
그러나 평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아 홀은 평양으로 가야만 했다. 예전 아들의 병을 고쳐 주어 닥터 홀에게 호의 적이던 감사는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운 평양 감사가 부임했는데 그는 주민들과 합세하여 외국인을 쫓아내려 하였다.
닥터 홀이 ‘아름다운 잔디의 도시’라고 불리는 평양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조선인들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나에게 돌팔매질을 하려고 다가오는 것일까?’
홀은 불안하였다. 돌팔매질을 잘하는 평양 사람들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좀 더 가까워지자 손 흔드는 것이 반가움의 표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마중 나온 사람들이었고 닥터 홀이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된 일을 축하하고 기뻐하였다.
“아들입니까?”
이것이 그들의 첫 질문이었다. 닥터 홀은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당신은 정말 복을 받았소. 이제는 당신 부부의 제사를 지내 줄 아들이 있으니 말이오.”
닥터 홀은 관습은 다르지만, 진정으로 셔우드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그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선교처로 구입한 집으로 갔다. 외국인에게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다고 하여 전도한 오 씨의 이름으로 구입한 집이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평양 감사의 심한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이 집을 여러 달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매입한 집은 전에 기생들의 교육장(권번)으로 사용한 집이었다.
이미 돈을 지불하고 매입한 집인데 아직까지도 그 집을 기생들의 집으로 쓰고 있었다. ‘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장벽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까요? 주님, 도와주십시오.’
닥터 홀은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달래며 두 손을 모았다. <다음 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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