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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0]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0]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8월 04일(화) 03:38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태풍은 점점 격렬하게 몰아쳤다. 배를 근방에 있는 작은 섬으로 간신히 정박시켰다. 로제타는 평양에서의 의료 선교가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나 얼른 걱정스러운 마음을 지웠다.
섬에서 이틀 정도 피신해 있다가 태풍이 잦아들자 다시 항해를 하였다. 배는 대동강 입구에 들어왔고 평양에서 40Km 거리에 있는 보산이라는 곳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여기까지가 기선이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닥터 홀은 로제타에게 1866년, 이 강에서 불에 타서 마지막 운명을 맞았던 상선 ‘제너럴셔어만’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홍수와 조수로 강 수위가 높았는데 선장은 강심이 깊은 줄 착각하고 보산을 지나 상류까지 올라가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미국 배의 함몰 작전계획을 세운 그 조선인은 후에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홀 가족은 나룻배로 갈아타고 강변으로 갔다. 평양의 교인들이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홀 부인과 아기 셔우드 주위에 모여들었다. 백인 여자와 백인 아기를 처음 보는 현 주민들은 호기심이 가득하였다. 닥터 홀은 오늘은 집에 가서 짐 정리를 해야 하니 내일 집으로 오면 아기를 보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내일 아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오면 못 볼 것 같으니 오늘 더 보게 해 주세요!” 사람들은 졸라대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홀은 10명씩 한 조가 되어 아기를 5분씩 보여 주면 모두가 공평하게 아기를 구경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방 하나는 아기 침대와 아기 양육에 필요한 물건들을 배치하고 다른 방엔 두 부부가 사용할 이동식 접는 침대와 테이블 의자를 놓았다. 큰 부엌에는 요리용 스토브와 병원 일을 도와줄 사람들이 먹을 밥 짓는 커다란 솥 두 개도 마련했다.
로제타는 짐을 다 정리하지 않았는데도 전부터 사용하던 집에 들어온 듯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밤에 스크랜턴 여사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나의 어머니 같은 스크랜턴 여사님, 당신은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쁜지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남편이 일하고 싶어 하던 평양에 도착하여 그와 살 집을 꾸몄답니다. 남편 옆에서 지극히 만족스러운 심정으로 이 편지의 첫머리에 ‘평양’이라는 글자를 씁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지나자 약속한 대로 구경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로제타는 평양에 도착한 다음날 최초의 서양 아기와 서양 여인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처음에는 열 사람씩 한 조가 되어 3조까지는 질서 있게 구경하고 나갔다. 마당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 있게 구경했다. 그러나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은 서로 먼저 보겠다고 사람들을 밀치며 들어왔다. 순식간에 두 개의 방이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서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었다. 이 많은 사람을 방에서 나가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내가 셔우드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 군중들이 거기에서 우리를 구경 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기 셔우드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가득 찬 사람들은 네 번씩 교대하며 나와 셔우드를 구경했다.
아마 1,500여 명의 부인과 아이들이 우리를 구경했을 것이다. 이 많은 구경 인파에게는 담이나 대문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귀엽다고 하면서도 코가 높다고 했고 아기 눈이 파랗다고 고양이나 강아지 같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되도록 사람들이 몰려오자 닥터 홀은 도움을 받으려고 평양 감사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그는 관청으로 가던 중 감사가 보낸 전령을 만났다. 전령은 닥터 홀에게 여권과 증명서를 보자고 하였다. 감사는 닥터 홀의 면회 요청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부하 관리로 하여금 홀을 대면하게 하였다. 그 관리는 닥터 홀이 사는 집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그 집은 조선인 유 씨가 산 것이며 유 씨는 우리가 평양에 있는 동안 그 짐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소. 여관은 너무 좁아서 환자들을 치료하기 불편해서 이용할 수 없습니다.”
“부인은 이곳에 왜 왔소?”
“아내도 의사인데 부인들과 어린아이들을 치료해 주러 왔습니다. 아내는 어려운 수술도 잘합니다. 얼마 동안 이곳에서 평양 사람들 치료를 해 주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관리들은 ‘홀의 아내를 이곳에 머물게 한다면 외국인 부부가 서서히 평양에 들어와 살게 될 것이고 평양은 외국인들이 거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수군거렸다. 부하 관리는 감사가 내일 아침에 닥터 홀을 만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닥터 홀은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이 어두웠지만 저녁기도를 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2시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기독교 신자들이 찾아와 다급하게 말했다.
“급한 일이라 밤중에 왔습니다. 김창식과 한 씨가 감옥에 잡혀갔습니다!”
김창식은 닥터 홀이 서울에 가서 없을 때도 이곳에 혼자 남아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한 씨도 모펫 목사가 출타 중일 때 학생들에게 설교하였는데 그도 붙잡혀 갔다는 것이다. 새벽 1시에 어떤 사람이 창문을 두드리며 닥터 홀이 보낸 사람이니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해서 문을 열어주자 이 지역 담당 관리 부하들이 들이닥쳐 두 사람을 붙잡아 갔다는 것이다.
김창식은 매를 많이 맞고 목에 칼을 쓴 채 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오늘 아침 김창식에게 곤장을 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닥터 홀은 외국인이라 감히 매질할 수 없어 대신 김창식을 가두고 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홀은 몹시 괴로웠다. 서울에서 평양으로 올 때 김창식의 사명감으로 빛나던 눈빛과 얼굴이 생각나 더욱 마음이 아팠다.
“오! 주님 앞으로 저희들이 이곳에서 당할 시련은 언제까지입니까? 저희가 끝까지 낙심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아침 6시가 넘어 평양감사와의 면회를 신청했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감사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며 만나주지 않았다. 그 사이 군졸들이 집으로 찾아와 엽전 10만 개를 내면 창식이가 맞을 곤장을 감해 주겠다고 하였다. 로제타는 우리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고 하였다. 닥터 홀은 면회를 가서 가까스로 창식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수갑을 너무 조여 놔서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같이 간 집 주인 오 씨도 닥터 홀이 집안에 들어간 사이에 마당에서 군졸들에게 붙잡혀 갔다.
홀은 전신소로 뛰어가 서울에 있는 스크랜턴에게 전보를 쳤다.
“김창식, 한 씨, 오 씨, 모두 구금되어 구타당함. 이곳 가족들과 하인들 보호 요망.”
중국 전신소의 영어 통역관과는 친한 사이였다. 감사와 면담을 하는데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고맙게도 그는 승낙해 주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감사를 만나러 가겠다고 연락했다.
이런 각박한 상황이었는데도 조선의 부인들과 아이들은 서양 여인과 아기를 구경하러 온다고 10여 명씩 조를 짜서 온종일 몰려오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집안의 물건이나 장식 같은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아기 셔우드와 아내 로제타 얼굴을 보는 데 만 시간을 보냈다. 서양인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그렇게도 신기한 구경거리나 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하느라 지칠 만도 한데 로제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6개월 정도 지난 아기 셔우드도 많은 사람을 보며 놀라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을 구경시키는 일도 선교활동인가?’ 잘 참아 주는 가족들을 보며 감사하기도 하지만 감옥에 있는 김창식을 비롯한 한 씨, 오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아, 저들을 어떻게 하면 감옥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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