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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13]

-닥터 홀 가의 감동적인 의료선교 이야기
황연옥 작가의 전기소설(傳記小說) 연재 [13] / 삽화 윤광자 화가

2020년 08월 04일(화) 10:30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1894년 9월 15일, 평양에서 일본군과 청군의 큰 전투가 벌어졌다. 청일전쟁의 전환점이었다.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한 후 평양성에 주둔하고 있는 청군을 공격하였다. 이 전쟁에 청군은 1만 4천 명, 일본군도 만 명이 훨씬 넘는 병력이 참전했다고 한다.
일본군은 작전을 세밀하게 짜서 세 방향에서 평양성을 공격하여 모란봉을 점령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후면에서 예기치 않은 공격을 당한 청군은 당황하였다. 결국 을밀대에서 항복하고 일본군은 평양성에 입성하였다. 이 전쟁으로 평양 주민들은 청군과 일본군 양측으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일본은 전승국으로 부상했으며 청국은 조선을 물러갔다. 이 전쟁으로 시모노세키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청국은 일본의 요구대로 일본에 유리한 교역 약정과 일본에 네 개의 새로운 항구를 개항한다는 조건을 들어 주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이 청국의 속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나, 일본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일본은 즉시 조선 정부에 관여하여 이씨 왕조 정부의 구조를 개편하기 시작하였다. 우편, 철도, 전신이 일본 손으로 넘어갔다. 새로운 법규가 갑작스레 만들어졌으나 조선 사람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았고 오히려 저항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환자를 돌보던 닥터 홀은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병원과 교인들이 염려되어 서둘러 모펫목사, 리 목사와 함께 평양으로 돌아갔다. 격렬한 전쟁 속에서도 병원과 감리교선교회 건물은 잘 보전되어 있었다. 전쟁 중 감사 민 씨는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의 가마가 구덩이 속에 뒤집힌 채로 뒹굴고 있는 걸 보며 그동안 박해 당하던 일들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닥터 홀은 전쟁을 취재하러 온 외국 기자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뉴욕 <월드> 지의 그린맨(Greenman)이었고, 또 한 사람은 <런던스탠더드>지의 프레더릭 빌리어스(Ferderick Viliers)였다. 닥터 홀은 그들에게 쉴 곳과 편의를 제공했다. 그들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렇게 기록했다.
“10월 8일 전쟁터 몇 곳을 갔었는데 아직도 청군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어떤 시체는 땅 위에서 부패되어 지독한 악취가 났다. 길가에는 많은 말과 가축들이 죽어 있었다. 군대 보급품들을 수송하는 데 쓰였던 가축들이다. 전쟁이 끝나자 텅 비었던 마을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평양에서 남쪽으로 40km 위치한 황주에서 일본군 큰 부대를 만났는데 그들은 500여 명의 포로들을 데리고 있었다. 이 전쟁의 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닥터 홀도 두 목사와 며칠간 전쟁터를 둘러보았다. 전쟁의 잔해가 참으로 몸서리쳐질 정도다. 평양성 가까이 있는 시체들은 흙으로 덮어 놓았으나 성 외곽지대에는 총을 맞아 죽은 시체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만주의 기병과 일본 보병과의 살육전의 최후를 그대로 보는 거 같았다. 전투가 끝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길가에 널려진 사람들과 말들의 시체가 수백 미터에 이르고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 가축들의 죽은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고 악취와 불결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면 전염병이 돌 텐데… 어쩌나? ”
닥터 홀은 의사로서 위생 교육과 부상자를 속히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히 병원으로 돌아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들것이 없어서 대나무 침대로 환자를 실어 날랐다. 조수가 없어서 교인들과 광성학교 학생들이 환자의 이송을 도와주었다.
처음에 13명으로 시작한 광성학교는 학생들이 점차로 늘어갔다. 비로소 박해가 없는 평양에서의 의료선교와 기독 교육 활동이 시작되었다. 힘들어도 예배드리고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들에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계속된 강행군의 연속으로 닥터 홀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여러 번 평양과 서울을 왕래하면서 몸을 너무 혹사했다. 게다가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다친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자신의 몸을 돌볼 여가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한 도시 안팎의 극히 비위생적인 환경에 대한 저항력도 없었다.
닥터 홀의 우려대로 이질과 말라리아 질병이 돌았다. 그의 병원으로 전쟁 부상자뿐만 아니라 전염병 환자들도 몰려왔다. 모펫 목사와 닥터 홀도 말라리아에 걸렸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모펫 목사와 스크랜턴은 닥터 홀의 병세가 심해져 더는 진료 활동을 한다는 건 무리라 생각하였다. 서울까지 빨리 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다가 관리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서울까지 갈 수 있도록 조처했다. 대동강을 따라 65킬로미터쯤 내려가서 병든 군인들을 실은 큰 배를 탔다. 군인들도 이질이나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들을 실은 배가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닥터 홀은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제물포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는 병세가 좋아진 것 같았는데, 서울로 가는 작은 기선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열이 올랐다.
배는 오후에 출항했다. 어두워질 무렵 강화도 건너편에 도착했는데 설상가상, 배가 암초에 걸렸다. 뒤집어지려는 배를 간신히 붙잡아 필사적으로 다시 항해를 시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열이 오른 닥터 홀은 계속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안가 어느 오막살이 조선집을 얻어 닥터 홀을 잠시 눕혀 놓고 서울로 갈 수 있는 배를 찾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배를 구했다. 느린 항해로 서울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닥터 홀은 발진티푸스에 걸렸고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고 사흘 가까이 길에서 병세를 키운 것이다.
1894년 11월 19일 아침, 홀 부인은 왕진 가려고 약을 챙기고 있는데 남편이 몸이 안 좋아 서울에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로제타는 아기 셔우드를 안고 뛰어나갔다. 홀 부인은 깜짝 놀랐다. 닥터 홀의 얼굴과 몸이 너무도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아들 셔우드를 보자 기분이 좋아져서 첫날은 표정도 밟고 유쾌해 보였다.
“로제타, 건강할 때 집에 돌아와 아내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미 알고 있었소. 그런데 병이 나서 집에 돌아와 편히 누워서 사랑하는 의사 아내의 간호를 받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되었소.”
애써 농담을 건네며 아내의 손을 잡고 말하는 닥터 홀은 열이 40도를 오르내렸다. 다음 날은 병이 너무 위중해 혼자 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침에 종이와 연필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노블 목사에게 이번 여행에 쓴 비용을 적어서 알려 주었다. 그 외에 다른 회계기록은 그의 공책에 적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지경에서도 그는 이처럼 공적인 일에 철저했다.
“로제타, 그동안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 죽든 살든 하나님의 뜻이오. 아, 그러나 나는 당신과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더 오래 일하고 싶소. 우리 셔우드, 당신의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랑 함께… 아가야, 미안하다. 아빠 얼굴도 못 보는 사랑하는 우리 아가…….”
닥터 홀은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더니 로제타의 배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배 안에 있는 아기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은 게 있었나 보다.
로제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남편을 안아 주며 힘주어 말했다.
“닥터 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꼭 나을 거예요. 힘을 내셔요!”
로제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글로 썼다.

“내가 그의 곁으로 갈 때마다 그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한 우리들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걸 말하려 애를 썼다. 나에게 뱃속의 아기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주 건강하고 셔우드보다 더 심하게 움직이고 잘 논다고 하였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내 두 손을 꼭 잡기도 하였다.”
그렇게 치료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다음날 아침, 닥터 홀은 병세가 더 위중해져서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였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려는지 연필과 종이를 달라고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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