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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전설에 나타난 재난과 공동체의 대응[7]

고성지역 인문학 연구 / 이광형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2021년 10월 08일(금) 09:45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4. 재난을 예비하는 구비 공동체

이 장에서는 화진포 전설의 구비전승이 평상시에도 재난의 위험에 대비하고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공동체의 붕괴를 예방하는 공동체의 인문학적 지혜의 소산임을 밝혀 보고자 한다.
재난은 평소의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이변이지만 그렇다고 늘 재난만을 걱정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우(杞憂)라는 말이 잘 보여 주듯이 하늘이 무너지는 일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만을 걱정하면서 산다면 우리의 일상은 평상시와 재난 시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재난 스트레스에 침윤당하고 말 것이다.
화진포 전설은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흥미를 전면에 부각시켜 평소에 자주 소비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재난 시에 필요한 윤리를 전승자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효용 가치를 지닌다. 구술로서의 화진포 전설이 그러한 효용을 보이기 위해서는, 예컨대 짧게는 1년에, 길게는 5년에 한두 번 열리는 마을의 종교적 제의보다는 훨씬 더 자주, 일상적으로 회자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각편의 구비전승을 우리의 일상적인 말의 주고받음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구비전승되는 설화와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언어행위가 이루어지는 현장 자체에서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일상경험담과 민담의 구술적 성격을 비교한 선행 논의에 의하면 “구술로 이루어지는 일상서사체와 구술로 이루어지는 문학서사체[는] [중략] 양자 사이의 거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는 현상인데,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자신의 군대 시절이나 연애 이야기를 꺼낸다든지 책이나 기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한 이야기로 빠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화진포 전설은 일상적으로 오가는 수다 속에 우리가 풀어놓는 각자의 경험담과 큰 차이 없이 자연스럽게 생활 현장에서 구술됨으로써 전승될 수 있었다. 평상시 주고받는 대화처럼 화진포 전설의 구비전승은 기우로서의 재난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면서도 재난을 예비하는 효과를 거두어 온 것이다.
화진포 전설의 구전심비(口傳心碑)가 지니는 이러한 재난 예비 효과는 건설적인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건설적인 편집증’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사회에 사는 현대인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전근대인일수록 생존과 안전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삶의 자세가 현대인에게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기우에 비추어 보면 대다수 현대인들이 마천루에서도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내진·내풍·내열 설계, 최신식 화재 예방 및 구조 시스템, 안정적인 용수 공급 및 오·하수 배출 시스템 등등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한 혜택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현대인들은 기우에 가깝게 높은 곳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편집증을 보이는데 여전히 추락에의 두려움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원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다양한 이유로 고층 건물의 화재나 붕괴 같은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재난이 고층 건물과 저층 건물 중 어느 쪽에서 더 빈번한가를 따져 보자는 게 아니라 아무리 잘 관리되는 사회일지라도 모든 위험으로부터 전적으로 안전하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건설적인 편집증에 대한 논의를 ‘위험과 수다’라는 항목으로 마무리한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대인들은 일상의 수다가 지니는 위험을 예비하는 효과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넘기는 데 반해,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뉴기니 사람들은 주변의 위험에 대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존속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여기서 대화가 늘 쌍방향으로,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감각하고 판단한다. 누군가가 놓친 위험의 신호를 다른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알려 줄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그냥 듣고 흘려 버릴 수다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재난의 징후를 감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수다가 위험을 예비하는 효과를 지닌다면 그 출발점은 수다를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지점부터일 것이다.
뉴기니 원주민들은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수다를 통해 자연스럽게 각자가 체득한 삶의 현장에 산재해 있는 위험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처럼 전근대 화진포에 모여 살던 주민들도 해안가 지형에서 비롯하는 더 많은 재난 위험을 일상의 수다 속에서 화진포 전설을 구비전승하면서 예비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고대로부터 한반도의 북방 세력과 남방 세력 사이의 주요 교통로 중 하나인 동해안 길목에 위치한 화진포 지역의 특성상 1차적인 자연재해는 늘 2차적인 인재나 복합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며느리의 죽음을 석화로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총서낭이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은 재난에 대한 마을 공동체의 단합된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끊임없는 재난이 근본적으로 문제화하는 우리 삶의 조건은 바로 우리가 전혀 개인적이 아니며 이미 공동체의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졌다는 사실”인데, 화진포 전설의 며느리는 재난이 발생한 이후에서야 비로소 새롭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하는 ‘공동체적 개인’을 일상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화진포 전설의 며느리는 ‘평강’이나 ‘심청’과 같은 이름이 없는 대신 지역 공동체의 안팎에 걸쳐 있는 다양한 관계망 속의 개인이라는 상징적인 역할을 획득한 셈이다.
화진포 전설을 구비전승한 지역 공동체는 일상적인 구비전승을 통하여 평상시에도 재난 시에 닥쳐올 공동체의 와해 위협을 예방함으로써 공동체의 존속 가능성을 높였다. 그런 측면에서 화진포 전설을 구비전승한 지역 공동체를 화진포 구비 공동체라 명명한다면, 화진포 구비 공동체는 개개인에게 큰 편차로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난의 위험을 공동체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고르게 분산시키려는 인문학적 지혜를 가장 큰 정체성으로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각각의 개인이 평상시에 유교적 가부장제만을 추종하든 불교적 해탈을 추구하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굿의 영험에 의존하든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닥쳤을 때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함께 재난을 극복하고 생존해 나가야 한다는 윤리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화진포 구비 공동체는 키워 온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의 첫머리에서 살펴본 화진포 전설의 기록들은 장구한 시간을 뛰어넘어 각편을 구비전승해 온 공동체의 구술성을 계승한 현재 지역 공동체의 기술성의 발로이다. 조선 후기 서당과 가정에서 널리 읽히던 『천자문』, 『명심보감』, 『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의 기술성이 화진포 전설의 구술성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화진포호 일대에 세워져 있는 가시적 기록으로서의 화진포 전설은 앞으로도 구비로서 화진포 전설이 지니는 불가시적 기록의 역사, 구술성의 지속 등에 이바지할 것이다. 현재에도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진행 중인 화진포 전설의 이런 전승은 명승지로서 화진포호의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정립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화진포 구비 공동체는 화진포호 주변에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삼강행실도의 이름난 글귀를 기록하여 세워 놓는 대신에 화진포 전설을 다양하게 새겨 놓음으로써,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화진포가 자연경관의 수려함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지혜를 모아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의 현장이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더해진 명승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초석을 깔아 놓은 것이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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