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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숲으로 ⑭

향토소설가 김담 연재 산문(散文)

2019년 01월 03일(목) 13:17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논들에 콤바인과 트럭들이 나타났다. 지나새나 벼 건조기는 돌아가고, 한길은 이른 새벽부터 소란 분주탕이었다. 그리하여도 이슬이 말라야 했으므로 벼를 베기는 이른 시간이었다.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도 벼들은 잘 자라서 아니 오히려 그랬으므로 논들은 새뜻한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푸르스레한 벼꽃이 피었고, 우렁이로 제초한 논들에선 메뚜기가 뛰어올랐으며 쑥부쟁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할 즈음, 우꾼우꾼 벼이삭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때맞춰 뿌렸고, 때로는 논두렁 풀을 예초기로 깎았으며 아침저녁 논물을 살폈다. 모내기 때 모자란 모를 이웃에게 얻었고, 피를 죽이는 제초제를 잘못 쳐서 벼이삭이 패암할 무렵 피 이삭을 일일이 손으로 잘랐다. 햇볕과 구름과 밤이 왔고, 태풍이 왔다 가며 날이 갰다. 논배미 근처 수로에는 옛날 식용했던 ‘줄(줄풀)’이 자랐으며 논둑에는 강아지풀과 달개비풀(닭의장풀)도 빠지지 않았다.
줄풀이라고도 불리는 줄은 볏과 식물로 옛 문헌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으나 이즘 우리 동네엔 줄풀을 아는 이도 없을 뿐더러 줄풀이 구황식물이며 뿌리와 줄기를 모두 식용, 약용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그랬으므로 어느 해 나는 줄풀로 차를 만들기도 하고, 효소발효액 재료로 쓰기도 했으나 줄풀은 여전히 저만치서 떼판으로 돋았다 스러졌다. 어느 곳에서는 부들과 함께 자라기도 해서 새싹일 때는 짐짓 헷갈리기도 했으나 줄은 볏과, 부들은 부들과로 열매는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흔히 ‘콤바인’이라고 불리는 종합수확기는 벼를 베는 일과 함께 탈곡을 동시에 하므로 손으로 직접 할 때 거쳐야 하는 많은 과정이 생략되었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벼를 베서 단으로 묶고, 묶은 볏단을 지게로 논두렁이나 논바닥에 낟가리로 쌓아 말린 뒤 다시 타작마당으로 옮겼다. 타작마당에 탈곡기와 도리깨, 고무래 등이 등장하면 아이들은 모내기하는 날처럼 흥겹고 신났다. 발로 밟으며 낟알을 터는 탈곡기 전에는 홀태(벼훑이)가 있었지만, 풋바심할 때만 잠깐씩 쓰던 홀태는 그러나 슬그머니 헛간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벼타작이 끝나면 마당 한쪽에 짚북데기가 쌓이고, 흙먼지처럼 날아올랐던 까끄라기는 잔치마당처럼 돌아쳤던 아이들을 괴롭혔으나 닭장에서 풀어놓은 닭들은 타작마당과 짚북데기를 파헤치며 낱알을 찾는데 고부라졌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지푸라기와 북데기들이 날아 장독대며 집 안팎이 먼지로 뒤덮이곤 했다. 어른들에겐 즐거우면서도 고된 하루였을 테지만 아이들은 누룽지 한 쪽을 더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이앙기로 모를 심을 때도 그랬지만 콤바인으로 벼를 벨 때도 여러 사람이 필요 없이 한두 명만, 때로는 혼자서도 가능했다. 혼자는 콤바인과 트럭을 오가는 일이 좀 번거롭기는 해도 큰 장애는 아니었다. 수작업을 할 때는 타작한 벼를 마당이든, 공터든 어디든 넓은 곳에 멍석을 펴놓은 뒤 말렸지만, 지금은 대형 벼 건조기가 대신했다. 논바닥에 직접 만들던 모판을 비닐하우스로 옮기면서 많은 과정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로, 추수 과정도 그러했다.
‘물수매(산물벼 수매)’를 할 때는 이 건조하는 과정마저 없이 논에서 흔히 RPC(rice processing complex)라고 부르는 미곡종합처리장으로 곧바로 이동했다. 예전처럼 볍씨를 씨앗으로 두었다 이듬해 봄에 다시 쓰는 일도 이제는 없었다. 볍씨 품종이 개량되면서 모두들 농협에서 구매해서 볍씨 파종기로 모판에 뿌렸다. 그리고 보통 모내기를 한 뒤 90일 가량 지난 뒤 수확하지만, 올해 처음 충청남도 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극조생종인 일명 ‘빠르미’를 모내기한 뒤 70일 만에 수확하면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올해도 농민단체에서는 ‘쌀 목표 가격’ 인상을 촉구했다. 80kg(한 가마니) 기준 농협 및 민간단체에서 17만원에 수매하는데, 생산비는 24만3천원 정도라고. 쌀값이 폭등한다고 연일 대중 매체에서 부르대도 그것은 기껏 20년 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라고. 통계청 발표를 보면 2008년엔 일인당 연간 75.8kg을 소비했던 반면 2017년엔 61.8kg을 소비했다. 다시 말하면 국민 한 사람이 일 년 내내 쌀 ‘한 가마니’도 안 먹었다. 그렇다고 쌀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니었다.
지금은 이 가마니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 죽은 말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가마니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가마스(かます)에서 온 말이었다. ‘섬 진 놈 멱 진 놈’이라는 우리 말 속담도 있지만, 섬은 가마니에 밀려서 사라졌고, 지금은 이 가마니도 사라지고 있었다. 섬과 멱처럼 볏짚으로 만든 그릇, 용구들은 이제 자취조차 찾기 힘들었다. 거적과 쌀가마니는 물론 멍석, 방석과 멱서리, 소쿠리, 삼태기, 새끼, 둥우리, 나락뒤주 그리고 가축의 여물과 깃, 지붕의 이엉으로 사용되었던 볏짚은 이제 겨우 소여물로 쓰일 뿐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읊조리고, 농업을 으뜸이라고 여기던 때도 엊그제 일이 되고 말았으나 여태도 쌀은 주식이었다. 그러나 농촌은 이제 도시인들이 꿈꾸는 세컨드 하우스 이상의 의미가 없을뿐더러, 농민의 고령화도 큰 문제였다. 한편에서는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젊은 농부들이 등장하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관행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늙은 농부들이 농업의 태반을 짊어지고 있었다. 2017년 기준 농가인구 가운데 60세 이상은 절반이 넘은 55.3%였고, 65세 이상은 42.5%였다.
숨을 쉴 수 없으면 이미 죽은 몸인 것처럼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뚜렷한 사실 앞에서도 어쩐지 요즘 농촌은 그저 도시의 식민지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살얼음판 같았던 남북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 심리가 커지면서 올(2018) 3분기까지 전국 토지 매매가격이 3.33% 오르는 동안, 접경 지역인 이곳 고성은 땅 매매 가격이 6.51% 올랐다. 휴가철이면 산으로 들로, 바다를 향해 차머리를 돌리면서도 그들이 떠난 뒤에는 쓰레기는 물론 이제는 반려견(伴侶犬), 반려묘(伴侶猫)라고 애지중지 안고 뒹굴던 개와 고양이를 두고 떠났다.
주식이 쌀이 아닌 빵으로 바뀐다고 해서 농촌, 농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쌀과 마찬가지로 밀도 누군가는 재배를 해야 했다. 현재 밀가루는 대부분 수입밀에 의존하는 형편이었고, 이 수입밀은 또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
m) 작물로 안정성이 의심되지만,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1% 남짓으로 매년 200만 톤이 넘는 밀을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지난해(2017) 수입량은 239만 톤이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수입하는 곡물은 흉년이 들거나 당사국 정치상황에 따른 변동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돈이 있다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지난 2007년 이상기후로 밀과 같은 곡물 수확량이 감소하자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들은 수출량을 제한하거나 수출 금지를 선언했다. 이로써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중동 및 아프리카 빈곤국들이 식량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밀은 또 우리밀 대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수입밀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요동치는 것을 매번 경험하고 있었다.
300원에도 미치지 못한 밥 한 공기를 생산하기 위한 농민들 분투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12월 18일 유엔 총회 채택을 앞두고 있는 이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유엔 농민권리선언)은 지난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의결됐지만, 그때 대한민국은 기권했다. <계속>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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