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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의 사명대사와 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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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17> 고성팔경(高城八景)⑥ 건봉사(乾鳳寺) 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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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2일(수) 08:59 1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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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건봉사는 사명당이 승병을 훈련하고 창의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료가 희박한 관계로 사명당의 업적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전하는 바가 크지 않다. 그나마 사명당에 대한 기적 비를 통해 대사의 남긴 업적이나마 엿볼 수 가 있는데, 이 비는 임진왜란 후 200년이 지나서 세운 것으로 당시에 사명당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제강점기 무렵인 1928년까지는 현존하였다가 이후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년(중종 39)∼1610년(광해군 2).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이자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僧兵將), 호는 사명당(四溟堂), 승명은 송운 ·유정(松雲·惟政), 자는 이환(離幻), 속성은 풍천 임씨(任氏), 속명은 응규(應奎),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이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대사는 1559년(명종 14)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여 신묵(信默)의 제자가 되었다. 3년 뒤 승과(僧科)에 합격하고, 그 뒤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休靜)을 찾아가서 선리(禪理)를 참구하였다. 1578년부터 팔공산·금강산·청량산 등을 다니면서 선을 닦았으며,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수도하던 중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유점사(楡岾寺)에 있으면서 인근 아홉 고을의 백성들을 구출하였다. 이때 조정의 근왕문(勤王文)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을 모아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하였다. 그곳에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어 의승병 2천명을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中和)사이의 길을 차단하여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담당하였다. 1604년(선조 37)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았다. 1604년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000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이듬해 5월에 귀국하였다. 이때 통도사에 약탈해간 치아사리 12매를 돌려 받아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다비하여 홍제암(弘濟庵) 옆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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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명대사 동상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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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명대사 기적비(1921년, 조선고적도보 수록)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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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의 파손된 기적비 모습 | ⓒ 강원고성신문 | |
사명대사 기적비(四溟大師紀蹟碑) =“금강산은 비로봉으로부터 나뉘어 두 갈래가 되니 단발령의 서쪽지역을 내점이라 하고 안문의 동쪽지역을 외점이라 한다. 내점의 표훈사는 바로 서산대사가 가르침을 베푼 곳이요, 외점의 건봉사는 사명대사가 의승군을 모집한 곳이다.”로 시작되는 이 비문은 1800년(정조 24)에 강원도 관찰사 남공철(南公轍)이 찬하였으며 원주진관병마사 허질의 전서(篆書)를 썼다. 『고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릉대학교박물관, 1995」에 따르면 비신은 2조각의 파편과 3조각의 소형편이 전하는데, 현상으로 보아 3면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조각의 비편 중 하나는 74㎝×31.5㎝×32.7㎝의 크기로, 비석의 상단부에 3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 중 전면의 오른쪽 부분이 파손되었다. 비석의 전면 상단에는 자경 9.2㎝의 전서(篆書)로「師紀蹟碑銘」이라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而見性不若格致」에서「義嶺南靈圭嘗與趙文熱公」까지 7행이 있다. 측면에는「事嘗就寧變故祠而表章之」에서「龍銅려鐵林木鞋株」까지 7행이 있다. 3면은 비석의 배면으로「崇禎紀元後庚申四月日立」,「主上殿下壽萬歲」라 새겨져 있다. 비문은 자경 2.8㎝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의 비편은 비신의 하단부로 80㎝×45㎝×32.7㎝의 크기이다. 앞의 비편과 같이 3면에 비문이 있어 한 행의 끝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수는 폭 138㎝, 너비57.5㎝, 높이80㎝이다. 하면에는 비신을 올리기 위한 80㎝×33㎝, 깊이 4㎝의 장방형 홈이 있다. 문헌사료와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비신은 폭 80㎝, 너비 33㎝, 높이 190㎝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비좌 이수를 포함하여 보면 전체 높이는 약294㎝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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