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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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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 갑 성(金甲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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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2일(수) 12:01 19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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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외금강면(外金剛面) 출신이다. 다른 이름으로(異名) 왕의성(王義誠) 사용하였다.
1931년 후반부터 일제의 중국대륙침략이 본격화되자 상해임정의 김구(金九)는 강화된 한인 독립운동과 중국 국민당정부 간에 국제적 연대를 형성할 목적에서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국민당정부의 재정적 ? 군사적 지원을 토대로 한 독자적인 투쟁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따라서 1933년 봄 김구는 중국 남경(南京)의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장개석과 회합하여 한국인 특별반을 설치함에 따라 1934년 봄에 동교 낙양분교(洛陽分校) 한국인 훈련생 90여 명만으로 1개 반을 특설하여 광복 전쟁을 담당할 군관 양성 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보게 되었다. 이 한국 군관 훈련반도 교과 내용 기타는 모두 중국 군관 학교의 예에 의하여 수행되었는데 교과는 정치 훈련과 전술(戰術)에 치중하고 내무 · 교양 관계의 학과도 겸하였으며, 선생은 이 당시 입학하여 독립군 군관양성훈련을 받았다. 그 후 1934년 12월 하순 낙양군관학교 한국인 특별반이 해체된 다음 특별반을 설치하였던 김구는, 다시 남경(南京) 성내(城內)에서 약 80명의 한국특무대 독립군을 조직하여 무장 수련으로 대일 항전의 중추 세력을 이루기 위한 학생 훈련소를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받던 선생은 1935년 9월 사격장에서 수류탄 투척 연습 중 잘못으로 던진 수류탄의 파편에 맞아 순국(殉國)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出典:『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第 6卷,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年, p.126.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第12卷, 국가보훈처, p.132.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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