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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의 운파당·목우당대사 비명(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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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18> 고성팔경(高城八景)⑥ 건봉사(乾鳳寺) 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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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8일(화) 11:56 20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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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 강원고성신문 | 건봉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浮屠)와 비(碑)가 건봉사 초입에 부도군(浮屠群)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원당(願堂)또는 석종 모양의 석조물을 일컫는 말로 승탑(僧塔)이라 부르기도 하며 비명(碑銘)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이곳에 운파당·목우당대사 두 분의 비명(碑銘)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운파당대사비명(雲坡堂大師碑銘)= 조선 중기의 승려 운파당(雲坡堂, 청안淸眼, 1650-1717)의 행적을 기록한 碑文이며, 청안(淸眼)의 제자 쌍식(雙式)의 부탁을 받고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비문을 지었다. 비문에 의하면 청안(淸眼)은 자(字)는 법장(法藏)이며 호(號)는 운파(雲坡)이다. 그의 집안은 정선전씨(旌善全氏)인데 고려 때 간성(杆城)으로 이주하였고 어머니는 엄씨(嚴氏)이다. 13살에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대적암(大寂庵)에서 출가한 후 사명대사(泗溟大師, 惟政)의 3대 제자인 허곡당(虛谷堂) 나백(懶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운문사(雲門寺) 등 경상도 지역에서 참선(參禪) 수행하다 금강산을 거쳐 고향의 건봉사에 들어와 1717년(숙종 43)에 입적(入寂)하였다. 문도들이 다비(茶毗) 후 그의 사리를 석종(石鐘)에 안치한 후 그 비문을 이의현(李宜顯)에게 구한 것이다.『고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문화재청,1995」에 따르면 귀부,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 2면비이다. 귀부는 240㎝×168㎝×61㎝의 크기로 귀두는 등과 수평을 이루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2중 귀갑문이 조식되었다. 비좌는 93㎝×42cm×8㎝ 크기의 장방형이다. 비신은 180㎝×78cm×28㎝의 크기로 상면에 16㎝ 크기의 전서(篆書)로「운파대사비명(雲波大師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머지 비문의 내용은『건봉사본말사적』에 소개되고 있으며「규장각28097」1매(枚)가 탁본 179.4×93.2cm 보관되어 있다. 이수는 135㎝×58cm×180㎝의 크기로, 전면에 2마리의 용이 구름사이를 날고 있다. 측면에는 장방형의 액내에 볼륨이 강한 도깨비가 양각되어 있는데, 주변에는 구름이 묘사되어 있다. 날카로운 뿔, 타원형의 얼굴, 눈썹, 눈, 코, 날카로운 이빨과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이수의 상단에는 각형 1단 받침 위에 화로형 받침대를 놓았다. 받침의 중단에는 유(U)자 형이 상하 교차되고 있고, 상면에는 원내(圓內)에는 앞과 뒤로「日」자와「月」범자(梵字)가 양각되어 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4.13m로 1730년(영조 6)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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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운파당대사비명 | ⓒ 강원고성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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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목양당대선사영안비명 | ⓒ 강원고성신문 | |
목양당대선사영안비명(牧羊堂大禪師靈眼碑銘)= 조선 중기의 승려 목양당(牧羊堂, 영안(靈眼,1631-1724)의 행적을 기록한 碑文이다. 영안(靈眼)이 죽은 다음 해에 그의 제자 의영(義英)의 부탁을 받고 간성군수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비문(碑文)을 지었다. 영안(靈眼)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은데? 이 비에 의하면 그는 함경도 영흥부(永興府) 북촌(北村) 출신으로 김씨(金氏)이며 집안은 대대로 유학(儒學)을 업(業)으로 삼았다고 한다. 8살에 출가하였고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제자인 회경당(回警堂) 홍변(洪辨) 장로(長老)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724년(景宗 4)에 그가 건봉사에 들어왔을 때는 별다른 특징이 없이 미타염불(彌陀念佛)만을 행하였으므로 사찰의 승려들이 그를 무시하였지만 이해 겨울 그가 입적 후 다비식(茶毗式)과 49제(祭) 저녁에서 100제 까지 이적이 일어났고? 동자승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영안의 사리를 수습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그의 정골과 사리 2매를 수습하여 건봉사 동쪽 언덕에 탑을 건립하였다. 그런데 1712년(숙종 38)에 전라도 광양의 옥룡사(玉龍寺)에서 간행한 ≪高麗國光州曦陽縣故白鷄山玉龍寺制諡洞眞大師寶雲之塔幷序≫<古 1723-3>의 말미에 기록된 대선사(大禪師)의 명단에 보이는 영안(靈眼)은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고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문화재청,1995」에 따르면 비좌, 비신, 이수를 구비하고 있는 비석이다. 비좌는 126㎝×87cm×20㎝ 크기의 장방형으로 치석이 고르지 못하다. 비신은 183㎝×81cm×34㎝ 크기의 2면비이다. 자경 8㎝ 크기의 전서(篆書)로「목양당대선사영안비명(牧羊堂大禪師靈眼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건봉사본말사적』에 소개되고 있으며「규장각28095」1매(枚)가 탁본 173×77.5cm 보관되어 있다. 이수는 화형(花形)이며 전면에는 구름과 2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있고, 뒷면에는 운문(雲紋)이 표현되고 있다. 비석 전체의 높이는 2.8m로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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