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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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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1주년 특집 인물 - 351고지 참전용사 원종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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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8일(화) 08:53 20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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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당시에는 모두가 전쟁이 끝나면 통일이 될줄 알았지요. 이렇게 분단이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된 월비산·351고지 전투의 생존자 원종필씨(81세, 사진)는 “요즘도 가끔 통일전망대에 올라 351고지를 바라보면, 선봉에 서서 적을 무찌르다 산화한 전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제61주년을 5일 앞둔 지난 21일 기자와 함께 통일전망대를 찾은 원씨는 “잠시 기다려 달라”며 매점에 들러 소주 한병을 사왔다. 그리곤 351고지 전투 전적비 주변을 빙 돌아가며 술을 따랐다.
월비산·351고지는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10월 10일부터 휴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 7월18일까지 2년 동안 치열한 접전이 오간 지역이다. 본래는 356고지였는데 7차례에 걸쳐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교전으로 산정상이 5m나 깎여 351고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국군 수도사단, 5사단, 11사단, 15사단 등 4개 부대와 북한군 6사단, 7사단, 19사단 등 3개 부대가 전투를 벌였다. 원씨는 수도사단에 속해 1951년 10월 중순 20여일간 351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함경남도 안변군서 홀로 남하
함경남도 안변군 안변읍 출신인 원씨는 15세 때 일제치하에서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20세 되던 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원씨는 6.25 전쟁 직후 고향에 머물러 있다가 인천상륙 작전 이후 동해안을 따라 북진해오던 국군과 만나게 된다. 국군이 진격해오자 주민들은 인민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무장을 하고 치안대를 구성했다. 안변읍을 비롯해 7개 읍면에서 400여명이 몰렸는데, 당시 20세 청년이었던 원씨도 그 속에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곧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세는 다시 역전돼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연합군이 흥남에서 대대적인 철수작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1.4후퇴다.
“우리 400여명의 치안대는 흥남철수에 앞서 1950년 12월 5일 후퇴를 했지요. 한 보름 정도 내려갔다가 돌아오면 된다고 해서,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집에 있고 총을 든 젊은이들만 출발했던 겁니다.”
9남매 가운데 차남이었던 원씨는 전쟁의 와중에서 가족들에게 인사조차 못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강릉 안인진리까지 도달한 원씨를 비롯한 400여명의 청년들은 당시 묵호에 있던 수도사단과 만나 무장해제를 당하게 된다. 이후 30세 이상은 대부분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20대는 ‘동해안 유격대’라는 이름으로 남게 됐다.
“우리는 수도사단과 함께 바로 북진할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인민군들이 벌써 강릉까지 진지를 구축하고 있어서, 공격을 못하고 일종의 소강상태가 된 거지.”
원씨는 이 기간 동안 훈련소에서 2주 훈련을 받고, 현역 군인으로 입대했다. 당시 군번이 ‘0719111’이다. 부대 배치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1대대 2중대였다. 1951년 초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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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종필씨가 6.25전쟁 제61주년을 5일 앞둔 지난 21일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원씨 뒤쪽으로 지금은 북한땅이 된 351고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 ⓒ 강원고성신문 | |
부대편성을 받은 그는 설악산전투에 투입돼 첫 전투를 치렀다. 결과는 패배였다. 당시 인민군은 중공군과 함께 춘기대공세를 펼쳐 아군이 서부전선 수원, 중부전선 제천, 동부전선 강릉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씨는 부대원들과 함께 오대산에서 방어를 하던 중 북진명령이 떨어져 ‘향로봉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이게 두 번째 큰 전투였다. 이때는 크게 승리했다. 그리곤 동쪽으로 이동해, 드디어 역사적인 351고지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원씨가 속해있던 수도사단은 1951년 10월 중순 북한군 수중에 있던 351고지를 공격해 탈환했다. 351고지에 첫 출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군의 피해도 컸다. 중대장과 분대장 등 20여명이 전사한 것이다.
“351고지는 인근 월비산(459고지)과 함께 금강산 입구가 보이는 요충지여서 남북 양측이 모두 중요하게 여겼지요. 그래서 일곱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접전이 벌어진 겁니다.”
351고지를 점령한 수도사단은 여세를 몰아 월비산을 공격했다. 원씨가 속한 2중대는 중대장이 사망한 상태여서 참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도 국군이 승리해 북한군은 남강 너머로 후퇴했다. 이때부터 밀고 당기는 피아간 공방전이 시작됐다. 북한군은 주로 야간과 새벽을 틈타 기습을 감행했다.
그런데 후방인 지리산으로 북한군이 숨어들면서 전투가 치열해지자, 수도사단은 351고지 전투에 참전한지 약 20여일 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으로 빠지게 됐다.
“수도사단이 임무교대를 하고 11사단이 맡았는데, 8일 후에 월비산과 351고지를 모두 북한군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하는데 그런 소식이 들려오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351고지 전투는 이후 휴전직전까지 5사단과 15사단이 교대로 전투를 벌였으나, 북한군이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현재는 북한에 속하게 됐다.
지리산 공비토벌에 나선 원씨는 오른쪽 다리와 눈에 파편을 맞아 야전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는 마산 수도병원을 거쳐 1952년 7월경 명예제대를 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북한이 고향인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원씨는 “마침 같은 병실에 있던 김포 출신 ‘추씨’가 갈 때가 없으면 우리 집으로 오라고 주소를 적어준 것이 있어서 그곳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김포로 찾아간 그는 미군 김포비행장 노무처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강화군 교동면(교동도)에 있던 미군 극동사령부 소속 KLO(Korea Liasi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처, 일명 켈로부대)에 속해 휴전이 될 때까지 3회 적진 침투임무를 수행했다. 원씨는 켈로부대에는 자신처럼 월남한 북한 청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1953년 7월 29일 휴전협정이 맺어진 뒤 원씨는 22사단에 재입대해 50개월간 복무했다. 이때 군번이 ‘0775157’이다. 제대 후 그는 속초에서 방첩대 활동을 잠시하다 4.19 혁명으로 부대가 없어지면서, 60년대초 고성군으로 이주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은 그에게 2개의 군번과 3개의 제대증(명예제대증 1개, 만기제대증 2개)을 남기고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를 안겨줬으나, 부모 및 8명의 형제와 생이별해야하는 아픔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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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종필씨가 351고지 전적비를 찾아 먼저 간 전우들의 넋을 기리며 술을 따랐다. 원씨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이곳에서 열리는 월비산·351고지 전몰용사 위령제에서 회고사를 낭독한다. | ⓒ 강원고성신문 | |
고성서 수협중매인 생활 40년
고성에 정착한 원씨는 고성군수협 중매인으로 40여년간 일하며, 33세 때 경상도 여성과 결혼해 1남4녀의 자녀를 뒀다.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때 당한 부상 후유증으로 외출 때 지팡이를 짚어야 하지만, 8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정하다.
351고지 전투를 기억하고 있는 대진 지역 주민들은 전쟁 후 추념식을 가졌다. 처음에는 대진감리교회에 전적비가 세워졌으며,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4월 27일에 추념식을 가졌다. 1988년 12월 전적비가 통일전망대로 옮겨진 후로는 현내면번영회 주관으로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원씨는 “당시 전우들이 아직 살아있다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통일전망대 어딘가에서 월비산·351고지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실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로 수년전 5사단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전우가 찾아와서 현충일 추념사를 대신 한 적도 있다.
지난 1983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그는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 본 늦둥이 외아들을 장가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평화시대에 사는 게 아닙니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휴전입니다. 휴전.” 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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