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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와 신학문 봉명학교(鳳鳴學校)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20> 고성팔경(高城八景)⑥ 건봉사(乾鳳寺) Ⅸ

2011년 07월 19일(화) 15:55 23호 [강원고성신문]

 

↑↑ 김광섭 칼럼위원(향토사학자)

ⓒ 강원고성신문

관동지방 최초의 신학문 학교인 건봉사 봉명학교는 명진학교(明進學校)의 영향으로 1906년 8월 1일에 개교하여 여러 차례 재개교가 거듭되었고 1936년 가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 당할 때까지 보통학교과정과 고등보통학교을 개설하는 등 신학문, 신문명의 확고한 기초에서 운영되었다.
이런 요인으로 인하여 건봉사에서 22명의 재일 유학생이 배출되었으며 건봉사에서 적극 후원으로 봉명학교 출신인 재일불교 유학생들의 지속적으로 참여, 지도하에 신세대의 교육 운동에 큰 힘을 쏟았다.
봉명학교 설립 취지문(황성신문 1907.1.26 1면)에 따르면 봉명학교에서는 신학문과 전통적인 학문을 균형적으로 교육하겠다는 생각을 피력하였으며, 이런 교육 이념을 토대로 봉명학교를 설립한다면 원효, 보조, 서산, 사명이 추구하였던 호국불교의 구현이라는 민족불교의 전통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런 자신감으로 각처의 선비와 승려들이 봉명학교로 와서 지열하게 배울 것을 권장, 호소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현실인식, 신문명과 신학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민족불교의 구현을 이루겠다는 것이 봉명학교의 설립 이념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개교한 봉명학교는 1920년대에 이르러 보다 활발한 교육활동을 펴 유치부·초등부·중등부의 학제를 두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와 지리·역사·수리(數理)등 신학문을 가르쳤다. 봉명학교는 단순히 수업뿐만 아니라 ‘만해의 강연회’와 ‘국경의 달밤’의 연극제, ‘조선독립 만세’를 연상케 하는 가장행렬 등도 활발히 치렀으며, ‘연등제작 대회’를 비롯한 청년회 등 ‘이러타 독서회’ 각종 모임도 장려했다.
특히 건봉사에서 관동축구회를 주최하면서 백여 명의 사내의 학생등과 젊은 스님들의 협력으로 운동장을 만들어 4월 초파일 전 6일부터 7일까지 개최하였다고 한다. 이 때 참가하기 위해 모인 단체들과 사람들이 냉천리 주막과 도가에는 만원이었고 임시 천막을 치고 숙식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건봉사에 모여진 관객들만 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관동축구회에 참가한 영동지방의 청년들은 각자 팀을 구성하여 훈련을 통해 다져진 다섯 팀이 출전하였는데 주최 측인 건봉사 고성 팀이 두 번이나 우승을 하였는데 대회가 끝난 다음 저녁 무렵이 되면 사내의 스님과 봉명학교 학생들 모두가 우승기를 들고 꼭두각시 놀이패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며 사찰안과 동구 밖을 돌며 사월기념행사를 축하하면서 끝을 매졌다고 한다.
건봉사 봉명학교는 한 번에 14~15명씩 일본에 유학생을 보낼 정도로 교육활동에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북 지역에서 건봉사의 도움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적지 않다.
그밖에 봉명학교에서는 만해 한용운의 강연을 적극 유치하여 불교사상과 문학 등에 대한 교양을 쌓기도 하였다.

↑↑ 1935년 봉명학교 봉서소년회 기념촬영.

ⓒ 강원고성신문

↑↑ 금암 스님의 봉명학교 회계원 임명장

ⓒ 강원고성신문


한편 봉명학교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에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이란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 의도가 드러나던 1907년 2월 일본에 대한 국채를 갚아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민중들의 자발적 움직임이다.
당시의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 등 각종 신문의 호응을 받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되어 건봉사 봉명학교에서도 적극 이 운동에 참여하여 1907년 4월 9일 봉명학교 교직원 10여명과 스님 학생 등 176명은 만일염불회에서 1백46원76전을 국채보상운동 성금으로 대한매일신보에 기탁함으로서 불교계의 국채보상운동(나라 빚을 갚는) 의연금으로 내면서 적극 이 운동에 기여하였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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