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발행인 칼럼칼럼/논단우리 사는 이야기독자투고김광섭의 고성이야기장공순 사진이야기법률상담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발행인 칼럼

칼럼/논단

우리 사는 이야기

독자투고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장공순 사진이야기

법률상담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오피니언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금강칼럼 / 우리나라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

2011년 08월 31일(수) 09:48 28호 [강원고성신문]

 

↑↑ 김종식 객원논설위원(전 동우대 부학장)

ⓒ 강원고성신문

우리나라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다. 영토와 영해와 영공에 미치는 영토고권(영토주권)을 말한다. 즉 한반도와 유무인의 크고 작은 섬 4,198개로 구성되고, 사람과 물건의 지배권을 갖는 대인주권(대인고권)이다.
우선 역사의 장을 열어보면 멀게는 신라 22대 지증왕 제위 500~515년에 우산국(울릉도)이 항복하였다. 울릉도에서 79km 거리에 있는 큰 섬 작은 섬 두 개의 섬 및 암초 중 수면 위로 솟은 것 합 91개의 섬으로 이뤄진 독도는 1982년 11월 16일 울릉읍 도동리 산 42번지 임야 34필지로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인접된 섬으로서 울릉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민의 삶의 터전인 어장이다. 전갱이, 고등어, 해삼, 전복, 미역, 다시아, 오징어, 강치, 대구, 연어, 각종 조개류, 해초류 등과 해저엔 천연가스가 있다. 또한 조류 22종이 서식하는 생동감이 넘치고 경관이 수려한 개발된 현재유인 섬이다.
1904년 광무 8년 일본 군함 쓰시마호의 대마도 독도조사 보고기록지인 ‘일본해군성발행’ 기록에 의하면 매년 여름이면 강치를 잡기 위하여 울릉도민이 수십명씩 작은 집을 짓고 10일간 거주한다는 기록이 보고되었다.
함남 영흥 사람인 안용복은 1693년 울릉벌목 독도에서 고기잡이 하는 왜인을 몰아낸 독도 수호의 선봉자이며 어부이자 감독관이다. 안용복은 1696년 단독으로 일본 에도에 가서 울릉도 감세관(감독관)이라 자기를 소개하며, 고기잡이와 도벌을 엄중항의 하고 조선영토임을 확인받았다. 그러나 귀국길에 쓰시마(대마도) 도주에게 잡혀 이 문서를 빼앗기고 조정에 압송되어 허락없이 국제문제를 일으켰다는 문제로 귀양보내졌다. 그후에 쓰시마 도주는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를 조선 땅임을 확인통지했으나, 안용복의 죄는 풀리지 않았다. 또한 안용복은 월경한 오끼노시마의 어부를 검문하니 마쓰시마(송도)에서 울릉도로 왔다고 하자, 너희가 부른 마쓰시마는 우리 땅인데 감히 어디를 침범하느냐고 꾸짖고, 자산도(독도)에서 내쫓아 추격하다가 풍랑으로 오끼노시마(은기도)에 표류하였다.
은기도의 도주가 앞서 만나 자기가 울릉도와 자산도(독도)를 조선의 경계로 정하고 간빠꾸(관백)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또다시 침범하니 이것이 무슨 도리냐고 항의하였다. 도주는 호끼주 태수에 보고 처리하겠다고 답했고, 그후 소식이 없자 안용복은 호끼주 태수에게 가서 자산도(독도) 침범 사실을 항의했으며, 도주는 15명의 어부를 처벌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다짐하였다.
1923년 시마네현지에 의하면 독도의 대하를 위하여 나까이는 농부성에 교섭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본 정부는 한국 영토로 스스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허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인의 포악상 및 노략질은 백만분의 일의 역사에 불과하다.
한편 철종 1861년 천주교 탄압 및 취체완화 복음화융성했으나, 대원군이 그해 1월 탄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남종삼 정의배 신도 8천명을 학살하였다. 왜, 이들은 정당하다 할 것인데, 이 무모한 행위는 한낱 꿈이었다는 것. 필자는 많은 희생엔 애석하고 섭섭하며 가슴이 아픈 일로 국운좌우에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한 1866년 병인양요 모멸은 프랑스 함대가 9월 인천 서강 서울근교까지 침입해 시민을 공포케하고 양화진 물치 갑곶 강화부에 상륙, 군기 서적 양식을 약탈한 것은 제국주의 야만적 탐욕이요, 민족적 수모는 천추의 한이다.
또한 1866년 미국 셔먼호사건은 평양에서 일어난 미국상선과 분규사건인데 상품을 싣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절당하여 민중과 충돌한 것이다. 평안감사 이규수에 의하여 승무원은 몰살당하고 배는 소각된 사건으로 미국은 청국을 통하여 문책을 청하고 동양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함으로써 양이들로 인하여 어재연 외 4명이 전사하였다. 미국측은 해군중위 외 3명이 전사하고 10여명이 부상되었고 다음날 야습하여 미국 함선을 물리친 1871년 신미양요 사건이다.
이에 대원군이 각 지방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강화하였다. 크고 작은 양이들과 충돌은 약탈 노획물의 역사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 땅은 니전투구장이 되고 이 틈새에 수호조약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은 명치유신과 신정의 시정방침을 추진했다.
이 시기에 울릉도를 침범하고 울릉도를 송도, 독도를 죽도로 명칭변경을 하였다. 밀항 채벌 어업 등을 자행하였다. 1875년 9월엔 강화도 앞바다 운양호 사건을 기화로 살인방화 노략질 약탈 강탈 위협 등 수없이 고난을 당했다. 고종 13년 1876년 2월 26일 명치9년 강화도조약을 맺음으로써 본격적인 잠입침투할 수 있는 야심의의 계기가 실현되었다. 즉 제국주의 침략적 마수의 빌미가 되어서 갖은 음모 술수 회유 책동 압박 협박 매수 등으로 36년 동안 수탈당함과 동시에 민족말살을 하기 위한 사악한 역사였다.
우리말엔 물을 좋아 한 자, 나무타기를 좋아한 자, 싸움이 잦은 개코 등이 아물 날이 없고 불을 좋아하는 자 불로 망한다더니 바로 그 꼴을 두고 하는 말이로다. 이제 그만 기웃거리지 말고 다툼 없는 네 땅이나 네 물 속을 단속하는 것이 좋겠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