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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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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 동 진(李東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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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28일(토) 18:58 7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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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간성군 군내면 하리 15번지이다. 이동진 학생은 개성 한영서원에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1919년 3월 17일 고성군 간성읍(杆城邑)에서 함기석(咸基錫)과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키니 문명교육을 받은 자들은 누구라도 독립을 위하여 만세를 부르자」는 내용의 선전문을 만들어 간성보통학교 4학년 교실 입구의 벽에 붙여 동교 학생 150여 명을 규합, 이들과 함께 간성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등 주동자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 당시 독립운동으로 체포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주모자主謀者 승려僧侶김백운金白雲, 의사醫師함성희咸聖熙, 인쇄물밀포자印刷物密布者 농업農김응섭金應涉, 학생學生임갑용任甲龍, 학생學生이동진李東鎭, 학생學生함기석咸基錫, 선동자煽動者 농업農함청일咸淸一, 구장區長박종진朴鍾鎭, 학생學生이내구李乃九, 학생學生김영집金永集 등이었다. 동년 5월 12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동진이 1970년 8월14일 생존 당시 속초시 영랑동 456번지에 살고 있었으며 일제(日帝)의 고문에 타격을 받아 정신이 혼미하여 사실도 일정하게 말하지 못하여 분명한 내용을 파악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出典 : 『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1卷, 國家報勳處, 1994年, p.207.
註: △만세시위운동 關聯 判決文(1919. 6. 25. 京城覆審法院 형공(刑控)제477호) △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Ⅰ) (光復會江原道支部, 1991. 8. 15) 79面△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Ⅳ) (光復會江原道支部, 2004.12.) 223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07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46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92面△每日申報(1919. 5. 22) △이동진(李東振 ; 69세) 속초시 영랑동 456 (1970년 8월 14일 증언)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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