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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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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권 형 원(權亨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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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30일(월) 18:15 8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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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서면(西面) 송탄리(松灘里)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하교(夏敎)·하경(夏卿)이라 부른다.
1895년 12월경 여주·이천의병이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민용호(閔龍鎬)가 이끄는 관동구군창의군(關東九郡倡義軍)은 강릉(江陵)을 중심으로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민용호의 강릉의병은 개항장 원산(元山) 공략을 목표로 북정(北征)을 떠나 주문진(注文津)·양양(襄陽)·간성(杆城)을 지나 1896년 1월 26일 고성(高城)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때 일인 8명을 포박, 민용호에게 인계하여 참수토록 한 뒤 그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강릉의병 휘하 고성유진장(高城留陣將)에 임명되어 항전을 벌였으나, 같은 해 6월 본진 강릉의병이 함경도 지역으로 북상함에 따라 그도 역시 을미의병(乙未義兵) 항전을 종식하게 되었다.
그 뒤 1907년 광무황제(光武皇帝)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 격화되자 그도 의병항전을 재개하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17일 고성 남강(南江)전투에서 병력과 무기의 열세로 일군에게 대패한 끝에 일군에게 피체되어 총살당하였다. 그러나 일군은 잔인하게도 그 시신을 다시 단두(斷頭)하여 머리를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出典 : 『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9卷, 國家報勳處, 1991年, pp.43~
44.
註: △復齋集(閔龍鎬) 卷三 關東倡義錄 8面 △權義士行狀 △權義士弔慰文 △確認書(高城郡 杆城鄕校 典校) △義兵運動史(金義煥) 39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224~232面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제공>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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