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발행인 칼럼칼럼/논단우리 사는 이야기독자투고김광섭의 고성이야기장공순 사진이야기법률상담
최종편집:2026-04-29 오전 09:25:44
검색

전체기사

발행인 칼럼

칼럼/논단

우리 사는 이야기

독자투고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장공순 사진이야기

법률상담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오피니언 >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39>

“못 위의 풍연이 담백한 그림 같으니”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② 선유담(仙遊潭) Ⅷ
두 편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선유담 한시

2012년 02월 21일(화) 15:51 50호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오늘날 강원도는 백두대간의 가운데 줄기인 중앙산맥을 경계로 영동과 영서로 나뉘어져 있다. 영동지역은 달리 말해 관동(關東)이라고도 한다. 관동은 대관령의 동쪽을 이른다. 고려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철령(鐵嶺 : 강원도(북한) 고산군과 회양군 경계에 있는 고개(해발677m)는 본국(고려)의 동쪽 요해지로서, 이른바 “한 사나이가 관문을 지키면 만 명이 공격해도 문을 열 수 없다.”고 하는 곳이다. 그래서 철령(鐵嶺) 동쪽에 있는 강릉(江陵), 간성(杆城), 양양(襄陽), 삼척(三陟)등의 여러 고을을 관동(關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 때 문인 채련(蔡璉)의 〈간성군(杆城郡)〉형승(形勝)을 읊은 시(詩)에는 “서쪽으로 철령(鐵嶺)에 잇따르고, 남쪽으로 기성(箕城, 지금의 경북 고령군 성산면)에 이른다.(西連鐵嶺 南至箕城)” 고 하였다.

ⓒ 강원고성신문

ⓒ 강원고성신문

이렇듯이 관동지역은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편성하면서 “드넓게 펼쳐진 동해바다와 아름다운 호수가 어우러져 수려한 산과 계곡, 소나무 숲이 자태를 뽐내고 기암괴석이 두루 있으니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이라고 알려졌다.” 이러한 것을 배경삼아 관동지역은 사대부와 시인묵객들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넘쳐났다. 「관동별곡(關東別曲)」은 두편이 있는데 첫번째가 근재 안축의 작품으로, 1330년(충숙왕 17)에 안축이 강릉도 존무사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동지방의 뛰어난 경치와 유적 및 명산물을 노래한 경기체가다. 이때 근재는 마흔네 살이었다.
두번째는 250년 뒤인 1580년(선조 13)에 역시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던 마흔다섯의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과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山水美)를 표현하여 가사 <관동별곡>을 지었으니 몇 세기를 넘어 관동지방을 노래한 두 문인과 인연은 남다르다.
간성 지역의 명소 선유담은 물론이며, 영랑호, 만경대, 청간정에 대하여 밝히고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정철(鄭澈)은 1536(중종 31)∼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 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1561년(명종 16) 진사시 합격을 하였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첫 벼슬은 사헌부지평·도사를 지내다가 함경도암행어사를 지낸 뒤 이이(李珥)와 함께 사가독서 하였다. 1575년(선조 8)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몇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54세 때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다. 저서로는 시문집인『송강집』과 시가작품집인「송강가사」가 있다. 전남 창평의 송강서원, 연일의 오천서원(烏川書院)별사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1580년(선조 13) 1월에 강원도 관찰사 직을 제수 받고 임지로 떠나면서 3월에 관동팔경과 내금강·외금강· 해금강을 유람하게 된다. 이와 함께 관찰사직에 있으면서 접한 관동의 아름다움을 가사체 형식을 빌려 쓴 것이 관동별곡이다. 그는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백성에 대한 마음, 군왕에 대한 정을 담았다. 이 가사 집에는 적절한 감탄사와 생략법을 통한 탄력 있는 문장, 화려하면서도 활달한 표현으로 작가의 호방한 기상이 잘 나타내고 있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이 작품을 말하기를 능란하고 화려하게 읊은 국토예찬으로 ‘동방의 이소(離騷)’라고 하였으며 후세에도 두고두고 칭송되고 있다고 하였다. 고성의 해금강과 간성의 명소를 노래한 대목을 보면,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 있으나, 이 글을 쓴 사선(四仙)은 어디 갔는가? 여기서 사흘이나 머무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단 말인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고?”
여기서 간성의 〈선유담〉과 〈영랑호〉는 삼일포와 같은 표현으로 신라의 화랑(花郞)무리 즉 사선(四仙)이 놀았다고 설명해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관동팔경 한 곳인〈청간정〉과〈만경대〉는 간성의 대표적인 정자와 대(臺)로서 일찍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어 많은 사대부와 시인묵객들에 의해 사랑을 받아왔다.

근재(謹齋) 안축(安軸)의「관동별곡(關東別曲)」= 안축(安軸)은 1287(충렬왕 13)∼1348(충목왕 4).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아버지는 석(碩)이다. 고향 순흥의 죽계(竹溪 : 지금의 풍기(豊基)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유학자층의 한 사람으로, 탁월한 재질로 학문에 힘써서 글을 잘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단양부주부 등을 지냈고, 1324년(충숙왕 11) 원나라 과거에도 급제하여, 그곳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339년(충숙왕 18) 충혜왕의 복위로 다시 전법판사(典法判事)에 제수되었다. 그 후 상주목사 등을 지내고 충렬·충선·충숙 3조(朝)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순흥(順興) 소수서원에 제향 되었는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근재집(謹齋集)』이 있다.
근재 안축의 문학은 고려시대 경기체가의 형성과정과 함께 신흥사대부의 진취적 기상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문과 이두로만 전승된 까닭에 후대의 독자들과는 그리 행복하게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문학을 고작 <관동별곡>이라는 제목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대부만이 즐겨 애용한 경기체가라는 장르의 한계 탓이다. <관동별곡>은 전체 8장으로, 위풍당당한 순찰의 정경을 노래한 작품의 서사 1장에 이어, 학성, 총석정, 삼일포, 선유담, 영랑호, 양양, 임영, 죽서루 등을 각각 노래했다. <관동별곡>은 ‘실재하는 자연을 주관적 흥취로 여과하고 관념화하여 나열하였으며, 그 미감을 절도 있게 표출함으로써 사대부 특유의 세계관을 작품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축(安軸)이 관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읊었다는 <관동별곡> 제5장 간성의〈선유담〉과〈영랑호〉를 노래한 대목을 살펴보면, “선유담, 영랑호, 신청동 안으로(仙遊潭 永郞湖 神淸洞裏) 푸른 연잎에 덮인 물가, 푸르고 빛나는 멧부리, 십 리에 서린 안개 (綠荷洲 靑瑤장 風烟十里) 솔솔 부는 바람에 향긋한, 눈부시게 파란 유리 물결에(香염염翠森森 琉璃水面) 아, 배 띄우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爲 泛舟景 幾何如) 순채국과 농어회, 은실처럼 가늘고 눈(雪)같이 흰 회고기는(蓴羹노膾 銀絲雪縷) 아, 양락(羊酪)이 맛지단들 이보다 더하리오(爲 羊酪 豈勿參爲里古)” 〈관동와주 수록〉
간성의 남쪽에 있는 <선유담〉과 〈영랑호〉는 사선(四仙)이 놀다간 곳으로 여기서 신청동(神淸洞)은 신선만이 사는 ‘마을’ 혹은 ‘골짜기’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은실(銀絲)처럼 가는 순채국과 눈(雪)같이 흰 농어회는 진(晉)나라 문장가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명산물인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므로 ‘인생이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좋으니,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여 타향에 있겠는가.’ 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어쩌면〈선유담〉과〈영랑호〉통해서 작가 자신의 심정을 내포해주고 있는 대목인지 모른다.
최근 당대 최고의 가사 문학가로 꼽히는 정철의 관동별곡이 400년 만에 부활했다. 고성군을 비롯하여, 한국관광공사와 (사)세계걷기운동본부 주최로 ‘관동 800리길 걷기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반면에 고려 때 강릉도 존무사 안축이 보았던 〈선유담〉은 68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가 남긴 한시에서 잘 표현해주고 있다.

過仙遊潭 선유담을 지나며

潭上風煙?淡濃 못 위의 풍연이 담백한 그림 같으니
欣然似與故人逢 기쁜 마음은 옛 벗을 만난 듯 하다오.
也應嗔我悤悤過 구경하는 내가 급히 지나치면 노여워서
却恐重來不見容 다시 찾을 때 얼굴 감출까 두렵다네.

ⓒ 강원고성신문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버스 무료 이용 속초까지 가능..

인구 감소·경제 침체 등 구조적..

외국인 계절근로자 활성화 상생협..

고성군 인구 3년 만에 27,0..

하천·계곡 불법행위 대대적 정비..

2026년 ‘고성 DMZ 평화의..

고성군수 선거 함명준·박효동 맞..

토성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전..

금강농협 다문화가정 위한 장학금..

2026년도 정부 보급종 콩 개..

최신뉴스

체류형 관광 기반 구축·기업..  

죽왕면과 고성군의 실질적 변..  

지역구 고성군의원선거 총 1..  

함명준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  

김진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  

강원선관위 장애인단체 업무협..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1..  

금강농협 조합원 자녀 장학금..  

농관원 6월 30일까지 하계..  

치매, 함께 보듬어야 할 이..  

자원봉사센터 취약계층 장애인..  

고성소방서 현장대응능력 강화..  

토성면 의약분업 예외지역 취..  

기하의 언어로 풀어낸 감정의..  

‘2026 콩닥콩닥 탐사단’..  



인사말 - 연혁 - 찾아오시는 길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구독신청

제호: 강원고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227-81-17288 / 주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29 2층 / 발행인.편집인: 주식회사 고성신문 최광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광호
mail: goseongnews@daum.net / Tel: 033-681-1666 / Fax : 033-681-166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00187 / 등록일 : 2015년 2월 3일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광호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