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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 … 현재는 군사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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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의 고성이야기 <42> /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③ 만경대(萬景臺)Ⅲ - 지리지(地理志)에서 살펴 본 만경대(萬景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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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13일(화) 12:36 53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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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관동팔경의 樓·亭·臺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문학으로 읊어, 산수 유람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학의 산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말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경기체가(景幾體歌) 『관동별곡(關東別曲)』, 조선시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읊은 가사체 형식인『관동별곡(關東別曲)』이 있었다. 회화에서도 겸재 정선(鄭敾)의「청간정도(淸澗亭圖)」에서는 만경대 세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듯이 이러한 빼어난 승경이 있는데도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군사보호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에게 쉽게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지역만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슬픔이자 아픔인지 모른다.
이번호에 기재된 내용은 조선시대 들어와서 관찬지리와 사찬지리지에서 비친 만경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53권』=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관찬(官撰) 지리서이다. 이 책「153권」간성군(杆城郡) 역원(驛院)편에는 청간역(淸澗驛)과 만경정(萬景亭)에 관련된 기록만이 남아 있다.
청간역(淸澗驛)의 옛 이름은 청간(靑間)이라고 하였으며. 만경정은 “고을의 남쪽 30리 남쪽 물가에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간성의 만경정은 고을의 남쪽 30리(里)에 있다고 하였다. 거리상으로 보아 40리쯤으로『세종실록지리지』이후 여러 관찬지리지 또는 사찬지리지 문집을 통해 보더라도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점으로 ‘만경대(萬景臺)’가 아니라 왜 ‘만경정(萬景亭)’이라고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고려말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밝힌 바 있는 고성의 사선정(四仙亭), 양양의 강선정(降仙亭)과 상운정(祥雲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보아 관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②『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관찬(官撰) 지리서이다. 이 책 「45권」「간성군(杆城郡)」누정조(樓亭條)에는 청간정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청간역(淸澗驛) 옆에 만경루(萬景樓)와 만경대(萬景臺)가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청간정 생성 이전에는 만경대나 만경루가 명승지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누정이 대부분 역(驛)의 정자로 사용했던 점으로 비추어 역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대부 시인묵객들의 대부분 관동지역을 관람하면서 주 무대인 역과 누정(樓亭)이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는 점은 지리지에서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만경대 관련한 시가 여러 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 대표적인 고려 말 근재(謹齋) 안축(安軸)과 원재(圓齋) 정추(鄭樞) 등이 지은 시제(詩題)를 보면‘재청간역만경대(在淸澗驛萬景臺)’라고 한 점은 위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경루(萬景樓) 내용을 보면, “청간역(淸澗驛) 동쪽 수리(數里)에 있으며 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 일어서고 층층이 쌓여 대(臺)와 같고, 높이가 수십 길은 되며 위에 구부러진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대의 동쪽에 작은 다락을 지었으며 대 아래는 모두 어지러운 돌인데, 뾰족뾰족 바닷가에 꽂혔다. 물이 맑아 밑까지 보이는데 바람이 불면 놀란 물결이 어지럽게 돌 위를 쳐서 눈(雪)인 양 날아 사면(四面)으로 흩어지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만경루을 통해 만경대까지 소개를 해주고 있다.
③『수성지(水城志)』= 1633년(인조 12)에 편찬된 사찬(私撰) 지리지이다. 이 책은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 1631년 간성현감으로 제수되어 간성고을을 기록한 읍지(邑誌)이다. 만경대(萬景臺)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을 남쪽 40리에 있다. 천후산(天吼山)의 한 자락이 비스듬하게 뻗어 내려와 바닷물에 잠겨 있다. 작은 언덕 앞에는 돌 봉우리가 있는데 층층으로 솟아올라 축대와 같고, 위는 평평한 책상과 같으며 높이는 능히 수십 길이 됨직하다. 삼면이 바닷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바람이 없고 물이 맑으면 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 臺 위 네 모퉁이에 고송(古松)이 몇 그루가 서로 그림자를 엇갈리게 교차시키고 있는데, 옛날에 동쪽 모퉁이에 작은 누가 있어 만경루(萬景樓)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臺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④『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후기 1760년(영조 36) 편찬된 대표적인 관찬(官撰) 지리지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속성(續成) 성격인 이 책「간성군(杆城郡)」누정조(樓亭條)에는 청간정의 존재성과 자연 경관 상태의 만경대와 건축물이 있는 상태로 기록하고 있다. 내용의 살펴보면, “만경대는 군(郡) 남쪽 40리에 있다. 천후산(天吼山)의 한 지맥으로 바다와 접해 있으며 석봉은 축대와 같다고 하였으며, 건축물로 표현된 만경대는 청간정과 함께 이어져 있는데 4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청간정은 간성군 남쪽 40리에 만경대의 남쪽 1리에 있고 바닷물과 접해 있으므로 ‘청간(淸澗)’을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으며 예전에는 바닷물까지 불과 5~6보(步) 정도이었으며, 규모는 13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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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 ④『대동지지(大東地지志)』= 조선 후기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펴낸 지리서이다. 30권 15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찬 시기는 1861년(철종 12)부터 편찬되어 1866년(고종 3)까지 보안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 가운데 평안도편 일부와 산수고 및 변방편 등은 결본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대동지지』는 김정호의 육필본이다. 여기에 실려 있는 내용은 「권16」「간성군(杆城郡)」누정조(樓亭條)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간정(淸澗亭)은 청간역(淸澗驛) 옆에 있다. 해안에는 기암괴석이 어지럽게 서 있으며, 해변 위에 모래는 빛나니 흰 눈이 뒤 덮은 것 같고. 밟으면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니 주옥(珠玉) 위를 걷는 것 같다. 만경대는 역의 동쪽 수리에 있다. 한 개의 돌 봉우리가 깊은 물에 달려와 실낱같은 길이 겨우 고래의 배에 파도가 희롱하고, 산기슭은 계곡과 폭포가 아울러 뛰어나 옆에는 운근정(雲根亭)이 있다.” 여기서는 청간정과 만경대 그리고 또 하나의 정자 운근정(雲根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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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고성신문 | 김 광 섭
- 향토사학자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 고성향토문화연구회 사무국장
- 논문 : 〈선유담의 고찰〉, <간성의
만경대와 누정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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