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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을 때 얼굴 감출까 두렵네’

공현진 ‘선유담’ 복원·보존 필요성 제기 … “귀중한 문화재 사라질 위기”

2011년 09월 28일(수) 19:53 32호 [강원고성신문]

 

↑↑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에 담겨진 ‘가학정’이란 제목의 풍경화. 가학정은 공현진리 선유담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강원고성신문

↑↑ 지난 21일 선유담 현지 모습. 빼어난 풍광으로 시인묵객들에게 감흥을 주던 선유담 주변에 여러 필지의 논이 만들어졌으며, 연꽃이 자라던 중심부에는 갈대숲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 강원고성신문




過仙遊潭(과선유담)

潭上風煙畵淡濃(담상풍연화담농)
欣然似與故人逢(흔연사여고인봉)
也應嗔我念念過(야응진아념념과)
却恐重來不見容(각공중래불견용)

선유담을 지나며

못 위의 풍연이 담백한 그림 같으니
가쁜 마음은 옛 벗을 만난듯하네
구경하는 내가 급히 지나치면 노여워서
다시 찾을 때 얼굴 감출까 두렵네


고려시대 안축을 비롯해 조선시대 송강 정철과 단원 김홍도 등 수많은 학자와 시인묵객들이 시와 그림으로 풍광을 칭송한 고성지역 명소인 ‘선유담’을 복원해 후손에게 남겨주고, 관광 상품으로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고성향토문화연구회 김광섭 사무국장(향토사학자)은 “수년전부터 지역사회 일각에서 역사적·학술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명소인 선유담을 복원해 후손에게 남겨주자는 목소리가 있어왔다”며 “그러나 행정이 적극 나서지 않아 선유담이 날로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선유담은 아직까지 우암 송시열 글씨를 비롯해 가학정 터와 기와 조각, 연못 중심지 흔적 등이 남아있다”며 “서둘러 복원과 함께 보존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고성지역의 귀중한 문화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안축·정철·김홍도 작품에 등장

선유담은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 401번지에 위치한 담수 연못으로, 면적은 31,765㎡(9,609평)이다.
선유담은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진 오음산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선유담은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과 함께 동해안의 호소(호수와 늪) 대부분이 담수와 염수가 섞인 석호인데 반해, 특이하게 담수로만 된 ‘연못’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다.
조선 후기 학자 이의숙의 ‘이재잡’에 실린 ‘선유담기’에는 ‘보통 바다와 분리된 것을 일컬어 호수라고 부른다. 혹은 포구와 서로 이어져 바람과 파도가 소용돌이쳐 넘어 삼일포, 감호, 화진호 모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선유담은 다른 호수와 달리 스스로 이루어 바다를 이어받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말기 문신으로 강릉도 존무사(오늘날의 도지사)로 부임했던 안축 (1282~13
48)이 남긴 ‘근재집’이란 문집에 수록된 過仙遊潭(과선유담 : 선유담을 지나며)이란 작품은 선유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전해준다.
선유담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남긴 사람은 안축뿐만 아니다. 향토사학자 김광섭씨에 따르면 선유담을 노래한 한시는 안축을 비롯해 성현, 이우 등 무려 52명이나 된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선유담이 관동팔경과 함께 거론되고 있다.
또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에는 ‘가학정(1788년)’이란 제목의 풍경화가 남겨져 있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선유담 주변 암석에는 조선 후기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선유담’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어제창의 문집 ‘미재집’에는 본인이 송시열을 찾아가 글씨를 부탁해 얻은 뒤 암석에 새긴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글씨의 탁본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임금의 명을 받고 편찬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을 비롯해 조선후기 학자인 이긍익(1736~1806)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조선시대 야사총집인 ‘연려실기술’ 등 10여권의 인문지리서에도 선유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송시열 글씨에 이끼, 가학정 터엔 묘지

이들 인문지리서에 따르면 선유담이란 이름은 신라 때부터 화랑이 자주 이곳을 찾아 유람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주변 풍경이 그윽하고 깊어 ‘요조숙녀’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풍경이 아름답다보니 관아에서 ‘가학정(학을 타고 노는 정자)’과 ‘유한정(그윽하고 한가로운 정자)’이란 정자를 만들어 손님을 맞기도 했다.

↑↑ 1995년 장상국 고성군수가 설치한 선유담 표석.

ⓒ 강원고성신문

↑↑ 선유담 입구(표석 옆) 암석에 새겨진 송시열 글씨 ‘선유담’에 이끼가 낀 것을 고성향토문화연구회 김광섭 사무국장이 나뭇가지로 걷어내고 있다.

ⓒ 강원고성신문

↑↑ 가학정 기둥이 세워졌던 자리.

ⓒ 강원고성신문

↑↑ 가학정이 있던 자리에 묘지가 생겨난 모습.

ⓒ 강원고성신문


그러나 안축이 ‘선유담을 지나며’란 한시의 마지막 행에서 ‘다시 찾을 때 얼굴 감출까 두렵’다고 우려한 것처럼, 현재의 선유담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혹시 안축이 살아난다고 해도 선유담모텔 근처에서 길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가학정이 있던 자리에 이르러서는 묘지와 잡풀이 무성한 것을 보고 세월을 한탄할 것이다.
고성지역에서 이처럼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선유담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행정에서는 국가나 도가 지정한 문화재가 아니어서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뜻있는 주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나마 행정에서 선유담에 관심을 보인 것은 관선 마지막 군수였던 장상국 군수 때였다. 장 군수는 1995년 5월 현지에 ‘표석’을 설치하고, 이곳이 지역 명소로서 가치가 있는 곳임을 알렸다.
민선 들어서는 2004년 12월 ‘선유담 복원 및 공원화 조성 기본계획’ 학술 용역을 완료했으나, 도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실제 사업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유담이 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경우 머지 않아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성향토문화연구회 김광섭 사무국장은 “문화재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이처럼 가치 있는 명소는 행정에서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선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숲과 나무들을 정리해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가학정 터까지라도 접근할 수 있도록 환경정비 작업을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또 “나아가 지역의 역사를 복원해 후손들에게 남겨준다는 의미에서 산책로를 조성하고, 현재 갈대가 무성한 곳에 연꽃을 심어 인근 공현진과 가진을 찾은 관광객들이 탐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관광수익 증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성군 관계자는 “선유담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해 행정에서 몇 번 복원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지방문화재 지정이 안돼 사업추진을 못하고 있다”며 “인근에 건축물이 들어서고 연못이 형태만 남아있을 뿐 물이 거의 없는 등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문화재 지정이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했다.
최광호 기자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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