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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빛낸 호국인물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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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권 종 해(權鍾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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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8일(화) 10:25 34호 [강원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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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주성(周成), 호는 성파(惺波)이다. 자는 선명(宣明)이다. 『高城郡誌)』에 의하며 고성군 간성(杆城)출신이라고 한다. 선생은 의병운동가 인규의 아들이다. 1906년 강릉유림대표로 선정되어 성균관에 진정서를 내는 동시에 대동문우회 및 법부평의회에 고소하여 당시 친일군수 이재화와 친일거부 이근우, 조익환등에게 추방지시를 내리도록 청하였다. 1907년 8월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거의를 다짐하고 원주진위대에 가서 민긍호, 이중희,김덕제 등과 의병항쟁의 전략을 모의하는 한편, 관동일대에서 의병소모장이 되어 의병과 해산군을 모으는 동시에 인제의 운두령에서 왜병과 접전 끝에 대파하였다. 또 1908년 2월 이강년과 의진과 합류하여 동 4월 인제 백담사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5월 정선국 북면 단림에서 적과 교전하였다. 그러자 6월 6일 왜병은 그의 본가에 침입하여 모친 김씨를 타살하고 차남 증수에게 총검으로 복부상을 입혔으며 가옥을 전소시켰다. 그리고 1909년 4월 양양으로 이진하여 활동중에 적의 밀정 김성서의 밀고로 적의 야습을 받아 크게 패전하였다.
선생은 1913년 서울의 김종익과 함께 의군부 조직에 참여하고, 그 유격장에 임명되어 의거를 준비하던 중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의 장재호의 집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인도받고 옥고를 치른지 6년만에 출감하였다. 그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강원도 충청북도 일대를 잠행하면서 무력항쟁을 쵝책하다가 그간의 행적이 적에게 노출되어 다시 체포되었으며 끝내 무기형을 언도받고 투옥된지 4년이 되는 해에 옥사하였다. 이로써 관동의병의 선구자인 부친 권인규 그리고 그의 아들 기수, 증수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함으써 독립운동사상 큰 업적을 남기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소은창의록(巢隱倡義錄), 권종해(權鍾海), 단행본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p,p.3~4 △독립유공자인물록(국가보훈처, p.1,483)
<고성향토문화연구회> (010-537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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