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빼어난 비경에 한시·기행문 지으며 감탄”
|
|
김광섭의 고성이야기 <30> 역사와 명소를 찾아서① 능파대(凌波臺)Ⅳ 능파대의 기행문과 한시
|
|
2011년 11월 15일(화) 13:29 36호 [강원고성신문] 
|
|
|
| 
| | ↑↑ 조선시대 사대부와 시인묵객들은 능파대의 기괴한 바위와 풍광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 강원고성신문 | |
| 
| | ↑↑ 능파대 관련 기행문과 한시를 감상해 보면 오랜 세월 풍파로 인하여 만들어진 능파대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도교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다.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의 모습을 고고한 선비같이 표현하고 있다. | ⓒ 강원고성신문 | | 작품<1>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臺下秋波蜃氣晴 대 아래 가을 물결에 신기루가 말끔한데
扶桑西畔是蓬瀛 해가 뜨는 서쪽 언덕이 봉래와 영주라네
何人自이神仙骨 어떤 사람 신선의 선골(仙骨)인양 스스로 자랑하고
醉回靈鼇頂上行 영오는 취하여 돌아가며 꼭대기 위로 밟고 가네.
작품 <2>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 1595∼1671)
暫醉仙遊酒 신선과 노닐다가 잠깐 동안 술에 취하고
凌波落日登 지는 해에 능파대(凌波臺)에 오르니
天空月一片 빈 하늘엔 한 조각달만
浪湧雪千層 치는 물결이 천 층의 눈(雪)이더라
竹嶼鸞應集 죽도에 난새가 모여들고
蓬山鶴可乘 봉산(蓬山) 학(鶴)의 타고 올랐더니
奇巖學仙子 기이한 바위가 고고한 선비 같고
異骨欲飛騰 뛰어남이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네.
海上錄自金剛歸路。仍作海上之遊
해상록 금강산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해상에서 놀며 짓다.
고성지역에서는 알려진 비경보다는 숨겨진 비경이 더욱 많다. 예를 들면 능파대가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와 시인묵객들은 능파대의 기괴한 바위와 풍광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듯이 자연사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능파대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바위 모양도 천태만상으로 어떤 조각가도 쉽게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지인들과 이곳을 찾아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방파제를 만들 때 사용하는 일명 삼발이(TTP·파도완충제)가 관음굴 앞에 놓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의아한 모습이었다. 아마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위험성이 있어서 그러한 일들을 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능파대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점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남는다.
능파대 관련 기행문과 한시를 감상해 보면 오랜 세월 풍파로 인하여 만들어진 능파대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도교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다. 작가들 대부분이 자신의 모습을 고고한 선비같이 표현하고 있다.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의 『관동록(關東錄)』에 수록된 ‘능파대(凌波臺)’ 제재는 삼척문화원이 발행한 척주한시집(1993년)에서는 삼척의 능파대라고 보고 있는데 착오인 듯하다.
작가는 1635년 7월 강원도관찰사로 부임되어 관동지역을 순행하면서 남긴 작품인데 여기에서 그는 금강산을 다녀온 후 간성에 이르러 선유담, 열산관, 청간정, 영랑호 등의 한시가 「동주집권칠(東州集卷之七)」에 남아 있다. 작품 <1>
또 한편의 시는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 1595∼1671)이 1651년 금강산을 유람을 마치고 이곳을 찾아와서는 지었다고 전해진다. 작품<2>
기행문으로는 1841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조병현(趙秉鉉, 1803~?)의 성재집권사(成齋集卷之四) 금강관서에 수록된 것이 있다.
25리가서 바다 위에서 능파대를 보았다. 괴석은 움푹 패여 만개의 구멍이 영롱하다. 바다 속으로 가파르게 들어갔으며 위에는 층층이 대를 이룬다. 내려다보니 검푸른 바다에 만경창파에 펼쳐진 아득한 물가이다. 바위구멍으로 파도가 울어내니 궁상 소리가 절로 이루어진다. 물과 바람이 부딪치어 흘러 돌에 떨어지며 땡땡 쩡쩡 각기 소리가 난다. 고요히 흐르게 되면 맑고 깊고 넓어서 팽려가 해와 달을 삼키고 뱉고 하는 것 같다. 석종이 있다.
또 한편의 기행은 조선말기의 학 허훈(許薰, 1836∼1907)의 방산집권십사(舫山集卷十四) 「동유록(東遊錄)」에 수록되어 있다.
능파대에 올랐더니 바위들이 무너져 가파르게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다. 여러 겹이 쌓여 이어져 뻗쳤는데 갖가지로 배가 불룩한 껍질 등이 있다. 갓 태어난 나방과 비슷하며 항아리가 검다. 어쩌다가 바람에 부딪치고 바다와 농이 맞부딪치어 수많은 세월 끊임없이 견고하고 정결하니 한 절조 같은 자와 같아서 쉬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또 한편의 기행문을 살펴보기 전에 작가의 간략한 소개를 하면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조선 말기의 문인·순국지사.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동방일사(東方一士).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며 큰아버지인 달수에게서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다. 1884년에 사헌부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무주 설천면 구천동 산 속 물가에 서벽정(棲碧亭)을 짓고 도학을 강론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그 해 음력 12월 30일 국권을 강탈당한 데 대한 통분으로, 황제와 국민과 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겨 놓고 세 차례에 걸쳐 다량의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송병선(宋秉璿)의 「동유기(東遊記)」에서는 간성읍에 들어가서 능파대의 소문을 들었음을 알 수 있다.
남쪽으로 십리쯤에 있다고 한다. 해안에는 모든 바위가 움푹 패여 혹은 골짜기 같으며 혹은 가파른 석벽이다. 벌집 같은 둥우리는 벌레가 파먹은 낙엽 같고 양쪽 언덕엔 갈라진 것이 관음굴인데 바다물이 뱉고 삼키어 바람과 만나면 곧장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높이 솟은 것이 몇 백 길이 된다. 크게 볼만하다.
|
|
|
|
강원고성신문 기자 “행복한 고성 만들기” - Copyrights ⓒ강원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강원고성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강원고성신문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