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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국 칼럼 / 서로 믿고 사는 세상이 그립다

2012년 08월 21일(화) 16:31 74호 [강원고성신문]

 

↑↑ 이선국 칼럼위원(시인, 토성면장)

ⓒ 강원고성신문

최근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富士山)등정을 다녀왔다. 후지노미야구치 7합목 산장에서 이튿날 새벽 2시 출발하여 오후에 하산한 일행은 시즈오카현 카케가와시 역 부근에 여장을 풀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식사를 일찍 마친 일행은 카케가와역 부근의 주택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즈오카현의 중심지역이지만 일요일 아침 주택가는 한산했다. 하수도 시멘트 복개시설이 80년대 우리와 같고, 차도를 차선으로 늘린 인도블록, 일반도로에 억지로 만든 자전거도로 등은 이곳이 오래된 고도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도시가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옳다. 잘 구획된 도로변으로 전형적인 일본 전통가옥이 줄지어 있다. 푸른 이끼가 있었지만 도심마을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하천은 깔끔하다는 표현이 옳다.

일본 최고봉 후지산(富士山) 등정

아담한 집과 정원, 돌담이 있는 전통 일본식 주택, 그 돌담 끝에 작은 통이 세워져 있었다. 우체통 보다 작은 규모의 3단 형태의 낡은 통, 전면이 개방된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더니 3층 칸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등이 한 묶음씩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아래 칸엔 낡고 작은 나무통도 보였다. 그것이 돈 통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했지만 아침시간 주변엔 사람이 없어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마치 신당 같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면서도 궁금했다.
하지만 잠시 후 궁금증이 풀렸다. 어떤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곳 나무통에 돈을 넣고 스스럼없이 오이뭉치를 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사람이 없는 무인가판대였다. 어떤 아주머니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돈을 넣고 고추봉지를 집어가고 잠시 후엔 할머니 두 분도 가지와 방울토마토를 바구니에 넣고 꽃도 집어가는 것이었다.
얼른 쫓아가서 할머니들에게 물었다. 그 할머니의 대답은 이곳이 분명 무인 가판대이고 투명비닐봉지에 담긴 물건들은 집주인의 텃밭에서 생산하여 자가 소비 후 남은 잉여농산물로서 대부분 100엔이며 연분홍 후레지아는 공짜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이곳의 수입은 후에 주인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무인가판대의 낡은 모양으로 볼 때 상당히 오랫동안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사랑과 나눔’의 실천,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글쎄, 만약 우리 동네에 이러한 무인가판대가 있다면 이렇게 잘 운영될 수 있을까?
요즘 CCTV에 대한 보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의 현장을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한다.

무인 가판대 운영, 아름다운 모습

도로와 골목에 공개적으로 설치된 공용 CCTV 뿐만 아니라 개인이 상점과 건물, 심지어 자동차 등에도 각종사설 카메라가 사방에 설치되어 남몰래 나쁜 짓을 벌인 범인을 잡아내는데도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범행 직후 옷을 갈아입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치밀한 계획도 세상 곳곳에 설치된 각종 CCTV 앞에서는 ‘꼼짝 마라’다.
일전엔 CCTV에 찍힌 화분녀도 금방 자수하고 말았다. 몇 달 전 금은방 절도로 경찰에 붙잡힌 범인들도 금은방에 설치된 CCTV를 비롯해 10여개의 CCTV에 찍혀 경찰에 검거됐다. 그들은 경찰 등이 관리하는 방범용 CCTV를 모두 교묘히 피했지만 개인이 설치한 CCTV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얼마 전 뉴스시간에 가감 없이 방영된 CCTV자료에는 상점과 자동차, 건물에서부터 범인들이 금은방 진열장을 깨고 귀금속을 터는 장면뿐만 아니라 범행 전 오토바이 주유 모습, 범행 후 주변 골목을 지나는 장면 등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미 세상엔 범인들이 숨을 곳조차 없는 셈이다. 최근엔 공개적으로 CCTV를 설치한 것에 추가해 몰래 카메라를 한 대 더 설치하는 가게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생활 침해에 대한 또 다른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늘 감시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쩜 그리 썩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불신,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물론 우리 주변엔 사랑과 나눔의 감동적인 삶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해 산지사방에 카메라가 24시간 밤낮으로 눈을 뜨고 지켜보는 우리사회 현실을 되돌아볼 때 일본 시즈오카현 카케가와시 주택가 작은 골목의 무인가판대가 정말 부러웠다.
자연스러운 무인가판대 운영과 자가 생산 잉여농산물의 판매가 그렇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의 모습이 또한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미운 일본사람들이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가 보고 배워도 좋겠다 싶다.

강원고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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